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조종사의 AI 대체가 아닌 ‘인간과 기술의 협력’… X-62A, 올해 2월 첫 시험 비행 마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국방력 강화가 한창이다. 국방력을 키우려면 한국의 K-2 전차와 FA-50 경전투기를 도입한 폴란드처럼 장비를 확충하고 장비를 다룰 전문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미국은 인력 육성의 부담과 인명 손실의 위험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무인 전투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현행 군용 드론은 인간이 조종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증됐듯이 공군 전투기(공격기·전폭기 포함)는 전장의 핵심 전력 중 하나다. 영공 방어에서 통신망·전력망 등 주요 인프라 파괴, 지상 전력 지원 등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투기 도입에만 수년 이상 걸리는 데다 숙련된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 데 약 10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전투기 조종사는 육성하고 유지하기 어려운 자원이므로 미국·한국 등 일부 국가들은 추락한 조종사 구출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 부대를 운영할 정도다. 그래서 조종사 육성 과정을 생략할 수 있고 인간 조종사의 희생도 줄일 수 있는 무인 전투기는 방산 분야의 오래된 관심사다.
물론 인간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 항공기인 드론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 정찰·탐지·지상 공격 등의 임무에 드론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현행 군용 드론은 진정한 무인 전투기라고 보기 어렵다. 이·착륙과 비행 기능에서부터 목표물의 탐지·식별·공격 결정 등에 이르는 거의 모든 기능을 지상에 있는 인간 조종사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드론의 임무도 공중에서 고속으로 비행하는 적 전투기와 드론의 탐지·공격 등 공군의 고유 임무보다 저속으로 이동하는 지상 목표물의 감시·공격 등에 한정된다.
진정한 무인 전투기가 되려면 적기의 위치와 움직임을 탐지·분석하고 기동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전투 비행의 전 과정을 인간 조종사가 아니라 기체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다양한 전투 환경을 감안해 일반 활주로가 아닌 항공모함 등 특수한 환경에서의 이·착륙 기능까지 갖춰야 한다. 공중전에서 인간을 이긴 AI 조종사미국·러시아·프랑스 등 항공 분야 선진국들은 지상 공격에서부터 공중전 등 기존 유인 전투기의 임무를 대행할 수 있는 무인 전투기 관련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히 미국은 2010년대 들어 비전 인공지능(AI), 레이더, 기체 제어 등 기반 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무인 전투기 개발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착실하게 축적하고 있다.
미국은 2013년 인간 조종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항공모함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무인기 개발에 성공했다. 자동 이·착함 기능은 무인 전투기 개발 역사에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항공모함 착함은 고강도 훈련을 거친 숙련된 조종사들도 어려워하는 기능이었다. 당시 비행 테스트는 약 225km의 장거리 비행 후 버지니아 주 해안에 있던 항공모함 조지 부시의 갑판에 착륙하는 것으로, 실험에 사용된 기체는 노스롭 그루먼의 무인기 X-47B다.
X-47B는 수직 미익 없이 동체 전체가 날개 형상으로 만들어져 마치 가오리처럼 보이는 전익기(flying wing aircraft)여서 스텔스 기능을 적용하기에 적합했다. 또한 길이 약 12m, 날개 폭 약 11m로 유인 전투기와 비슷한 크기여서 필요하면 대형 폭탄과 미사일로 무장할 여력도 지녔다. X-47B는 기술과 전략 양 측면에서의 성과로 해석된다. 기술적으로는 유인 전투기와 동등한 화력을 지닌 무인 스텔스기의 등장 가능성을 예고하는 계기가 됐다. 전략적으로는 무인 전투기의 활동 영역이 항공모함을 거점으로 무한하게 확장할 가능성이 확인됐다.
무인 전투기라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조종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도 공중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 공군은 2016년부터 공중전을 할 수 있는 AI 조종사의 개발을 추진했고 정찰기나 지상 공격기에 AI를 탑재해 인간 조종사의 개입 없이 스스로 정찰·수송·공습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무인기 개발도 진행했다. 이와 동시에 2018년부터 무인 전투기의 공중전 전술 수립도 병행해 왔다.
2019년 이후 미 공군은 AI가 조종하는 무인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 ‘스카이보그(Skyborg)’를 추진했다. 스카이보그 프로젝트의 개발 목표는 2023년까지 다른 전투기나 장애물과의 충돌을 회피하고 악천후 속에서도 비행할 수 있으며 유사시 미숙련 조종사가 쉽게 조종할 수도 있는 무인 전투기의 시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스카이보그 프로젝트의 지향점은 저렴한 소모성 무인 전투기를 개발해 미 공군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무인 전투기에 대한 다양한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해 온 미 공군의 노력은 2021년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공중 전투 발전(ACE : Air Combat Evolution) 프로그램을 통해 한 차례 결실을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역 전투기 조종사를 상대로 한 다섯 차례의 공중전 시뮬레이션에서 고도의 비행 기술과 전술을 학습한 AI 조종사가 모두 승리했다. 특히 가시권 내 공중전에서는 현역 조종사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정도로 AI 조종사가 압도적인 조종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실제 전투 비행을 수행한 무인 전투기 X-62A미 공군은 지난 2월 AI가 조종하는 실제 전투기의 비행 테스트가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12월 진행된 비행 테스트는 AI가 시뮬레이션이 아닌 실제 전투기를 조종한 첫 사례였다. 테스트 코스는 가시권 내 공중전에서 가시권 밖 장거리 공중전에 이르는 총 12가지의 고난도 비행이었다고 한다.
테스트에 사용된 기체는 글로벌 전투기 시장의 베스트 셀러인 록히드 마틴의 F-16을 개조한 무인 전투기 X-62A였다. 비스타(VISTA, NF-16D Variable In-flight Simulator Aircraft)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X-62A는 1992년 생산된 2인승 복좌형 전투기 F-16D 블록 30 기종의 미 공군 테스트 파일럿용 기체를 개조한 것이다. 비스타는 인간 조종사 교육용 기체에서 AI 조종사 학습용 기체로 재탄생한 셈이다. 비스타는 다양한 센서와 AI 알고리즘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무인기인 동시에 2명의 인간 조종사가 탑승하는 유인 전투기이기도 하다.
인간 조종사의 역할은 AI의 학습을 지원하는 동시에 AI의 오작동 등 각종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통상 비스타의 앞좌석에는 AI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가 앉고 뒷좌석에는 숙련된 F-16 기종의 교관 조종사가 탑승한다. 비스타의 비행 테스트는 인간 조종사와 AI의 협력으로 진행된다. 후방석의 조종사가 비스타를 계획된 고도와 속도로 비행하도록 맞추고 나면 앞 좌석의 엔지니어가 태블릿을 이용해 임무별로 배정된 AI를 비스타의 조종 시스템상에서 가동시킨다. 비행 테스트에서 비스타는 함께 편대를 이루는 인간 조종사의 윙맨 또는 가상 적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 비행과 실제 비행 간의 차이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AI 조종사의 개선 방안을 도출하게 된다.
미 공군은 무인 전투기 개발의 목표가 인간 조종사를 AI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조종사와 AI 간의 협력이란 점을 강조한다. 인간 조종사가 다수의 무인 전투기와 협력하게 되면 인간의 희생을 줄이는 반면 임무 수행 능력을 높일 수 있어 저비용·고효율의 항공 전력을 확보,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테스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X-62A는 미래 공중전의 주역이 될 유·무인 복합 전투 체계의 시초가 될지도 모른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