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새 얼굴 갈아 낀 은행들

[스페셜 리포트]

서울 시내에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은행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침을 겪었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앞세웠다. 이 전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산업은행 민영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 공기업의 민영화를 계획했었고 이 정책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은 정책 금융을 맡는 정책금융공사와 상업금융을 맡는 상업은행으로 나눠졌다. 정책금융공사는 공기업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은행 부문은 민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가 정책 금융의 역할 재정립을 요구했고 결국 2015년 산업은행 민영화는 ‘없던 일’이 됐다. 시간과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정권에 따라 금융의 색깔도 바뀌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 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자금 운용과 기업의 친환경적 경영 활동을 유도하는 ‘녹색 금융’을 앞세웠다.

또 2009년 미소금융재단에도 은행들이 출연했다. 금융 소외 계층과 저소득층의 자활 의지를 돕겠다는 명분이었지만 반강제적이었다.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총대를 멨다. 정권이 바뀌자 은행과 기업들의 출연금이 반 토막이 나며 활동은 위축됐다.

미소금융재단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9월 서민금융진흥원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KEB하나·KB국민·우리·신한·NH농협 등 5개 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이 자본금을 댔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창조 금융'을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는 금융을 4대 개혁 분야에 포함하며 대대적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철학이었던 창조 경제에서 따온 ‘창조 금융’에 따라 금융권은 벤처 창업의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다양한 상품들을 출시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막을 내리며 은행권은 너도나도 창조 금융 지우기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금융’을 내세우며 5년간 3000억원 규모의 민간 기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녹색에서 창조·사회적 금융으로 이름만 바뀌었지만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은행은 공공재’라는 발언이 은행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은행들은 금리를 깎고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처럼 은행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금융에 발맞춘 상품을 출시하며 호흡을 맞췄지만 5년마다 '백지화'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 정책과 상품의 연속성이 침해당했다는 평가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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