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한국인들의 은행에 대한 코드는?
입력 2023-03-18 06:00:10
수정 2023-04-07 13:59:50
[EDITOR's LETTER]
오늘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RM은 스페인 매체와 인터뷰했습니다. 질문자는 비꼬듯이 “K팝의 젊음과 완벽에 대한 숭배 그리고 지나친 노력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고 물었습니다. RM은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은 침략 당하고 황폐화되고 두 동강 난 나라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이 발전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세기 동안 타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라니 해내려면 그것들이 필요하다. 그게 K팝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K팝 등에 붙는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에 “그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분들이 쟁취해 낸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이다”라고 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K를 말한 김에 화제인 드라마 ‘더 글로리’도 언급해야 할 듯 하네요.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업로드되기를 기다렸고 올라가자마자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마치 애플 제품 출시를 기다리듯 세계인들은 K-드라마 업로드를 기다렸습니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안 되는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답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청한 후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RM의 말대로 K가 들어가는 것은 문화와 산업에서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에 다다른 게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K를 붙이기 부끄러운 영역도 존재합니다. 정치와 외교가 대표적이겠지요. 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금융, 그중 은행업이 가장 시원하지 않아 보입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라고 공격하며 주가를 끌어내렸고 이후 정부 관료들은 앞다퉈 은행 압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과도한 공격에도 은행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은행이 쌓아 온 평판의 수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은행에 대한 생각은 몇 차례 변화를 겪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은행은 산타클로스 같았습니다. 당시 빨간색 돼지 저금통이 있었습니다. 저금통이 꽉 차면 돼지 배를 갈라 동전을 은행에 가져갑니다. 동전은 통장에 숫자로 바뀌고 시간이 좀 흐르면 거기에 이자라는 선물까지 붙여 줬습니다. 이 시기 한국의 은행은 한국 경제에 혈맥 역할을 했습니다. 국민들이 공장에서 번 돈을 저축하면 그 돈을 기업에 보내 산업화의 밑천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1999년 이상한 은행원들을 만났습니다. 나라가 망하다시피해 기업을 막 팔아 치우던 때였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은행원은 조국과 민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은행원이 말끝마다 조국과 민족을 들먹이니 사기꾼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업을 팔더라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악착같이 협상했고 워크아웃 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기 위해 다른 은행들과 싸움도 하고 협상도 했습니다. 반면 전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던 은행들도 있었습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채권 회수와 손실 축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주채권은행 잘못 만나 망한 기업도 여럿 봤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뺏는 게 은행”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런 이유로 아무리 터져도 은행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시중은행의 히스토리와 함께 부도 위기에 처한 미국의 은행들을 다뤘습니다. 미국의 은행들은 요즘 난리도 아니네요. 미국의 상징인 국채를 샀다가 망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2008년 리먼에 앞서 파산한 베어스턴스를 연상하시킨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지요.
다시 한국의 은행 얘기입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란 단어는 식상하기까지 합니다. 말로만 ESG를 떠들 게 아니라 한국의 은행들은 사회와 함께 가는 방법, 평판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리대금업자 취급을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오늘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의 얘기로 글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RM은 스페인 매체와 인터뷰했습니다. 질문자는 비꼬듯이 “K팝의 젊음과 완벽에 대한 숭배 그리고 지나친 노력은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냐”고 물었습니다. RM은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은 침략 당하고 황폐화되고 두 동강 난 나라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이 발전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세기 동안 타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라니 해내려면 그것들이 필요하다. 그게 K팝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K팝 등에 붙는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 않냐는 질문에 “그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분들이 쟁취해 낸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이다”라고 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K를 말한 김에 화제인 드라마 ‘더 글로리’도 언급해야 할 듯 하네요.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드라마가 업로드되기를 기다렸고 올라가자마자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마치 애플 제품 출시를 기다리듯 세계인들은 K-드라마 업로드를 기다렸습니다. 넷플릭스 서비스가 안 되는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답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시청한 후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RM의 말대로 K가 들어가는 것은 문화와 산업에서 품질을 보장하는 라벨에 다다른 게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K를 붙이기 부끄러운 영역도 존재합니다. 정치와 외교가 대표적이겠지요. 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금융, 그중 은행업이 가장 시원하지 않아 보입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라고 공격하며 주가를 끌어내렸고 이후 정부 관료들은 앞다퉈 은행 압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과도한 공격에도 은행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은행이 쌓아 온 평판의 수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은행에 대한 생각은 몇 차례 변화를 겪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은행은 산타클로스 같았습니다. 당시 빨간색 돼지 저금통이 있었습니다. 저금통이 꽉 차면 돼지 배를 갈라 동전을 은행에 가져갑니다. 동전은 통장에 숫자로 바뀌고 시간이 좀 흐르면 거기에 이자라는 선물까지 붙여 줬습니다. 이 시기 한국의 은행은 한국 경제에 혈맥 역할을 했습니다. 국민들이 공장에서 번 돈을 저축하면 그 돈을 기업에 보내 산업화의 밑천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1999년 이상한 은행원들을 만났습니다. 나라가 망하다시피해 기업을 막 팔아 치우던 때였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은행원은 조국과 민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은행원이 말끝마다 조국과 민족을 들먹이니 사기꾼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업을 팔더라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악착같이 협상했고 워크아웃 기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기 위해 다른 은행들과 싸움도 하고 협상도 했습니다. 반면 전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던 은행들도 있었습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채권 회수와 손실 축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기업이 망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주채권은행 잘못 만나 망한 기업도 여럿 봤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뺏는 게 은행”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이런 이유로 아무리 터져도 은행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시중은행의 히스토리와 함께 부도 위기에 처한 미국의 은행들을 다뤘습니다. 미국의 은행들은 요즘 난리도 아니네요. 미국의 상징인 국채를 샀다가 망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2008년 리먼에 앞서 파산한 베어스턴스를 연상하시킨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지요.
다시 한국의 은행 얘기입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란 단어는 식상하기까지 합니다. 말로만 ESG를 떠들 게 아니라 한국의 은행들은 사회와 함께 가는 방법, 평판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리대금업자 취급을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