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멸의 묵시록, 현대 의약 산업[몸의 정치경제학]

세계의 고령화는 의료 비즈니스계의 축복…축복을 극대화하는 세 가지 방법은

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 시리즈 1

다소 과하게 들리겠지만 솔직히 표현해 보겠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우리 사회가 건강이라는 이념에 집단 최면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상태나 건강 추구를 흠잡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절대 이념으로 군림하는 상황에 대한 지적이다.

그 이념은 질병과 노화에 대한 과대 공포 주입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건강의 공포 통치는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킨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지위고하가 없다. 신체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과 몸에 대한 의심이 가중돼 사회 전체가 건강 노이로제(neurosis)에 빠져 있다.

건강 공포 통치가 극성을 부리면서 의료업계는 메시아로 군림한다. 질병과 건강에 대한 진단과 해석 독점권을 쥔 현대 의학에 대한 믿음은 거의 유사 종교 수준이다. 병원은 사찰이자 성전이고 의약사는 승려이자 성직자들이며 약품과 의료 기기는 복음이자 기적이고 환자는 신실한 신도들이면서 전도사들이다. ◆의료업계가 잡은 두 마리 토끼 : 환자와 이윤
렘브란트의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by Rambrandt, 1632

여기에서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본다. 의료업계가 본질적으로 환자들을 위해, 국민의 건강과 질병 치료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희대의 착각이라는 것. 의료 기관은 봉사 단체가 아니라 진단과 치료라는 재화를 파는 비즈니스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즈니스가 아닌 게 뭐가 있고 금전 제일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업종이 뭐가 있을까. 교육이나 종교인들도 이에서 자유로울까. 군대·경찰·법원 등 핵심적 국가 기관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윤 추구 활동이다.

그러니 의료 기관이 영리를 추구한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다른 숭고한 목적을 추구하는 척, 다른 소중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척한다면 그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적십자·녹십자·성모·자혜·성심 등의 은혜로운 단어를 차용했다고 더 저렴하게 모시지는 않는다.

잘못된 것은 다중들의 신념이다. 이윤 추구와 환자의 건강이 대결 혹은 대립하면 환자의 몸과 안녕이 우선시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자선 사업도, 복지 기관도, 윤리 단체도 아닌 의료 기관이 시쳇말로 땅 파서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여기에서 의료 기관의 본질적인 자기모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의료 기관은 질병과 싸우는 사명에 그 존립 근거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질병이 있어야만 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모순. 그렇다면 이 집단은 질병과 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까, 아니면 질병을 유지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까.

대답은 의외로 싱겁다. 둘 다 하면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둘 다 해왔다. 정확히 말해 그 집단의 존재에 필수적인 것은 질병이 아니라 환자다. 자신의 영업장에 와서 돈을 건네줄 고객들 말이다. 그러니 굳이 병을 유지 또는 연장하는 무모한 짓을 피하더라도 이 고객들이 생산·재생산·확대되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나.
◆환자가 아닌 신규 고객
의료 기관을 찾는 상당수 고객들은 환자가 아니다. 그리고 환자가 아닌 ‘일반 고객’들이 훨씬 더 중요한 영업 대상으로 부상했다. 즉 의료 상품이 질병과 환자 중심성에서 벗어나 고급 상품으로 전환됐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신규 고객 창출에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수익률이 높아진다.

그런 고객들을 어떻게 해서 더 늘릴까. 일부 독자들은 이미 그 묘수를 알고 있으리라. 하물며 수재들이 운집된 의약업계가 자신들의 생업과 관련된 일에 오죽 열심히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짰을까.

그런 의미에서 세계 인구의 고령화 추세는 의료 비즈니스에 거대한 축복이다. 고령 인구 증가는 자연적 현상 같지만 사실 문명적 결실이다. 의식주 생활 환경의 전반적 개선과 함께 의료 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인공적 성과다. 오랜 역사의 의료 산업계는 이 ‘신성장 동력’을 가꿔 왔고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에 접어든 것이다.

고령 인구가 많아질수록 진단·치료·약물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고 수명이 연장되니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출과 소비가 폭증할 것이다. 어눌한 고령자는 의심이 낮고 병원과 의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게다가 줄기세포 치료나 호르몬 테라피 등 노화 방지나 생명 연장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최고 부가 가치와 이윤이 형성된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국가가 다 된 밥에 재를 좀 뿌렸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팔 걷고 나서 이런 혜택 저런 조치를 취하니 업계로서는 기대했던 수익률 수거가 어렵게 된 실정이다. 그래서 더 잘 기획된 이윤 확장 해법들이 필요하다.
◆이윤 극대화의 세 가지 묘수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Self-portrait with Dr. Arrieta)’ by Francisco de Goya, 1820

업계의 대표적 해법이 무엇인지 세 가지만 짚어 보자.

