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컵 없앨 수 있을까? 상상을 현실로 만든 리컵

유럽 ESG 최전선

[ESG 리뷰]

다회용기 리컵과 리볼.사진 제공=리컵


독일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민트색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브랜드 커피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다회용 컵 ‘리컵(Recup)’ 사용자다. 특정 커피를 마신다는 이미지보다 다회용 컵 사용자라는 이미지가 더욱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 독일에서 다회용 포장 용기 사용이 의무화되면서 리컵은 또 다른 도약을 맞이했다. 독일 청년 2명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어떻게 독일 시스템의 일부가 됐을까.

리컵, 독일 판트 시스템으로

독일 환경부에 따르면 독일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컵은 시간당 32만 개다. 그중 14만 개가 테이크아웃 음료 컵이다. 베를린에서만 하루 46만 개의 일회용 컵이 버려진다. 친환경 인식이 비교적 높은 독일도 일회용품의 편리함은 쉽게 버릴 수 없다.

경영학을 전공하던 플로리안 파할리와 파비안 에케르트에게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2016년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같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리컵을 창업했다. 다회용 용기를 도입하는 아이디어 자체는 새롭지 않았다. 독일 곳곳에서 텀블러나 다회용기 사용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좀 더 편리한 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다 독일에서 일상화된 플라스틱병 보증금(판트) 제도를 차용하기로 했다. 독일 전역에서 도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번거로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소비자들은 보증금 1유로를 내고 다회용 컵인 리컵을 사용한다. 사용 후 가까운 리컵 가맹점 어디에서나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회원 가입 등 개인 정보를 제공할 필요도 없다. 사업자도 똑같이 1개당 1유로로 리컵을 공급받는다. 반환된 컵은 식기세척기로 세척해 재사용한다. 리컵에 따르면 컵 하나를 17회 이상 사용해야 일회용 컵을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리컵은 최대 1000회까지 사용할 수 있고 수명이 다하면 생산 시설로 보내 재활용한다.

창업자들은 처음 리컵을 만들어 로젠하임이라는 소도시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카페 26곳이 참여했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독일 전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2017년 뮌헨의 카페 50곳과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6년 만에 참여 매장 2만 곳 돌파

참여하는 매장이 많을수록 소비자의 편의성이 높아진다. 리컵은 뮌헨·베를린·함부르크를 중점으로 참여 매장을 확장했다. 개인 사업자는 물론 프랜차이즈도 리컵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유기농 슈퍼마켓인 비오 컴퍼니, 알나투라, 덴스 비오막트 내 카페,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커피 펠로, 셸 주유소 등과 계약하면서 독일 전역에 계속 확장됐다. 리컵은 사이즈를 다각화하고 음식 포장을 위한 리볼(Rebowl)도 출시했다. 시스템은 리컵과 같지만 보증금 5유로를 받는다.

현재 리컵과 리볼을 제공하는 파트너 매장은 2만 곳이 넘는다. 특히 독일에서 다회용기 의무화가 시작된 2023년 이후 2개월 동안 파트너사가 3800곳이나 증가했다. 패스트푸드점부터 백화점·주유소·베이커리 등 대부분 대규모 체인점이다.

독일은 포장법 개정을 통해 2023년부터 요식업 부문에 다회용 용기를 의무화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등은 다회용기를 의무적으로 비치하고 고객들은 음식이나 음료를 포장 구입할 때 다회용기를 사용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고객이 다회용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추가 비용을 부과해서는 안 되고 보증금 시스템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직원이 5인 이하거나 매장 면적이 80㎡ 이하여만 해당 의무에서 제외된다.

웬만한 규모의 식당이나 카페, 전국구 체인점은 좋든 싫든 다회용기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 자체적으로 다회용기를 제작하거나 리컵처럼 기존 시스템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면 다회용기에 자사 브랜딩이 가능하지만 해당 매장에서만 반납할 수 있다. 리컵은 사업자의 개별 로고를 표시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는 독일 전역 그 어느 매장에서든 반납할 수 있다. 리컵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슈퍼마켓 체인점인 에데카는 자체 다회용 컵 시스템을 구축했다. 슈퍼 체인으로 지역 곳곳에 네트워크가 있고 대부분이 재방문 고객인 만큼 자체 시스템 구축의 이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버거킹은 리컵을 선택했다. 버거킹 측은 “재사용은 가능한 한 편리해야 한다. 많은 장소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반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다회용 컵은 실제로 여러 번 사용돼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실질적 이점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재사용 네트워크를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리컵 측은 “경험에 따르면 소비자가 재사용 시스템을 수용하는 핵심 요소는 유통과 접근성”이라며 “버거킹과 협력해 독일 전역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고 일상에서 자원을 절약하고 일회용 포장 폐기물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파비안 에케르트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파트너사가 100% 증가했다”면서 “시스템이 복잡하지 않고 포괄적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정표는 일회용 포장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우리의 사명에 순풍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자와 직원 수용도 높여야

리컵의 성장세가 빠른 만큼 실제 운용에서 개선할 점도 보인다. 특히 일선에서 다회용기를 다루는 직원들의 수용도가 높지 않다. 직원들은 다회용기 수거 및 보증금 반납, 세척 등의 추가 일거리만 늘어나니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리컵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 카페 몇 군데를 직접 찾아갔다. 프랜차이즈 차원에서 리컵을 도입한 일부 매장은 다회용 컵을 아예 비치하지 않거나 거의 숨겨 두는 수준으로 비치한 곳도 있었다. 고객이 먼저 알고 찾지 않는 이상 다회용 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올해부터 리컵을 도입한 버거킹에서는 리컵으로 주문해도 직원은 거의 자동으로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줬다. 오랜 기간 구축된 관성이 바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친환경 매장을 운영하겠다는 사장의 의지와 실제로 일하는 직원들 간의 간극을 좁힐 필요가 있다.

한편 독일 소비자들은 꽤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 독일 주유소 체인 HEM이 리컵 도입을 준비하며 지난해 7월 수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가 다회용기 의무 도입에 찬성했고 다회용기 반환을 위해 추가적 노력을 기울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용기를 반환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계속 일회용품을 선택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7%에 불과했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쓰레기통을 찾아 버리는 것만큼 다회용기 반환이 쉬워진다면 소비자의 수용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에케르트는 처음에는 대학에 리컵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어느새 리컵은 독일 전역에 안착했고 다회용기 사용 의무화로 또 한 번 폭발적 성장을 앞두고 있다. 에케르트는 친환경 매거진 ‘바쉬배어’에 “테이크아웃 영역에서 일회용기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우리의 비전이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 스타트업이 구축한 시스템이 국가 전역의 시스템으로 확대됐다. 다회용기 의무화도 처음에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리컵은 그러한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베를린(독일)=이유진 객원기자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28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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