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많이 보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탁구 라켓과 탁구공의 가격을 합치면 1만1000원이고 라켓이 공보다 1만원 비싸다면 탁구공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궁금하면 500원’입니다.
오래전 처음 이 문제를 보고 대번에 “1000원이네” 했습니다. 휴리스틱, 어림짐작의 오류 때문이지요. 뇌가 게을러 생기는 현상이라고도 하고 인지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위한 뇌의 구두쇠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도 합니다.
휴리스틱과 함께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는 확증 편향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지요. 한 실험에서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선거 때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뇌의 다양한 부분 가운데 정보를 감성적으로 처리하는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의역하면 지지 후보 연설 때는 가슴 뜨겁게 심장으로 듣고 반대하는 후보의 말은 의심하며 하나하나 따져보는 차가운 뇌로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에 속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면 “팩트 날조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이 확증 편향은 필터 버블과 에코챔버 효과에 의해 강화됩니다. ‘생각 조종자들’이란 책에 등장한 용어를 10여 년후 다시 불러왔습니다. 필터 버블은 알고리즘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된 정보만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스스로 필터 버블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페친’을 끊어버리고 비슷한 성향의 동영상만 줄곧 시청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정보를 회피합니다. 한쪽에서는 대장동, 방탄 국회 얘기만 나오면 못 들은 척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청, 독도 얘기에는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도청 하니 생각나는 게 중국입니다. 2000년대 초 장쩌민 국가주석의 전용기에서 도청 장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국이 제조한 비행기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과 맞짱 뜰 힘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진핑은 못 참고 야욕을 드러내 세상을 혼돈으로 몰고 갔지요. 최근 한국에서도 도청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광양회 같은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게 뭔지 알고 싶긴 합니다.
다시 인지 편향 얘기입니다. 필터 버블과 연결된 에코챔버 효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울리는 방에서 소리를 내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효과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만 소통하게 되고 편향은 더욱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런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건전한 토론을 방해하고 합의를 가로막습니다. 또 명백한 숫자까지 무시하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줍니다.
요즘 숫자를 보면 불안합니다. 비상벨을 울리는 듯합니다. 무역 적자는 올해만 4월 10일까지 258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사상 최대였던 작년을 넘어설 게 확실해 보입니다. 작년 말 기준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4500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주요 금융권 가계 부채 연체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3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450건으로 전월(1652건) 대비 48.3% 늘었습니다. 집값 하락과 이자 부담 급증의 영향입니다.
미국이 한 번 더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게 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는 사상 처음 1.75%포인트로 벌어지게 됩니다. 미국으로 돈이 빠져나가면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은 외환 보유액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겠지요. 경상수지 적자로 들어올 달러는 없는데 환율 방어에 써야 할 달러는 늘어나게 됩니다. 이는 수입 물가를 자극,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버블이 팽창한 시기 젊은이들이 명품을 사고 골프장 사진을 올리고 수입차를 자랑하던 ‘허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나빠진 숫자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신 비행기표를 사는 영향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숫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때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만지는 인간이 거짓말을 할 뿐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많이 보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면서 시작하겠습니다. 탁구 라켓과 탁구공의 가격을 합치면 1만1000원이고 라켓이 공보다 1만원 비싸다면 탁구공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궁금하면 500원’입니다.
오래전 처음 이 문제를 보고 대번에 “1000원이네” 했습니다. 휴리스틱, 어림짐작의 오류 때문이지요. 뇌가 게을러 생기는 현상이라고도 하고 인지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위한 뇌의 구두쇠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도 합니다.
휴리스틱과 함께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오류의 대표적 사례는 확증 편향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지요. 한 실험에서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선거 때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뇌의 다양한 부분 가운데 정보를 감성적으로 처리하는 영역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의역하면 지지 후보 연설 때는 가슴 뜨겁게 심장으로 듣고 반대하는 후보의 말은 의심하며 하나하나 따져보는 차가운 뇌로 듣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짜 뉴스에 속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면 “팩트 날조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이 확증 편향은 필터 버블과 에코챔버 효과에 의해 강화됩니다. ‘생각 조종자들’이란 책에 등장한 용어를 10여 년후 다시 불러왔습니다. 필터 버블은 알고리즘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필터링된 정보만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스스로 필터 버블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페친’을 끊어버리고 비슷한 성향의 동영상만 줄곧 시청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정보를 회피합니다. 한쪽에서는 대장동, 방탄 국회 얘기만 나오면 못 들은 척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청, 독도 얘기에는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도청 하니 생각나는 게 중국입니다. 2000년대 초 장쩌민 국가주석의 전용기에서 도청 장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국이 제조한 비행기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과 맞짱 뜰 힘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는 말입니다. 물론 시진핑은 못 참고 야욕을 드러내 세상을 혼돈으로 몰고 갔지요. 최근 한국에서도 도청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광양회 같은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게 뭔지 알고 싶긴 합니다.
다시 인지 편향 얘기입니다. 필터 버블과 연결된 에코챔버 효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울리는 방에서 소리를 내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효과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만 소통하게 되고 편향은 더욱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런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건전한 토론을 방해하고 합의를 가로막습니다. 또 명백한 숫자까지 무시하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줍니다.
요즘 숫자를 보면 불안합니다. 비상벨을 울리는 듯합니다. 무역 적자는 올해만 4월 10일까지 258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사상 최대였던 작년을 넘어설 게 확실해 보입니다. 작년 말 기준 가계와 기업의 부채는 4500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주요 금융권 가계 부채 연체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3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2450건으로 전월(1652건) 대비 48.3% 늘었습니다. 집값 하락과 이자 부담 급증의 영향입니다.
미국이 한 번 더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게 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는 사상 처음 1.75%포인트로 벌어지게 됩니다. 미국으로 돈이 빠져나가면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은 외환 보유액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겠지요. 경상수지 적자로 들어올 달러는 없는데 환율 방어에 써야 할 달러는 늘어나게 됩니다. 이는 수입 물가를 자극,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버블이 팽창한 시기 젊은이들이 명품을 사고 골프장 사진을 올리고 수입차를 자랑하던 ‘허세플레이션’이 꺾였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나빠진 숫자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대신 비행기표를 사는 영향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숫자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때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만지는 인간이 거짓말을 할 뿐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