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하나 짓는데 ‘덩어리 규제’ 수십개…뽑고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대못

윤 정부 1년간 688개 규제 개선했지만
수도권·노동·상법·공정 거래·조세까지
수십개 규제 맞물린 ‘덩어리 규제’ 지뢰밭
“시대 변화 맞춰 규제 철학도 바뀌어야”

[비즈니스 포커스]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 기획 : 규제를 규제하자

그래픽=송영 기자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다. 2023년 3월 20일까지 무역 수지 적자는 240억 달러로, 2022년 무역 수지 적자 폭(472억 달러)의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 부진이 계속 이어지면서 1%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제는 올해도 수출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끌어내리고 있다. 2022년 11월 2.2%에서 1.8%로, 최근 1.6%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주요 20개국과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은 것과 대조되는 암울한 전망이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막는 규제 장벽을 해소해 투자와 수출을 지원하고 민간 활력을 높여 저성장의 파고를 넘겠다는 계획이다. 저성장 고착화의 위기를 떨쳐내기 위한 해법으로 ‘규제 개혁’이 손꼽힌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때부터 기업의 경영 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비유하며 과감한 규제 철폐를 강조해 왔다. 1년 전 윤 대통령은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성장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지난 1년간 규제 혁신을 통해 688개 과제가 개선됐고 향후 5년 내 34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기업 활동과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모래 주머니 규제에 시름하고 있다.

특히 올해 가장 시급한 규제 개혁 과제로 ‘덩어리 규제’ 해소가 꼽힌다. 덩어리 규제는 공장 설립을 포함한 투자 과정에서 입지나 환경 규제, 공장 총량제, 문화재 규정 등 수십 개 규제가 맞물린 것을 말한다. 여러 부처와 법령이 얽혀 있어 개별 규제보다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경비즈니스는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의뢰해 ‘덩어리 규제 개혁 과제’를 선정했다. △수도권 규제 개혁 △노동 규제 개혁 △상법 개혁 △공정 거래 개혁 △조세 개혁 등 5가지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덩어리 규제에 대한 개혁 없이 개별 규제 몇 개를 없앤다고 기업이 느끼는 규제 개혁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며 “규제 개혁은 규제 대상에 대한 철학의 문제로 귀결되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규제 철학을 바꾸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① 수도권 규제 개혁

수도권 규제는 서울과 인근 수도권에 인구와 경제력이 더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행정 조치를 말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등 여러 법률에 걸쳐 있는 수도권 규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첨단 산업 단지 조성과 리쇼어링, 해외 대기업 유치 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기도 광주 오포읍에 있는 롯데칠성음료 공장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에 공장 증설이 막혀 1979년 설립된 이후 40년 넘도록 공장을 단 3.3㎡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에 막혀 생산은 광주에서, 제품 보관은 대전에서, 공급은 수도권에 하면서 생산품을 보관할 창고마저 부족해 연간 3억원 이상의 물류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수도권 규제는 반도체 인재 양성에도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다. 40년 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반도체·배터리·미래차·디스플레이 등 전략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매년 1600명의 인력이 부족하지만 매년 대학에서 관련 전공 졸업생은 650명에 불과하고 그중 고급 인재로 분류되는 석·박사급 인재는 15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미래 신 주력 산업 인력 수급 상황 체감 조사’에 따르면 인력 부족 현상을 겪는 한국 반도체 기업은 45%에 달한다. 우수한 인재를 대거 양성하려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 등을 조속히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세액 공제 등 혜택을 제공해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본국으로 회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산업의 생산 시설을 미국 내로 유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핵심 원자재법(CRMA)과 탄소 중립 산업법을 통해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리쇼어링 등 역내 친환경 산업 투자를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정부는 최근 수도권에 300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지방에 14개 첨단 산업 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등 해외에 있던 반도체, 2차전지 등 생산 공장을 한국으로 유턴시키는 리쇼어링 촉진을 위해 한국의 제조 시설 신·증설의 걸림돌로 꼽히는 수도권 공장 입지 규제 완화가 해법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 26일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 혁신 전략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② 노동 규제 개혁

노동 시장의 경직성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대표적 요인으로 지목받아 온 지 오래다. 한국의 노동 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조건이 법적으로 구분되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은 높은 노동비용으로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반면 중소기업은 저임금으로 인력난 등을 겪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중 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소하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노동 관련 법제의 전반적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신축적 근로시간제도, 임금 체계 개편, 고용 유연성이 확보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2023년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 시장 자유도는 글로벌 하위 수준이다. 한국은 평가 대상 184개국 중 15위로 높은 종합 순위를 기록했지만 ‘노동 시장’ 부문에서 ‘부자유’ 등급을 받아 사실상 낙제점을 받았다.

헤리티지재단은 “경직된 노동 시장 규제, 강성 노조 활동으로 기업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며 “고령화와 낮은 노동 생산성, 높은 수출 의존도, 확장적 재정 정책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재단은 주52시간 근무제가 전격 시행됐던 2021년에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한국 노동 시장이 더욱 경직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노동 시장 유연성 평가 부문에서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노동 시장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로 꼽힌다.

한국경영학회·한국경제학회·한국정치학회·한국사회학회가 2022년 1084명의 학회 회원(교수·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한 결과 윤석열 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좋은 일자리의 지속 가능한 창출(96.3%)’이 꼽혔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85%가 동의했고 이를 위해 ‘기존 노동자의 이직 및 해고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60%가 동의했다. ‘노동 시간의 신축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은 28%였다.


그래픽=송영 기자


③ 상법 개혁

2020년 개정된 상법이 대주주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정되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3년 3월 정기 주주 총회에 주주 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기업이 32곳으로 1년 전보다 2배로 늘었다. 안건별로 보면 이사·감사·감사위원 등의 선임 안건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현금과 주식 배당(19건), 정관 변경(13건), 주식의 취득·소각·처분(6건)이 뒤를 이었다.

