테슬라가 시작한 전기차 가격 전쟁…격변하는 생태계 [글로벌 현장]

월스트리트 "테슬라, 가격에서 승기 잡았지만 기존 완성체 업체 공세도 지켜봐야"

[글로벌 현장]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박람회 'CES 2023'가 개막한 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중앙홀 스테이션에서 테슬라의 전기차가 오가는 지하 터널 이동 수단인 '베이거스 루프'가 운영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미국의 고급 전기차 제조사인 루시드그룹은 올해 뉴욕 증시에서 화제를 모은 종목 중 하나다.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할 만큼 주가 변동 폭이 컸기 때문이다.

2021년 초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한 루시드의 주가(상장 때 주당 10달러)는 한때 50달러를 웃돌았지만 올 초 6달러까지 급전직하했다. 1월 말엔 갑자기 두 배 넘게 뛰더니 2월 말이 되자 하루 10%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단기간 주가 변동성이 100%가 넘는다. 연초 주당 101달러까지 떨어졌던 테슬라의 주가는 두 달도 안 돼 200달러대를 회복했다. 이처럼 급변하는 기업 가치의 배경엔 본격적인 옥석 가리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업체 간 실력 차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 전쟁 촉발한 테슬라의 승부수
전기차 업체 간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테슬라가 포문을 연 가격 전쟁이 첫째 배경으로 꼽힌다. 테슬라는 연초부터 미국 등 세계 시장에서 주력인 모델3와 모델Y의 가격을 최대 20%씩 낮췄다. 수요가 둔화할 조짐을 보이자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미국 내 모델3 가격은 내연 엔진 차량을 포함한 전체 신차 평균가보다 5000달러나 싸졌다. 여전히 반도체·원자재 공급난을 겪고 있는 내연 엔진차에 원투 펀치를 먹인 모양새다.

여기에다 올해 1월부터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7500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세제 혜택의 문턱이 당초 최고 8만 달러짜리 전기차에서 5만5000달러짜리로 낮아진 덕분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은 모델3를 최저 3만5500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3년 동안 리스로 빌리면 도요타자동차의 베스트셀링 중형 세단인 캠리보다 오히려 저렴한 것으로 계산됐다. 계약금을 똑같이 5544달러씩 치른 뒤 캠리를 리스하면 월 353달러, 모델3(SR)를 빌리면 349달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덤 조나스 모간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가격이 내연 엔진 차량보다 저렴해지는 일대 전환기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올 초 한꺼번에 1만3000달러나 가격을 낮춘 테슬라의 크로스오버 모델Y는 1분기 생산량이 100% 매진된 상태다. 미 전문지인 일렉트렉은 “테슬라에 대한 전례 없는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설치 비용이 1만5000달러에 달하는 완전 자율 주행(FSD) 베타 버전에 대해 리콜을 개시했지만 수요를 늦추지 못했다. FSD 리콜은 총 36만여 대에 적용됐다.

테슬라는 시장 확대의 고삐를 더욱 죌 계획이다. 모델3의 신형(코드명 하이랜드)을 연내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테슬라 최대 공장인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최근 시설 업그레이드를 진행했다.

테슬라는 내년 말까지 미국에서 최소 7500개의 자체 충전기를 경쟁사에 개방하는 한편 고속 충전기인 슈퍼차저를 지금보다 3배로 늘릴 예정이다.

