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잘나가던 배달 앱의 위기

비싼 배달비·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에 이용자 대거 이탈

[비즈니스 포커스]

강남 대로를 지나다니고 있는 배달 오토바이. 사진=한국경제신문


주부 신혜원(여·40) 씨는 1주일에 세 번 이상 음식을 배달 시켜 먹는 ‘배달 음식 마니아’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켜는 일이 뜸해졌다. 많이 오른 배달비 때문이다. 그는 “자주 시켜 먹던 식당의 배달료가 1만5000원 이상 주문하면 무료였는데 최근 3900원이 됐다”며 “배달료가 아깝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워 배달 음식을 시키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가흔(남·38) 씨는 다니던 회사가 재택근무를 종료하면서 배달 앱을 사용하는 일이 급감했다. 매일 아침을 커피로 시작하는 그는 지난해 한창 재택근무를 할 때만 하더라도 커피를 시키기 위해 배달 앱을 켜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점심도 배달시켜 먹는 경우가 잦았다. 이제는 달라졌다. 그는 “출근하게 되면서 커피는 회사 근처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을 하고 점심은 구내식당이나 회사 인근 식당에서 해결한다”며 “요즘에는 배달 앱을 켜는 일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최대 호황을 누렸던 배달 앱이 최근 사용자들의 이탈이 이어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의민족만 보더라도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크게 오른 배달료와 함께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에 따른 재택근무 종료 등이 이전과 비교해 배달 앱을 찾는 빈도수를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 앱의 위기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예는 숫자다. 2년 사이 긍정적이었던 시장 지표가 올해 들어 부정적으로 전환됐다.배달 시장 성장세 둔화코로나19 사태가 기승을 부리며 배달 앱이 일상으로 파고든 2021년만 하더라도 배달 시장을 나타내는 수치들은 하나같이 ‘굿’이었다.

우선 시장 규모.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25조6783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9조7365억원)과 비교하면 2년 새 3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다.

수많은 이들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 아래 외출을 자제했다.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배달 시장은 최대 호황을 맞았다. 아침·점심·저녁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용자들이 배달 앱에 몰려들었다. 배달은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부상했다.

다음은 기업들의 몸값. 시장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관련 기업들의 몸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2021년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이 시장에서 대대적인 인수·합병(M&A)이 펼쳐졌던 해다. 2021년 3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을 7조6735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7개월 후인 같은 해 10월 DH가 운영하던 음식 배달 앱 서비스 요기요가 약 8000억원에 GS리테일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한 해 동안 8조원이란 금액이 배달 시장 안에서 오간 것이다. 시장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시장을 바라보는 전망은 밝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도 이미 일상이 된 배달 열기는 꺾이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주를 이루며 M&A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특수가 배달 기업들의 몸값을 지나치게 높였다는 ‘거품 논란’도 일었다. 하지만 이보다는 활활 타오르는 배달 시장을 한국 기업이 아닌 독일 기업인 DH가 집어삼킨 것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하지만 끝 모르고 이어질 것 같았던 배달 앱의 인기는 올해 초를 기점으로 빠르게 식어 가는 모양새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월 배달 앱 3사(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의 지난 1월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는 총 3021만4134명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월(3623만3151명) 대비 16.6% 감소했다.

시장 규모 자체도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서비스(배달 음식) 온라인 거래액은 26조339억원으로 전년보다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7년부터 매년 두 배 가까이 커졌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장세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11월에는 배달 음식 온라인 거래액이 2조232억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2.3% 감소하기도 했다.
‘이중 가격’ 논란으로 부정적 인식도 확산배달 시장이 빠르게 식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급등한 배달 가격을 꼽는 사람이 많다.

배달 가격이 급등한 이면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다. 일단 배달 음식을 전달해 주는 라이더 수가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 배달 시장이 한창 호황이었을 때는 라이더 수도 많아 낮은 단가에도 음식을 배달하려는 이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구체적인 수치는 찾기 힘들지만 최근 배달 수요가 급감하면서 이전보다 라이더들의 수도 크게 줄었고 이는 결국 라이더들의 배달 비용 단가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라이더가 줄면 자연히 소비자들이나 식당 점주가 부담해야 하는 ‘배달팁’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물가 상승도 빼놓을 수 없다. 배달 단가와 함께 식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식당 점주들 역시 음식 가격을 높일 수 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 점주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진행할 때마다 내야 하는 ‘배달팁’을 높이는 방법을 활용해 높아진 원가 부담을 상쇄하는 추세다. 한 배달업계 관계자는 “배달팁은 식당 점주가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과 소비자 부담 비용을 임의대로 정할 수 있는데 최근 배달료가 높아진 것은 식당 점주들이 음식 값을 높이지 않는 대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배달팁의 비율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식당 점주들도 할 말은 있다. 한 식당 점주는 “배달 인건비가 오르고 원재료 가격도 크게 오른 마당에 배달 앱들마저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모션 등을 조정해 배달 수수료를 인상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만 보더라도 지난해부터 중개 수수료(기본형 기준) 6.8%(전체 음식 값 기준)에 배달비 6000원으로 요금제를 개편했다. 오랜 기간 시행해 왔던 중개 수수료 1000원, 배달비 5000원 프로모션을 종료한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느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음식을 직접 테이크아웃하거나 아예 배달 자체를 시키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김태진(남·40) 씨는 “비싸진 배달요금에 요즘에는 직접 식당을 방문해 음식을 테이크아웃하거나 아예 배달 앱을 사용하지 않고 밀키트 등을 활용해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된 것도 배달 앱에는 악재다. 만약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 시행됐더라면 아무리 배달비가 높아졌더라도 많은 이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배달 앱을 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재택근무를 종료했고 빼앗겼던 일상도 다시 돌아왔다. 서울 전역의 맛집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긴 대기줄이 만들어지는 등 사람이 몰린다.

한편 배달 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탈을 가속화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한 조사 기관에 따르면 배달 앱에 입점한 일부 식당들이 앱상에서 매장보다 비싼 가격을 책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식당 매장에서는 1만7000원짜리 치킨이 배달 앱에는 1만9000원으로 표시돼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배달 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나빠졌다.

배달 앱 업계 내부에서도 이제 ‘잔치는 끝났다’는 부정적 예측이 솔솔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큰 특수를 누렸는데 사실상 엔데믹(주기적 유행) 시대가 왔다”며 “개인적으로 ‘위기’까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업계 상황이 다시 좋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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