감사위원 선임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은 기업이 자유롭게 지배 구조를 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해외 투기 세력이 경영권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는 게 경영계의 시각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외국 기업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는 이유는 해외보다 취약한 경영권 방어 환경이 지적된다. 미국·유럽·일본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3대 경영권 방어 수단인 상법상 차등 의결권, 포이즌 필(신주 인수 선택권), 황금주 등을 활용할 수 없다.

차등 의결권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으로,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경영권이 위협받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를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콜 옵션을 부여해 인수 시도 자체를 저지할 수 있는 조항이다. 황금주는 단 1주만으로 주총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이다.

전경련이 2021년 기준 자산 상위 100대 기업(금융사 포함) 정관을 분석한 결과 경영권 방어 조항을 채택한 기업은 8곳에 불과했다. 도입한 방어 수단도 이사 해임 규정을 상법 특별결의 요건보다 조금 더 강화하거나 시차임기제 정도에 그쳤다. 해외 경쟁 기업들이 차등 의결권, 포이즌 필, 황금주 등 적극적 방어 수단을 활용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주주 의결권 제한(3% 룰), 감사위원 분리 선임제 등이 대주주의 책임 경영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④ 공정 거래 개혁

한국의 공정거래법은 ‘경쟁법+경제력 집중 억제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지나치게 복잡하고 모호해 해외 글로벌 대기업 대비 차별적 규제가 많다. 공정거래법을 경쟁 촉진을 주목적으로 하는 ‘경쟁법’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기업 규모별로 차등 적용되는 ‘대기업 차별 규제’가 많다. 전경련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차별 규제는 총 48개 법령에 275개에 달한다. 대기업 차별 규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법률은 공정거래법으로 그 수가 70개(25.5%)에 달했다. 이어 금융지주회사법(41개·14.9%), 금융복합기업집단법(41개·14.9%), 상법(22개·8.0%), 자본시장법(16개·5.8%), 산업안전보건법(11개·4.0%) 등의 순이었다.


그래픽=송영 기자



기업이 대규모 기업 집단에 지정되면 적용 가능한 규제의 개수가 더 늘어난다. 기업이 성장 후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 집단에 지정되면 67개 규제의 적용을 추가로 받는다.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 출자 제한 기업 집단에 들어가면 58개의 규제가 추가 적용된다.

정·재계에선 폭주 기관차처럼 쏟아지는 의원 입법을 검증할 수 있는 규제 영향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신설·강화된 규제 법률 304건의 89.1%인 271건이 의원 입법에 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에선 정부 발의 법률안보다 의원 발의 법률안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의원 입법을 통해 많은 규제가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정부 법률안은 소관 부처의 규제 영향 분석과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받게 돼 있지만 의원 입법은 심사 과정에 해당 법안이 어떤 규제를 포함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절차가 없어 그간 규제 법안의 양산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첫째 규제 혁신 전략 회의에서 경제 형벌 규정에 대해 “현실에 맞는 않는 법령 한 줄, 규제 하나가 기업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며 “글로벌 기준이나 시대 변화와 괴리된 부분은 원점에서 과감하게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가 민간 경제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경제 형벌 규정 108개를 완화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공정거래법상 단순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경우 적용하던 형벌 규정을 과태료 부과로 완화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태료는 형벌에 속하지 않아 벌금과 달리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동안 경영계에선 단순히 신고나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고 전과 기록이 남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다만 대기업 집단 자료를 누락한 경우 형벌 개선은 아직 논의 중이다. 경영계에선 친족 범위가 너무 넓어 이들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고 대기업 집단 동일인(총수)의 친족에게 자료 제출을 강제하는 규정이 지나치다고 본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의 자료를 파악·관리하도록 하고 있어 친족 관련 자료에 문제가 있는 경우 동일인이 형사 처분 위험(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감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최태원 SK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대기업 집단 지정 자료를 누락한 혐의로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최 회장은 동생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계열사 임원이 지분을 소유한 킨앤파트너스 등 4개 회사를 지정 자료에서 누락했는데 공정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박 회장은 지노모터스·지노무역·정진물류·제이에스퍼시픽 등 처남 일가의 회사 4곳에 대한 지정 자료를 누락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경영계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여전히 과도한 규제라고 본다. 해외 주요국 경쟁법(공정거래법 등)에는 한국과 같은 친족 기반의 대기업 집단 규제가 아예 없고 회사법(상법) 등에서 예외적으로 일정 범위의 가족을 포함하는 규제가 있지만 그 범위도 대부분 2촌 이내 혈족·인척 수준에 그친다.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예외 없이 일괄적으로 ‘4촌 이내의 혈족, 3촌 이내의 인척’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경영계의 요구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2023년 2월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규제샌드박스 혁신기업 간담회'에서 관절운동에 도움이 되는 재활로봇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지=한국경제신문

⑤ 조세 개혁

조세는 규제의 영역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기업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인 한국의 법인세(현재 최고세율 24%)를 인하하고 과세 구간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전경련이 최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23년 세법 개정 건의’에 따르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6.4%(지방세 포함)로, 2022년 세법 개정으로 법인세율을 인하했음에도 여전히 미국(25.8%), 프랑스(25.8%), 영국(25.0%) 등 주요 선진국 수준을 웃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 개선도 시급하다. 한국의 직계 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약 25%)의 2배에 달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승계 시 최대 주주 등에게서 주식을 상속 받을 경우 할증 평가(20% 가산)가 이뤄져 사실상 60%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며 이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높은 상속세로 인해 상장회사의 대주주는 주가를 높게 유지할 동기가 없으므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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