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구속에 노사 갈등, 대규모 화재까지…조현범 체제 ‘흔들’
[비즈니스 포커스]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며 훈풍이 불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이 3년 3개월 만에 다시 구속되면서 ‘오너 공백’이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전 공장에 큰불이 나면서 가동까지 무기한 중단됐다. 대전 공장은 회사 전체 생산량의 20%(1900만 개)를 담당하는 주요 시설이다.
노사 갈등도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임금·단체 협상은 아직도 타결되지 않았다. 노조는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습적으로 작업을 중단하는 ‘게릴라 파업’을 벌이고 있다.
◆3년 3개월 만에 다시 구속
한국타이어에 위기가 닥쳤지만 이를 컨트롤할 수장이 구치소에서 보고받아야 하는 처지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3월 6일 계열사 부당 지원, 횡령·배임 의혹으로 조 회장의 구속 영장을 청구했고 3월 9일 서울중앙지법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구속된 첫 대기업 총수 사례로 기록된 것이다.
조 회장은 효성가 창업자인 고(故) 조홍제 회장의 손자이고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사위이기도 하다.
조 회장의 혐의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다. 먼저 회삿돈을 유용했다. 2020∼2021년 ①지인의 회사가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계열사 한국프리시전웍스(구 MKT) 자금 100억여원을 빌려줘 회사에 손해(배임)를 입혔고 비슷한 시기 ②개인의 집수리와 포르쉐 타이칸, 페라리 488 피스타 등 수억원대의 외제 차를 구입하는 데 회삿돈을 사용(횡령)했다. 검찰이 파악한 횡령·배임액은 200억원대에 달한다.
또 2014∼2017년 MKT의 물품을 ③한국타이어가 제값보다 더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계열사에 이익을 몰아줬고(공정거래법 위반), 그 과정에서 이익이 난 MKT에서 배당금을 챙겼다.
4년간의 부당 지원 기간 동안 MKT는 누적 기준 323억700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누적 매출액은 875억2000만원, 매출 이익은 370억2000만원으로 파악됐다. 해당 기간 MKT의 매출 이익률은 42.2%에 달했는데 이는 경쟁사 대비 12.6%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 몰드 제조 시장점유율도 2014년 43.1%에서 2017년 55.8%까지 높아졌다.
검찰은 한국타이어가 MKT에 몰아준 이익이 조 회장 등 총수 일가에 흘러들어 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MKT는 한국타이어가 50.1%, 조 회장이 29.9%, 조 고문이 20.0%의 지분을 가진다. 2016~2017년 MKT의 배당 성향은 50%가 넘었는데 총수 일가가 주요 주주인 만큼 막대한 배당금이 이들에게 지급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기간 조 회장이 65억원, 그의 형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은 43억원 등 총 108억원의 배당금을 가져갔다.
혐의가 전부 맞다면 조 회장은 대주주로 있는 MKT를 통해 지인에게 돈도 빌려주고 편법 거래로 배당금도 두둑이 챙긴 셈이다.
조 회장의 구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9년 11월 한 차례 구속 수감된 경험이 있다. 당시 조 회장은 2008년부터 약 10년간 하청 업체에서 납품 대가로 뒷돈 6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타이어 계열사 자금 2억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도 있었고 지인의 매형과 고급 주점 여종업원의 아버지 명의 등 차명 계좌를 이용해 이를 은닉한 혐의도 제기됐다. 이후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고 2020년 11월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에는 주가 조작 혐의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조현범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해외 자원 개발과 관련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했고 수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였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다.
◆화재 발생 3일 만에 사과문,
오너 공백에 수습은 전문 경영인이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타이어는 3월 15일 회사 홈페이지에 대전 공장 화재 관련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날 오전 사흘 만에 불이 완전 진화된 후 올린 것이다.
이번 불로 인근 주민들은 화재 대피, 대기 오염, 악취 등의 피해를 봤다. 내부적으로는 지하 1층·지상 2층짜리 2공장이 전소되고 물류 창고에 있던 타이어 21만 개가 불에 탔다. 공장 안에 있던 작업자 10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소방대원 1명도 진화 도중 발목을 다쳤다.
당장 생산이 멈추면서 주요 완성차 업체 타이어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대전 공장은 하루에 타이어 4만~4만5000개를 생산하는데 이 중 65%는 수출하고 35%는 내수용으로 공급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해외 업체와의 계약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공장 재개 시점을 아직 말하긴 어렵다”며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파악하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문은 구속된 조 회장 대신 전문 경영인인 이수일 한국타이어 대표의 명의로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지역 주민 피해 복구에 대해 약속했다. 화재 발생 직후 현장 수습도 이 대표가 지휘했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총수 부재는 기업의 중대한 결정을 늦춘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전기차용 타이어 등 글로벌 신사업 확장과 투자 결정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11% 수준이던 신차용 전기차 타이어 비율을 올해 20%로 높여 잡았다. 2026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미국 테네시 제2공장도 증설하고 있다.
◆최악 땐 경영권 싸움 불씨
일각에선 또다시 터진 오너 리스크에 조 회장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조 회장은 1900억원 규모의 주식 담보 대출로 1년 이자 비용만 1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일감 몰아 주기 수사로 계열사 배당 등 수입원이 막혀 버린 상황이다.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수사 등으로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의 지주사)의 주가가 급락하거나 조 회장이 주식 담보 대출의 이자를 제대로 내기 어려워진다면 보유한 지분의 상당수를 반대 매매 당할 수 있다. 최악에는 형제들의 반격에 지배 구조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3월 15일 기준 1만2190원이다. 연초보다 14% 빠졌다.
국민연금공단의 견제도 부담이다.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지난해 11월 한국타이어와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각각 7.87→8.02, 5.00→6.01로 확대하며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일반 투자는 지배 구조·이사 해임 등에 관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서 한국타이어의 경영 활동 개입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2020년 2월에도 한국타이어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하고 경영 활동에 개입할 여건을 마련해 뒀고 이듬해 3월 주주 권익 침해 이력을 이유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한국타이어는 2020년 경영권을 놓고 ‘형제의 난’을 겪었다. 조양래 명예회장이 2020년 6월 26일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앤컴퍼니(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를 모두 차남인 조 회장에게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경우 증여가 아닌 거래에 해당되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돌아갈 유류분이 없다. 당시 조 회장이 블록딜(매각 대금 약 2400억원)에 사용한 자금 대부분을 현재 문제가 되는 ‘주식 담보 대출’로 마련했다.
조 회장은 단숨에 42.9%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그룹사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나머지 형제들의 지분을 합한 30.97%보다 더 많았다.
결국 장남(조현식 고문)과 장녀(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영권 다툼이 시작됐다. 조 이사장이 조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 후견(한정 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고 장남이 장녀를 지지하며 힘을 보탰다. 성년 후견은 고령·질병·장애 등 정신적인 제약에 따라 사무 처리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다.
분쟁은 조현범 회장이 2021년 말 정기 인사에서 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일단락됐지만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회장직 유지 여부가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