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아도, 문송해도 괜찮아” ‘전 국민 오디션’ 된 현대차 생산직 채용

연봉 1억·현대차 평생 할인·정년 보장에 ‘킹산직’으로 불려
‘철밥통’ 공무원들도 들썩

[비즈니스 포커스]

현대차 아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현장. 사진=현대차 제공



“친구, 직장 동료, 아는 동생까지 모두 ‘현차 킹산직(현대차 생산직)’ 지원서 냈어요.”

현대자동차가 10년 만에 기술직(생산직) 채용에 나서자 구직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현대차 생산직은 타사 생산직 대비 높은 연봉과 만 60세 정년 보장, 현대차 할인 혜택 등 남다른 복지 혜택으로 ‘킹산직(생산직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고졸 이상에 연령·성별·경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 취업 준비생뿐만 아니라 ‘떨어지더라도 일단 서류라도 넣고 보자’는 직장인 지원자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미래차 전환을 추진하고 있어 생산 공정에서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만큼 이번 채용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400명을 뽑는 이번 채용엔 서류 접수에 3만 명에 육박하는 지원자가 몰려 한때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현대차 인재 채용 홈페이지 내 모빌리티 기술 인력(생산직) 채용 공고 작성 가이드 조회 수가 3월 8일 기준 22만 회를 넘어 허수 지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채용에 최소 10만 명이 몰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베스트셀러’ 된 현차 생산직 수험서

서점가에선 이미 현대차 생산직 수험서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한 현대차 생산직 필기시험 수험서는 출간 1주일 만에 교보문고 취업·수험서 부문 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에도 현대차 생산직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과 필기시험 준비 대비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까지 고용하는 조선업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최근 조선업은 수주 물량 증가 등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2016년 고용 위기 당시 대규모 인력 유출과 저임금·고위험 일자리라는 부적정 인식 등으로 청년층이 기피하고 있어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차 생산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처우와 복지가 다른 직장 대비 월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람인 설문에 따르면 2022년 신입 구직자의 희망 연봉은 평균 3300만원으로 중소기업 대졸 초봉(2900만원)과 비교해 400만원 정도 낮다. 대기업의 대졸 초봉(5300만원)과 격차도 크다. 중소기업의 고졸 평균 연봉은 2600만원에 그쳐 구직자들이 높은 연봉의 현대차 생산직에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14년 차 생산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2021년 기준 9600만원에 육박한다. 신입도 5000만~6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2022년 4분기 직장인 평균 연봉(세전)인 4024만원보다 1000만~2000만원 이상 높다. 현대차 생산직 평균 연봉이 1억원이라는 설이 돌고 있지만 적어도 15년 이상 근무해야 도달할 수 있는 금액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월 200만원에 격무 시달려…공무원보다 ‘현무원’

현대차 생산직의 평균 연봉은 9급 공무원보다 높다. 2023년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지난해보다 5% 오른 177만800원 정도다.

9급 초임 공무원이 10년간 재직하면 7급 9호봉의 보수를 받게 되는데 7급 9호봉 기준 월평균 보수액은 약 407만원이다. 연봉은 약 5000만원 수준이다. 박봉에 격무에 시달려야 하고 큰 메리트로 여겨졌던 공무원 연금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어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공직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11년 전만 해도 경쟁률이 100 대 1에 가까울 정도로 취업 준비생 선호 직업 1위로 꼽히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무원의 인기는 이제 옛말이다.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16년 53.8 대 1에서 2017년 46.5 대 1로 떨어진 뒤 7년 연속 하락세다.

2023년 9급 공무원 공채 시험 경쟁률은 3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5326명 선발에 총 12만1526명이 지원해 지난해의 16만5524명에 비해 4만3998명 줄었다. 경쟁률로는 22.8 대 1로 1992년의 19.3 대 1 이후 31년 만에 최저치다. 2030세대 인구 감소와 공무원 연금 제도 개편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익명 기반의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 ‘9급 공무원 vs 현대차 생산직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설문이 올라오고 있다. 결과는 모두 현대차 생산직의 압승이다.

자신을 9급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실수령액 월 200만원 정도를 받으면서 국가 재난 때마다 갈려 나가느니 골치 아플 일 없이 일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현무원(현대차 공무원)’이 훨씬 낫다”고 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1조 근무자들이 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봉·고용 안정성 ‘넘사벽’…‘강성 노조’ 효과도

복지 혜택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차 생산직을 소개하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15년 차 직원은 “교대 근무는 단점이지만 돈을 많이 벌고 다른 일에 비해 조금 덜 피곤하며 현대차를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임직원은 근속 연수에 따라 신차 구매 시 10~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근속 5년 미만은 10%, 8~10년은 14%, 26년 이상은 30% 할인을 적용받는 식이다.

재직 기간뿐 아니라 퇴직 이후에도 현대차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근속 25년 이상인 퇴직자에게 발급되는 명예사원증을 통해 25%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25년 이상 근무하면 평생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 중 본인 부담금에 한해 임직원과 가족의 진료비도 지원된다. 연간 2000만원 한도로 직원 본인과 배우자는 100%, 건강보험증에 등재된 가족은 50% 지원된다. 이번에 채용되는 생산직은 울산·전주·아산공장에 배치되는데 해당 지역에 집이 없으면 월 4만원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 원활한 출퇴근을 위해 통근 버스도 지원된다.

이번 현대차 생산직 채용 광풍에는 강성 노조의 대명사로 부정적 인식이 많았던 현대차 생산직 노조의 존재감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장년 중심의 생산직 노조에 대한 반감이 2021년 현대차그룹 MZ 사무직 노조 설립까지 이어졌지만 지원자로선 노조의 존재가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엔 만 60세 정년을 맞은 직원이 1년 더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시니어 촉탁직’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노조는 이 제도를 폐지하고 정년을 만 60세에서 만 61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고연봉과 고용 안정성이 높은 현대차의 생산직 정규직 채용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시장 원리”라며 “강한 노조를 통해 다양한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사람들이 이번 채용에 반응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12년째 현대차 울산공장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노조가 파업을 예고할 때마다 기득권을 쥔 강성 귀족 노조라며 비판하는 것이 ‘국민 스포츠’나 다름없었는데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 지원자가 대거 몰리고 있다”며 “양질의 일자리가 그만큼 없다는 방증인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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