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공격에 기업 미래 잃을 수도”…KT&G 주총에 쏠리는 눈
입력 2023-03-19 06:00:01
수정 2023-03-19 11:32:28
무리한 현금 배당 확대 요구에 골머리…3월 28일 표 대결 예정
[비즈니스 포커스]주주 행동주의 확산은 ‘명과 암’이 뚜렷하다.
이들의 활동은 자본 시장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주 친화적인 안건들을 주주 총회에서 제시함으로써 기업들의 지배 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등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매번 주총이 열릴 때마다 이들의 행보에 주목하고 열광하는 이유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기업의 미래를 해칠 수도 있는 요구를 함으로써 성장을 꺾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성장과 이를 통한 주주와 기업의 장기적 동반 관계 같은 것은 애초에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KT&G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논란이 되고 있다. 3월 28일 주주 총회를 앞둔 KT&G는 현재 안다자산운용과 플래시라이트캐피탈(FCP) 등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의 타깃이 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총에서 이들이 제시한 안건이 통과되면 예정된 투자 계획까지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선 한숨은 돌렸다. KT&G가 우려한 ‘KGC인삼공사 인적 분할 안건’이 최종적으로 이번 주총에서 빠졌다. 법원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실현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안다자산운용 측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행동주의 편드들은 KT&G의 현금 배당 확대, 지배 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주총에서 날 선 공방전을 예고한 상황이다.
KT&G는 5000원 배당 결의행동주의 펀드들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펀드가 설립돼 있는 기간 안에 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성장을 바라보기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안건들을 주총에 상정하고 표를 던진다.
쉽게 말해 소액 주주들처럼 주식을 사고 주가가 오르면 팔아 수동적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게 아니라 많은 주식을 매입한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며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 적극적으로 이익을 얻는다.
행동주의 펀드가 수익을 내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배당 수익이다.
올해 KT&G 주총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이 같은 행동주의 펀드들의 배당 확대 요구가 과연 어떻게 처리될지 여부다.
현재 안다자산운용과 FCP는 각각 주당 7867원, 주당 1만원 배당을 요구했다. 반면 KT&G 이사회는 지난해 말 전년 대비 200원 올린 주당 5000원 배당을 결의한 상황이다.
배당 규모가 최대 두 배 차이가 나 주총에서 표 대결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행동주의 펀드들은 KT&G의 주주 환원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KT&G가 우량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실질 가치 대비 극히 저평가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하는 등 기업 가치(밸류에이션) 증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FCP 측은 KT&G가 잉여 현금 6조원을 보유한 점을 내세워 현금 배당 1만원과 1조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요구한다.
KT&G가 FCP 측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선 총 2조4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지난해 KT&G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 1조2678억원과 순이익 1조8억원을 모두 초과하는 금액이다.
KT&G 관계자는 “행동주의 편드들이 요구한 현금 배당 등 주주 환원 정책은 회사 투자 및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을 미칠 것”이라며 “향후 기업의 미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KT&G는 올해 1월 해외 공장 신설과 국내 설비 증설 등 5년간 3조9000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CAPEX)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 세계 전자 담배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였다.
KT&G 관계자는 “만약 현금 배당이 1만원으로 확정되면 계획했던 투자까지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펀드 측이 주장하는 6조원 규모의 현금도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잡음 없이 주총 끝날 수도 있어”
제계와 투자업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KT&G 배당 확대 요구에 다소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미 KT&G의 주주 환원율과 배당 성향이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선 KT&G의 주주 환원율을 살펴보자.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KT&G의 총 주주 환원(배당 총액+자사주)율은 95%에 육박한다.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서도 글로벌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의 주주 환원율을 기록 중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의 주주 환원율은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이 93%,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 75%, 일본담배협회(JT) 73% 등으로 모두 KT&G보다 낮다.
게다가 KT&G는 배당 성향도 한국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KT&G는 1999년 상장 이후 단 한 번도 주당 배당금을 하락시킨 적 없이 24기 연속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꼽힌다.
KT&G의 배당 성향은 2021년 기준 59%를 기록했다.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위 기업(삼성전자 25%, SK하이닉스 11%, 현대자동차 26%, 기아 25%, 카카오 2%)의 배당 성향을 월등히 웃돈다.
글로벌 경쟁자들과 비교해도, 한국 기업들과 비교해도 문제 삼기 어려운 배당 수준이라는 얘기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런 수치들을 놓고 볼 때 현재 KT&G의 배당금을 올리라는 것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생각하지 않은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현금 배당 외에도 주목해야 할 안건은 사외이사 증원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표 대결이 예고되고 있다. 정원 6명을 유지하는 KT&G 이사회 안과 이를 8명으로 증원하자는 안다자산운용이 맞붙는다.
안다자산운용 측은 KT&G의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를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KT&G 측은 자사의 지배 구조 투명성이 이미 한국 기업들 중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 근거로 KT&G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실시하는 ESG 평가에서 2012년 이후 계속해 우수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고 2019년에는 지배 구조 고도화 노력으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지배 구조 평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 점을 들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투자업계에서는 KT&G의 이번 주총이 회사 측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보통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총에 관여하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기 마련인데 현재 KT&G의 주가는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시장에선 그만큼 행동주의 편드들의 요구를 과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도 “전체적인 주가 흐름을 볼 때 이번 KT&G의 주총은 KT&G에 우호적인 표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큰 잡음 없이 KT&G의 생각대로 주총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