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이 ‘찜’한 일본의 종합상사…“한국과 일본의 종합상사는 무엇이 다를까”[이정흔의 쉬운 경제]

[이정흔의 쉬운 경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일본 종합상사에 추가 투자 의향을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으로 100년 동안, 아니 영원히 살아남을 기업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일본 5대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가 화제입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버핏 회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종합상사에 투자한 배경을 설명하며 ‘영원히 살아남을 기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실 버핏 회장이 일본에 관심을 보인 것은 꽤 오래된 일입니다. 20여년 전 인터뷰에서도 일본 증시와 기업들에 대해 언급한 경우들이 많았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그는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들에 관심은 있지만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오랫동안 일본을 지켜보면서도 직접 투자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 일본 기업에 투자한 것은 2020년 8월입니다. 일본 5대 종합상사(마루베니·미쓰비시·미쓰이·이토추·스미모토)의 지분을 각각 5% 매입했습니다. 투자 금액은 60억 달러(약 7조원)가 넘었습니다. 이후에도 지분을 늘렸습니다. 지금은 이들 기업의 지분을 각각 7.4% 보유하고 있습니다. 버핏 회장은 앞으로도 이들 기업을 포함해 일본 주식에 대한 추가 투자 의향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습니다.

3년 전 버핏 회장이 처음 일본에 투자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그의 결정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2020년 무렵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가 대세로 자리 잡는 중이었고 종합상사와 같은 자원주들은 외면 받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에너지·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원자재를 개발·수출하는 일본의 5대 종합상사들은 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 가고 있죠. 그가 투자를 시작한 무렵인 2020년 7월 저점부터 최근까지 미쓰비시상사는 128% 급등했고 이토추 상사 또한 77% 뛰었습니다.

트레이딩(중개 무역)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갖고 있는 일본의 ‘종합상사’는 일본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그렇다면 버핏 회장은 일본의 종합상사들에서 어떤 매력을 봤기에 투자에 나선 것일까요. 한국의 종합상사들과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뭐든지 다 파는’ 소고쇼샤(總合商社),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일본의 종합상사는 ‘소고소샤’라고 불립니다. ‘소고’는 일반적인(general)이라는 뜻을 ‘소샤’는 무역회사(trading company)를 뜻합니다. 국제 거래를 하는 도매상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일반적인 무역 회사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무역 회사는 일반적으로 특정 산업이나 부문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돈이 되는 무엇이든’ 사고팝니다. 규모와 기능 면에서 일본처럼 포괄적이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무역 회사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영어 사전에도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소고소샤(sogo shosha)’라는 표현 그대로 등재돼 있을 정도니까요.

일본의 종합상사는 1800년대 일본 개항 시기로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구의 상인들이 초기 무역을 독차지하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 등입니다. 이들은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크게 성장했습니다. 패전 이후 잿더미 가 된 절박함이 ‘돈이 되는 무엇이든 사고파는’ 종합상사들의 성장 동력이 됐죠.

이와 같은 영향으로 일본의 ‘소고소샤’들은 일본 경제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종합상사들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일본 기업과 해외 기업들 간의 무역을 촉진하고 중개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들에는 종합상사가 해외 시장과의 연결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물류는 물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도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상사맨들은 온갖 정보로 무장하고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이끈 엘리트 집단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지금도 이토추상사를 비롯한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어하는 직장의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죠. 그만큼 자부심이 강하고 경쟁의식 또한 치열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이 일본의 종합상사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것은 1970년대 초반입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한국은 세계 시장의 보호주의 장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의 종합상사 모델을 들여와 ‘한국형 종합무역상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원자재·시설재에 대한 세제 감면, 외자 도입 허용, 수출 금융 등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부으며 적극적으로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가파른 경제 성장 속에 수출이 늘어가는 대기업들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졌습니다. 1975년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쌍용산업·대우실업 등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죠. 효성물산· 반도상사(현 LG상사)·선경(현 SK네트웍스)·현대종합상사 등도 가세했죠. 바로 그해(1975년) 한국이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1990년대 ‘화려한 변신’ 성공한 일본, 한국도 따라갈까
‘일본 종합상사의 3대 변신 전략.’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내놓은 보고서의 제목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일본 종합상사를 ‘변신의 바로미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경제 상황에 따라 발빠르게 적응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남았습니다.

