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4500만 명, 지난해 상반기까지 약 21조3000억원 의료비 부담 덜었는데…
좀 더 깐깐하게 바뀌는 건강보험
정부가 이른바 ‘문재인 케어(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 확대)’ 수술에 나섰다. 과잉 진료 비판이 끊이지 않는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축소하고 ‘의료 쇼핑족(과다 의료 이용자)’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현재는 건강보험 가입자가 병원을 얼마나 자주 다니는지 따지지 않고 건강보험(=의료비 지원) 혜택을 줬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한 환자가 1년에 병원 외래 진료를 2050회나 받은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다.
남용을 방지하자는 취지는 좋은데 보장을 축소하면 앞으로 병원비는 얼마나 올라갈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 않아 그동안 병원비 부담이 줄어들었던 초음파‧MRI 검사 사례를 역으로 살펴봤다. ◆환자 부담, 그동안 얼마나 줄었나
①상복부 초음파=초음파 검사는 복잡한 진단을 쉽게 해주고 MRI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 다른 영상 진단 장비와 달리 안전하고 무해하다는 장점이 있어 의료 현장에서 중요한 검사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초음파 검사는 선택 진료비, 상급 병실료 차액과 함께 대표적인 비급여(=의료비 지원이 없는) 항목이었다. 비용 측면에서 환자에게 부담이 됐다.
예컨대 2017년 고열·구토·설사 등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한 김 모 씨는 급성 A형 간염을 의심해 상복부 일반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진료 영수증에는 16만원이 찍혔다. 이 경우 보험이 적용되면 14만원이 줄어든다.
2019년 간경화 환자인 이 모 씨는 간암 발생을 관찰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을 찾았다. 외래진료로 상복부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고 9만원을 냈다. 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다면 19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간·담낭·담도·비장·췌장의 이상 소견을 확인하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는 일반 초음파와 정밀 초음파로 구분된다. 일반 초음파는 상복부 질환자 또는 의사의 판단으로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에 대해, 정밀 초음파는 만성간염‧간경변증 등 중증 질환자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건강보험 보장이 강화하면서 일반 초음파는 평균 6만∼16만원에서 2만∼6만원 수준으로, 정밀 초음파는 평균 8만∼19만원에서 4만∼9만원 수준으로 진료비가 줄어들었다. 상복부 초음파 급여 확대로 B형·C형 간염, 담낭 질환 등 상복부 질환자 수백만 명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 셈이다.
②복부·흉부 MRI=2019년 여름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한 40세 박 모 씨는 CT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는 총담관결석이 의심됐다. MRI를 찍으니 65만원이 청구됐다. 하지만 2019년 11월 이후 검사를 했다면 19만원(46만원 경감)만 내면 됐다.
간·담췌관·심장 등 복부·흉부 MRI 검사는 암 질환 등 중증 질환에만 제한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일차적으로 초음파나 CT 등 검사로 진단하는 게 일반적인데 악성 종양의 감별이나 치료 방법 결정을 위한 정밀 진단 등 이차적으로 MRI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간 내 담석은 초음파 검사 등으로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지만 MRI 검사로 간 내 담석의 분포와 담관 협착 위치 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된 후 평균 49만∼75만원(골반 조영제 MRI 기준)이었던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16만∼26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③두경부 MRI=40대 직장인 한 모 씨는 2019년 가을 복시와 안구 돌출 증상으로 상급종합병원 외래에서 안과 검사 후 눈물샘암이 의심돼 MRI를 찍었다. 병원비로 26만원이 나왔다.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 검사 비용은 87만원이었다.
10년 전 경부 양성 종양(혈관종)을 진단받은 후 수술을 시행하지 않고 상급종합병원 외래에서 경과를 관찰 중인 60대 최 모 씨는 MRI를 비급여로 시행하고 검사비용 82만원을 부담했다. 최 씨와 같은 사례는 이제 평균 비용이 25만원 정도 된다.
기존에는 눈·귀·코·안면 등 두경부 MRI 검사는 중증 질환이 의심되더라도 MRI 검사 결과 악성 종양·혈관종 등이 진단된 환자만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그 외는 환자가 검사비를 전액 부담했다.
2019년 5월부터 두경부 MRI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전면 확대했다. 두경부 부위에 질환이 있거나 선행 검사 결과 질환이 의심돼 의사가 MRI 검사를 통한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면 비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평균 50만~72만원에서 16만~26만원으로 감소한다. 기존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④뇌·뇌혈관·특수 MRI=“중년 이후 두통이 생겼고 점차 심해진다면 MRI 검사를 해보면 좋다. 특히 기침·힘주기·성행위 상황에서 두통이 악화하면 뇌혈관 MRI 검사가 필요하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 의사의 조언이다.
두통이 심하다고 심각한 뇌질환을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두통이 경미하다고 해서 뇌질환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대부분은 단순 두통이지만 드물게 뇌졸중 전조 증상이나 뇌종양이 두통의 원인일 수 있다.
단순 계산해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비급여로 뇌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MRI 검사를 받으면 평균 비용이 60만원 든다. 건강보험 적용 후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22만원으로 3분의 1 수준이다.
◆개선 방안은 어떻게…
초음파‧MRI 검사는 2005년부터 암 등 중증 질환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했지만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 따라 일반 질환(의심)까지 대폭 확대했다.
병원비에 허덕이던 서민들에겐 희소식이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민 4500만 명이 약 21조3000억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았다. 초음파 급여화로 혜택을 받는 국민은 1674만8000명이다. 의료비 부담 경감액은 1조9462억원이다. 1인당 11만6000원의 부담을 줄인 셈이다. MRI 급여화로 혜택을 받는 국민은 423만7000명이다. 전체 1조125억원, 1인당 23만9000원의 진료비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과잉 진료가 많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척추·어깨 등 근골격계 수술을 하기 전에 상복부 초음파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난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병원에서 관절 등의 근골격계 수술을 하면서 필요 없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 시행이 3년 동안 1만9000여 건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앞으로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거나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할 방침이다.
또 하루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초음파 검사 개수를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같은 날 여러 부위에 대해 불필요하게 초음파 검사를 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부 불편감, 갑상선 결절 등을 호소한 환자가 이를 계기로 하루 동안 상복부·방광·여성생식기·유방·갑상선 등 5개 부위를 동시에 초음파 촬영했다. 이 같은 사례가 1년간 7000여 건 있었다는 것이다.
MRI도 남용이 많았다는 판단이다. 뇌질환 관련 수술·치료 등을 실시한 기록이 없어도 두통 증상 만으로 뇌(조영제), 뇌혈관, 특수 검사 등 3가지 종류의 MRI를 찍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사전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에 대해서만 급여(=의료비 지원)를 적용하며 복합 촬영은 2회까지만 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리하면 급여 적용 기준을 깐깐하게 판단해 과잉 진료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곳간은 지켜지는데 앞으로 의료비 걱정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개선안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급여 기준 고시 개정 등의 절차로 확정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