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작복작 시장통 사이…스타벅스 경동 1960점 [MZ 공간 트렌드]

합석은 너무도 당연한 일…젊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장의 맛

스웨덴에서는 줄을 설 때 양팔을 뻗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둔다. 그만큼이 스웨덴인의 퍼스널 스페이스다.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나라나 문화마다 다르다. 미국은 89cm, 일본은 약 1m다. 한국의 전통 시장에서 지켜지는 퍼스널 스페이스는 30cm쯤 될까.

1호선 제기역 2번 출입구로 나와 걸으면 경동시장 정문이 보인다. 정문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간다. 수레를 끄는 할머니, 건어물이 담긴 바구니를 유심히 보는 아주머니, 사람들을 밀쳐대는 아저씨,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가 각자의 속도로 걷는다. 좁은 골목이니 자꾸 부딪치고 빨리 가고 싶어도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속이 터진다. 드디어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온다.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건어물 파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한다. “스타벅스 갈라믄 저짝으로 올라가요. 3층.” 드디어 찾았다. 경동시장 한복판에 있는 스타벅스.

스타벅스 경동1960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과거 영화관 출입문에는 푹신한 쿠션이 붙어 있었다.


벽에는 영사기로 주문자의 닉네임과 주문번호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간다.

1994년 폐관한 극장을 개조한 스타벅스

2022년 12월 경동시장에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이 문을 열었다.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원래 경동극장이 있던 자리다. 1970~1980년대는 건물 전체가 영화관이거나 상영관이 1개뿐이었다. 영화관 외벽에는 화가가 그린 포스터를 걸고 사람이 직접 필름 영사기에 필름을 감아 영화를 틀었다. 영화표가 모두 팔리면 입석표를 사 바닥에 앉아 영화를 보기도 했다. 경동극장은 1962년 개관돼 1994년 폐관됐다.

경동시장 본관 3층으로 올라가면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이 그려진 둥근 간판 아래 영화관처럼 큰 문이 있다. 문을 열면 금빛 할로겐 조명이 환하다. 경사진 짧은 복도를 올라가 뒤를 돌면 극장에 와 있는 듯한 풍경이다. 계단식의 공간 구조와 층별로 놓인 좌석들, 맨 꼭대기에는 영사실도 있다. 벽면에는 주문 번호와 닉네임이 영사기로 나오는데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아래에서 위로 롤링된다. 992㎡ (300평)의 규모, 200여 석의 좌석이지만 수요일 낮 3시에도 만석이었다. 카페에서 틀어주는 음악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말소리와 커피 원두가 갈리는 소리, 바리스타가 원두를 탬핑하는 소리가 한데 섞여 윙윙거린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아래로 스타벅스 직원들이 음료를 만드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보인다. 무대 위 뮤지컬 배우 같다.

영사실을 그대로 살렸다. 안에 공간은 스타벅스 직원들의 휴게공간으로 쓰인다.
변화하는 젊은 기운 부르는 경동시장의 노력
경동시장은 1960년 4층 규모의 건물로 지어졌다. 이곳에 상인들이 입주했다. 을지로와 종로에 있던 한약상들이 경동시장으로 이주하면서 전국의 약재상들이 모였다. 하지만 유동 인구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고 유통 시장이 변하면서 공실률이 60%에 달했다. 경동시장은 젊은 세대의 유입률을 높이기 위해 청년몰, 작은 도서관, 키즈카페 등 복합 문화 시설과 대학생·청년 봉사단 서포터즈,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뮤지션 공연과 한정 메뉴 등 차별화된 경험도
경동시장은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스타벅스에 입점을 먼저 제안했다. 과거 스타벅스 기준으로는 입점이 불가한 위치지만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MZ세대(밀레니알+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장점이 많은 곳이라고 판단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기획부터 오픈까지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고 디자인팀과 점포개발팀 등 여러 팀이 협업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경동 1960점은 스타벅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존 극장 공간의 형태를 유지했다. 매장을 찾아온 고객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청년 뮤지션의 공연도 선보인다. 일부 매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정 메뉴도 있다. ‘우리사과파이’와 ‘펌킨 크림치즈 브레드’ 등이다. 평일 1000명, 주말에는 2000명의 고객이 방문한다. 의미 없이 심미적으로만 접근했다면 이 정도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로컬과 소비자의 특성을 잘 살린 특색 있는 공간이다.

영화관 좌석처럼 디자인한 가구. 영화관 팔걸이를 두고 옆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팔걸이 문제로 옆에 앉은 관람객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공간의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오브제와 콘셉트가 아닌 ‘사람’
대부분의 고객은 중·장년층이었다. 노인들도 많았다. 유모차를 끈 부부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만 명은 돼 보이는 트렌디한 패션의 여자·남자들도 있었지만 맥북을 펼쳐둔 ‘혼공족’은 한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합석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방문했을 때는 운 좋게 테이블 하나를 두고 양옆에 의자가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혼자 왔는지 옆 의자에 털썩 앉는다. 30년 전 영화표가 매진돼 계단에 앉아 영화를 보던 시절을 떠올린다. 난 그 세대 사람이 아니라 겪어 보지 않았지만 그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조금이라도 더 앉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테다. 복작거리는 시장통과 스타벅스, 낯선 이와 나란히 앉아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윤제나 한경무크 기자 ze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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