첫째 해법은 개별 방문, 질병, 환자당 추출할 수 있는 이윤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다. 널리 알려진 바 과진료와 과처방이 그 묘수다. 안 해도 되는 초음파 검사를 하거나, 먹지 않아도 될 심장약을 처방하거나, 좀 더 비싼 제품을 판매하는 것 모두 해당된다. 굳이 환자가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합산하면 꽤 괜찮은 수입거리가 된다.

과진료·과처방은 의료 기관이 유도한 것만은 아니다. 무리한 강권은 반발을 사니 스스로 자청하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언론과 국가 기관의 힘도 좀 빌렸다. 열심히 캠페인하고 문자 발송하고 광고와 방송 프로그램도 만들고 하면서….

이제 좀 안정권에 들었다. 양심적인 전문가들이 아무리 문제없다고 해도 마음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온다. 일전에 사진까지 보여 주며 확인해 줬는데 자꾸 의심을 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찾아온다. 우리 사회에는 히포콘드리악(hypochondriac)들이 너무 많다.

병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뒤지다 보면 별의별 불필요한 검사를 받게 된다. 새로 나온 장비가 좋다니 비싸더라도 시도해 보고 혹 다른 의원 더 큰 병원에서 진찰받으면 새로운 결과가 나올까 싶어 이리저리 헤맨다. 마치 꼭꼭 숨겨진 병이 발견돼야 속이 시원해질 것처럼 말이다.

둘째 해법은 예방 의학 붐이다. 예방 의학 자체가 이런 목적으로 형성됐다는 말이 아니다. 예방 의학을 필수화하고 트렌디한 붐으로 만들어 낸 것이 그렇다는 소리다. 현재 병이 없다면 미래에 생길지도 모를 병으로 장사하면 된다. 여기에 공포가 주효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미래가 가지는 불확실성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소재다. 그 불확실성은 소재 위에 질병 통계 같은 화학 물질을 부으면 건강에 대한 과도한 불안·염려가 생성된다. 그 합성물에 언론과 미디어라는 양념을 조금 뿌리면 사람들은 지레 겁먹고 불필요한 검진도, 불필요한 투약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한 심리 화학 방정식이다.

병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병에 대한 걱정에는 밑도 끝도 한도 없다. 의료 기관의 치료 대상은 존재하는 질병이지 질병에 대한 염려가 아니다. 그러니 의료업계가 키우면 키웠지 이 영원한 ‘먹거리’의 싹을 자를 이유가 없지 않겠나. 예방 차원이라 보험 적용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수익은 더 짭짤할 것이다.

셋째 해법은 병의 창조다. 흔히 병은 생기는 것, 얻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다. 현대 의학에서 병은 전문가들이 병이라고 규정하는 것, 사회가 그런가 보다 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물론 특정 신체와 정신 상태를 병이나 장애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많다.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고 통계가 활용된다. 심각성을 명백해야 하고 피해와의 구체적 상관성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신체 현상에 대해 병이나 장애로 일단 경보 격상시키면 소비자들은 크게 동요한다. “그게 그렇게 심각하다네…. 큰일 나기 전에 너도 빨리 병원 가 봐.” 순간 시장에는 거대한 수요가 창출된다. 이런 식으로 의료 업종은 이른바 ‘창조 산업’의 대열에 동참해 왔다.

최근 각광받는 신종 질병의 사례는 이전 연재에서 언급했던 비만이다. 체격이나 외모의 문제로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질병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클리닉과 약물 들이 시장에 넘쳐난다.

신경 정신 계통은 또 다른 블루오션이다. 병인지, 자연스러운 감정인지, 개인 성격 문제인지 무척 모호한 영역인 만큼 그 성장성이 더 기대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 용어로 설득하면 국가 기관에도, 시장에도 잘 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조현병·우울증·불안장애·공황장애·분노조절장애 등 일상적 정서들이 다 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도 받으라고 한다. 조만간 기쁨 조절 장애나 행복 호르몬 과잉 분비라는 병명이 등장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아직 할 이야기 많지만 나머지는 다음 회에 계속하겠다. 앞으로 10회 정도 현대 의약 산업의 폐해를 다룰 예정이다. 의약 산업이야말로 우리 건강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시리즈 제목처럼 과도한 의약품 의존을 자료를 근거로 파볼까 한다.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업계 전문가들이 있다면 환영이다. 숨어서 하는 댓글 말고 정식 토론을 신청하면 좋겠다. 끝장 토론 좋아한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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