테슬라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정면 승부를 선택한 곳은 포드다. 전기차 모델인 머스탱 마하-E의 가격을 트림별로 8.8%까지 낮췄다. 미국 내 인하 폭은 최대 5900달러다. 마하-E는 테슬라 모델Y와 직접 경쟁하는 차종이다. 가격 인하에 따라 마하-E와 모델Y 가격은 둘 다 5만3000달러 선에서 경쟁하게 됐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기술력과 대량 판매를 앞세우며 이익률(마진)을 높여 온 테슬라와 달리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출혈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테슬라는 전기차 한 대를 팔 때마다 대당 9574달러를 버는 반면 제너럴모터스는 2150달러, 폭스바겐은 973달러를 남기는 구조다. 포드는 되레 762달러씩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포드는 최근 실적 발표 때 “올해 생산 차질과 함께 순손실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전기차를 판매하더라도 이익을 거의 남기지 못하는 구조”라며 “가격 전쟁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순수 전기차 업체도 마찬가지다. 상당수가 아직 스타트업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루시드의 작년 생산량은 총 7180대로 집계됐다. 애당초 세워 놓았던 목표(2만 대)의 30% 수준이다. 올해 생산(인도) 대수도 1만~1만4000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도 출혈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차값이 비싸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투어링과 그랜드투어링에 대해 7500달러 규모의 할인을 한시 제공하기로 했다. 시작가가 8만7400달러로 높아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자 정부 보조금만큼 할인해 주겠다는 것이다. 루시드 측은 “거시 환경이 밝지 않다”고 전제한 뒤 “내년 1분기까지 버틸 만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 자문사인 CFRA의 개릿 넬슨 분석가는 “루시드의 대표 모델인 에어보다 훨씬 저렴한 전기차가 늘면서 회사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루시드의 손익분기점 가능 시점을 종전 2026년에서 1년 늦춰 잡았다.

저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를 생산하는 피스커는 작년 4분기에 단 3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월가 전망치 평균(250만 달러)을 크게 밑돌았다. 생산·인도 등 측면에서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헨리크 피스커 피스커 최고경영자(CEO)는 “3월 중 대표 모델인 오션의 판매 승인을 받은 다음 2분기부터 고객 인도를 개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기 트럭 생산 업체인 니콜라의 성적표는 더 참담하다. 작년 4분기 생산량은 131대였다. 실제 인도량은 20대에 그쳤다. 올해 목표치도 250~350대에 불과하다. 기업공개(IPO) 직후였던 2020년 6월 주당 94달러까지 치솟았던 니콜라 주가는 2달러까지 밀렸다.
4년 후 1600만 대 판매…폭발 성장하는 시장
전기차 시장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가격이 떨어지는 동시에 충전 네트워크가 널리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모델도 급증하는 추세다.

작년 세계에서 팔린 순수 전기차는 총 802만 대로 기록됐다. 전년 대비 68% 늘었다. 전체 신차에서 전기차가 차지한 비율은 9.9%였다.

순수 전기차 중 63.3%(507만 대)가 중국에서 팔렸다. 중국 점유율은 2020년 47.5%, 2021년 57.1% 등 압도적이다. 다음으로 유럽(162만 대), 미국(80만 대) 등 순이었다.

자동차 업체 중 글로벌 판매 1위는 테슬라였다. 작년 131만 대를 판매했다. 다만 점유율은 2020년 22.3%에서 작년 16.4%로 감소했다.

2위는 92만 대를 판매한 중국 비야디(BYD)였다. 점유율은 11.5%였다. 다음으로 상하이자동차(90만 대, 점유율 11.2%), 폭스바겐(57만 대, 7.2%), 지리자동차(42만 대, 5.3%), 르노닛산(39만 대, 4.9%) 순이었다.

완성차 판매 1위 도요타는 전기차 시장에선 후발 업체에 불과하다. 작년 판매한 전기차가 총 2만4000대에 불과했다. 테슬라 대비 2%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다만 2030년부터 연간 35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다.

통계 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시장은 2027년 858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해 1621만 대가 팔릴 것으로 예측됐다. 연평균 성장률은 17.02%다.

미래의 전기차 시장도 테슬라가 주도할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에선 반신반의하고 있다. 1등 브랜드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계속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란 시각이 있는 반면 기존 완성차 업체의 공세에 점유율을 꾸준히 내줄 것으로 보는 쪽도 만만치 않다. 다만 올해 초부터 본격화한 가격 전쟁에선 일단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