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조 적자 국민연금, 10년 수익률도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낮아

10년 수익률 캐나다 10%, 한국은 4.7%로 절반 수준


국민연금이 지난해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기금 고갈이 일러지는 시점에서 수익률도 최악을 찍자 연금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8.22%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1%를 넘어서는 적자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동안의 손실금은 97조6000억원이다. 지난해 적립금도 900조원 아래로 내려왔다.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을 낸 해는 지금까지 딱 세 번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던 2008년 마이너스 0.18% 적자를 냈고 2018년 미·중 무역 갈등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악화하면서 마이너스 0.92%의 성적을 받았다. 이번에는 더 큰 적자를 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앞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들이 연금 운용 수익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국민연금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장 큰 손실을 낸 부문은 국내 주식(-22.5%)이었다. 해외 주식에서는 마이너스 12.53%의 성적을 냈다. 유일하게 돈을 번 영역은 대체 투자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체 투자에서 9.47%의 수익을 거뒀다. 부동산과 인프라 자산의 평가 가치가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전통 자산 대비 높은 수익률을 보인 것이다.

전년도인 2021년에는 국내 주식에서 5.88%, 해외 주식에서 29.77%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전체 운용 수익은 10.86%를 찍었다. 2021년 포트폴리오에서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 것은 국내 채권(-1.25%)이 유일했다.

10%대의 높은 수익률이 1년 만에 8% 적자로 돌아선 데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미국의 긴축 정책으로 글로벌 증시가 얼어붙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전반적인 자산 시장이 위축됐다. 지난해부터 Fed가 금리 인상 가속 페달을 밟으며 미국 기준금리는 4%대를 넘어섰다. 금리가 오르면 주식 가치는 낮아지고 시중에 돈이 줄면서 주가가 하락한다. 지난해부터 유가증권시장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하락하는 이유다.

국제 경제에 악재로 작용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손실 원인이었다.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이 크게 출렁였고 이는 금융 시장과 주식 시장의 손실로 이어졌다.

주식과 채권의 동반 하락도 원인이었다. 통상 주식이 떨어지면 안전 자산인 채권 가격이 오른다. 채권은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식과 채권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데 지난해 이례적으로 주식과 채권이 동반 하락했다. 197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역시 지난해 국내 채권과 해외 채권 모두 마이너스 5%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10년 수익률은 한국이 제일 낮아

글로벌 증시 악재가 한국에만 타격을 준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해외 주요 연기금도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주요 연기금이 모두 마이너스 수익을 냈다. 지난해 노르웨이 국민연금인 GPFG는 마이너스 14.1% 수익률을 기록했고 네덜란드 ABP는 마이너스 17.6%의 적자를 냈다.

일본 GPIF 성적은 마이너스 4.8%, 캐나다 CPPI는 마이너스 5%였다. 일본은 글로벌 시장 대비 일본 채권과 주식 시장의 소폭 하락과 엔화 약세에 따른 엔화 환산 평가익으로, 캐나다 CPPI는 월등히 높은 대체 투자 비율로 수익률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다. 한국 국민연금의 대체 투자 비율은 16% 정도인데 캐나다의 대체 투자 비율은 59%다.

올해 국민연금의 성적만 놓고 보면 최악이었지만 해외 주요 연기금 대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올해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도 점차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국민연금의 금융 부문 추정 수익률은 약 5% 내외다. 적립액도 930조원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장기 수익률이다. 호흡이 긴 연금의 특성상 1년 수익률보다 10년 이상 장기 성과가 더 중요한데 이마저 해외 연기금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최근 10년으로 기간을 늘리면 국민연금이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은 캐나다 CPPI(10%)였다. 노르웨이 GPFG가 6.7%, 네덜란드 ABP가 5.1%, 일본 GPIF가 5.7%였다. 국민연금의 10년 수익률은 4.7%로 캐나다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기금 운용 전문성 끊임없이 지적

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앞당겨진 와중에 수익률도 최악을 기록하자 기금 운용에 대한 비판과 불신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 역시 갈수록 운용 전문성이 약화하고 있고 인력도 대거 이탈하면서 기금 운용 체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 운용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역 1명이 다루는 자산은 평균 2조원이다. 캐나다(2600억원), 네덜란드(6500억원), 미국(1조4300억원) 등 해외 주요 나라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다.

보건복지부는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선 우수한 운용 인력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운용 인력의 보수 수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합리화하고 금융 시장·운용사와의 원활한 정보 교류 및 네트워크 구축이 가능하도록 근무 여건 개선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운용역의 인력 유출 문제는 꾸준히 지적돼 왔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국민연금 운용역 27명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기금운용본부 운용직은 전주 이전 후 한 번도 정원을 100% 채운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저조한 수익률의 원인으로 비전문적인 지배 구조와 전문 인력 부족을 꼽는다.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는 투자 전문가가 없다. 정부 대표와 시민 단체, 노조·사용자 대표 등이 참여해 5년 단위의 기금 운용 중기 전략을 심의·의결한다. 국민연금의 지배 구조는 한마디로 ‘옥상옥(집 위의 집)’ 구조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업을 관장하되 그에 따른 업무는 투자 전문가로 이뤄진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한다. 기금의 운용 계획과 평가 결과 등 기금 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보건복지부가 ‘옥상옥 지배 구조’의 정점인 셈이다. 반면 해외 주요 연기금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는 철저하게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는 구조다.

이 와중에 2월 24일 검사 출신 한석훈 변호사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에 선임되자 논란이 일기도 했다. 900조원에 달하는 연기금의 투자 기업 주주권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에 금융 전문가가 아닌 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는 3월 4일 “자격 조건을 갖췄다”며 해명에 나섰지만 국민연금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논의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회가 연금 개혁을 위해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를 만들었지만 지난해 11월 출범 후 여전히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다. 자문위가 3월 2일 연금특위에 제출할 경과 보고서 검토를 마쳤는데 이 경과 보고서에 연금 개혁 방향성이 담기지 않아 맹탕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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