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법 유효”…檢 수사 범위, 부패‧경제 범죄로 굳어지나 [김진성의 판례 읽기]

헌재 “검사 수사권, 헌법상 권한 아냐” 권한 쟁의 기각·각하
한동훈 “왜 깡패·마약 수사 못하나”

[법알못 판례 읽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2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강행해 국회에서 가결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이 유효하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입법 과정에서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의 법률 가결 선포 행위도 무효로 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이 같은 결정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지금 법률대로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로 사실상 확정됐다.

의견 5 : 4로 팽팽…“수사권, 특정 기관 독점 아냐”

헌재는 2023년 3월 23일 대심 판정에서 연 권한 쟁의 심판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일부 검사가 각각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 침해 확인 및 법개정 무효 확인 청구를 5 대 4 의견으로 각하했다. 권한 쟁의 심판은 헌법에 근거를 둔 국가 기관 간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놓고 다툼이 생겼을 때 헌재가 유권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다수 의견인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국회는 입법 행위를 통해 국가 기관의 ‘법률상 권한’을 부여한다”며 “국가 기관의 ‘법률상 권한’은 다른 국가 기관의 행위로 침해될 수 있을지언정 국회의 입법 행위로는 침해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국가 기관의 권한을 만들어 준 게 국회이기 때문에 국회에 역으로 ‘권한 침해’를 따질 수 없다는 의미다.

이들 재판관은 검사의 수사권과 소추권도 헌법상 권한이 아니라고 봤다. 한 장관 등이 “헌법이 영장 청구권자로 검사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수사권 역시 헌법상 검찰의 권한”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배치되는 판단이다.

재판관들은 “수사·소추 자체는 원칙적으로 입법·사법권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 기능으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부여된 ‘헌법상 권한’”이라며 “이 권한을 특정 국가 기관에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헌법상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법무부와 검찰의 주장과 달리 “헌법에 영장 신청권 조항은 수사 과정에서 남용될 수 있는 강제 수사를 ‘법률 전문인 검사’가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수사 기관(검찰)이 자신의 수사 대상에 대한 영장 신청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도 했다. 재판관들은 또한 권한 쟁의 심판 청구인에 이름을 올린 한 장관에 대해 “수사권·소추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기에 청구인 자격 자체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다만 검수완박법 시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검사의 수사‧소추권을 헌법상 권한으로 인정하면서 검수완박법으로 인해 이 권한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검사의 영장 신청 자체가 ‘국가의 수사 기능’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수사권’ 행사에 해당한다”며 “법률 취소를 통해 검사들의 침해된 권한을 즉시 회복시켜야 한다”고 했다.


2022년 9월 27일 '검수완박법' 권한쟁의심판 첫 공개 변론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을 반대하는 시민이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장 탈당’ 등 입법 과정에서 문제는 인정

헌재는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 쟁의 심판에선 5 대 4 의견으로 국회 법사위원장의 가결 선포 행위의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비교섭 단체 몫의 조정위원이 되려는 것을 당시 법사위원장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알고도 묵인했다고 봤다.

다수 의견은 “민 위원은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비교섭 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돼 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함께 안건조정위의 의결 정족수를 충족시킬 의도로 민주당과 협의해 민주당을 탈당했다”며 “법사위원장은 회의 주재자로서의 중립적 지위에서 벗어나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뒀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2021년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는 입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2022년 4월 15일 검수완박법 발의에도 민주당 동료들과 함께 참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던 그는 4월 18일 법사위에 보임됐고 이틀 후인 20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민 의원이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의 비교섭 단체 몫 위원이 되면서 민주당은 검수완박법이 법사위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 찬성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총 6명으로 이뤄진 안건조정위는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당시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국민의힘 2명·비교섭 단체 1명으로 구성됐다.

헌재는 다만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의 검수완박법 가결 선포 행위는 유효하다고 봤다.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이미선 재판관이 ‘유효하다’는 쪽에 표를 던지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낸 무효 확인 청구가 4 대 5 의견으로 기각됐다.

기각 의견을 낸 다른 네 명의 재판관(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은 국회의원 권한 침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선 재판관은 “법률안 심의·표결권 침해는 인정하지만 심의·표결권이 전면 차단돼 의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회 기능을 형해화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며 “국회의 입법 형성권을 존중하기 위해 기각한다”고 했다.

무효를 주장한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무제한 토론 및 수정 동의에 대한 국회법을 위반했다”면서 “(이대로면) 다수당의 당론에 입각한 일방적 입법 추진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돋보기]
검찰 수사권 두고 한동훈-민주당 공방 ‘여전’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이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린 뒤에도 검찰 수사권을 둘러싼 논쟁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무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귀)’ 시행령까지 무효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국민의힘은 검수완박법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행령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헌재 결정 후 연일 “‘검수원복’ 시행령 무효”를 외치고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3월 27일 한 방송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수완박법) 취지는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는 것인데 법무부의 시행령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며 “법무부가 시행령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가 다시 (법률) 개정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승원 의원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한 장관에게 “검수완박법이 유효로 확정됐으니 입법 취지에 따라 시행령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검수원복으로 불리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은 검수완박법에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에 공직자·선거·방위 산업 범죄 중 일부를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직권 남용·직무 유기·허위 공문서 작성·뇌물 등 일부 공직자 범죄와 매수·이해 유도·기부 행위 등 일부 선거 범죄가 부패 범죄로 분류됐다. 기술 유출 등 일부 방위 산업 범죄는 경제 범죄 목록에 들어갔다. 이 밖에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와 ‘서민의 안전을 위협해 불법적 이익을 착취하는 범죄(폭력 조직·보이스 피싱 등)’, ‘사법 질서 저해 범죄(무고죄·위증죄 등)’도 중요 범죄에 포함됐다.

한 장관은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검수원복) 시행령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맞서고 있다. 그는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왜 깡패·마약·무고·위증 수사를 못 하게 되돌려야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사과를 요구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입법 과정에서 ‘위장 탈당’하는 위헌·위법이 명확하게 지적된 상황에서 사과는 민주당 의원들이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해당 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한 장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법사위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을 진정성 있게 사과하고 민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위법한 꼼수가 동원된 검수완박은 정당한 것이고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권한 쟁의 심판 청구와 시행령 개정은 탄핵 사유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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