일본 종합상사들의 ‘화려한 변신’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입니다. 무역 중개를 중심으로 하던 사업 모델의 한계를 체감한 일본 종합상사들은 ‘자원 개발’ 회사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 거래하는 주요 품목의 범위를 에너지·금속·식품·직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넓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 재개발, 사회 인프라 개발 등 디벨로퍼 사업과 정보기술(IT) 솔루션 구축 서비스, 패션 브랜드 라이선싱, 첨단 기술 특허의 사업화 등 매칭 사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용 관리 기능과 금융 기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 기업에 투자하거나 경영에 참여하기도 하죠. 말 그대로 ‘돈이 되는 모든 사업’을 다 하는 만물상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전 세계에 흐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 극단적으로 다각화된 사업 모델…. 버핏 회장이 일본 종합상사의 투자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유입니다. 그는 일본 종합상사에 대해 “벅셔해서웨이와 유사한 점이 정말 많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5대 종합상사들은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특정 가문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 일종의 재벌 체제입니다.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소수 지분 투자부터 지배 지분까지 다양한 사업체들의 지분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투자회사인 벅셔해서웨이와 유사점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미쓰이는 아시아 최대 병원 그룹인 IHH 헬스케어의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고 이토추는 중국 중신그룹(CITIC Limited)의 지분 10%와 함께 일본에서 둘째로 큰 편의점 체인인 패밀리마트를 소유하고 있죠. 일본에서 셋번째로 큰 편의점 체인인 로손 또한 미쓰비시가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생존을 위해 도전적인 변화에 나선 1990년대 무렵, 한국의 종합상사들은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75년 종합상사 지정 조건을 내건 지 3년 만인 1978년 종합상사 지정 조건 중 연간 수출액 부분을 ‘국내 수출의 2% 이상’으로 변경했습니다. 이 조건에 맞추기 위해 종합상사들은 무리한 수출 밀어내기를 동원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입니다. 과도한 실적 요구가 누적되면서 한국의 종합상사들은 내부적으로 서서히 곪아 갔습니다.

종합상사의 핵심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상사맨’들 또한 일상적인 야근과 주말 출근, 바이어들과의 잦은 술자리로 지쳐 갔습니다. 인력 이탈이 가속화됐고 종합상사는 ‘직장인의 애환’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여겨지게 됐죠. 1997년 외환 위기는 이들에게 치명타가 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 계열사가 해외 영업망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계열사 수출 창구’ 역할을 하던 종합상사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주춤했던 한국의 종합상사들 또한 최근 들어 사명을 변경하고 공격적으로 신사업에 나서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종합상사로 손꼽혔던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된 뒤 2019년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현대종합상사는 2009년 현대중공업에 인수돼 2021년부터 ‘현대코퍼레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같은 해인 2009년 GS그룹은 쌍용을 인수한 뒤 GS글로벌로 사명을 바꿨죠. 1953년 선경직물이라는 사명으로 설립된 후 1990년대 종합무역상사로 성장한 SK상사는 SK글로벌을 거쳐 2003년부터 SK네트웍스로 바꿨죠, LG상사는 2021년 5월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LX그룹에 편입된 뒤 현재 ‘LX인터내셔널’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름만 바꾼 게 아닙니다. 일본의 종합상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종합상사들 역시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투자 사업을 늘려 왔습니다. 이미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 등은 비(非)트레이딩 사업 부문 영업이익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최근에는 일반적인 종합상사의 범위를 넘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죠.

포스코인터내셔널은 4월13일 인천에서 비전 선포식을 열고 ‘친환경 종합회사’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에너지·철강·식량이라는 세 가지 사업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입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특히 전기차를 넘어 미래 운송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하이퍼루프에 사업에 적극적입니다. 하이퍼루프는 공기 저항이 거의 없는 진공 상태의 튜브 내부를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운송 수단입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를 위해 지난해 네덜란드의 하이퍼루프 기업인 하트(HARDT)와 손잡기도 했죠.

LX인터내셔널도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인 바이오매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고 지난해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포승그린파워를 인수했죠. 한국의 유리 제조 업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유리공업을 지난해 인수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로봇을 신사업으로 점찍었습니다. 지난 3월 주주 총회에서는 정관 사업 목적에 ‘산업·물류용 등 로보틱스 제조·판매 및 관련 부품사업’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일본 자동차 내장 제품 기업과 50 대 50 합작법인을 세우고 현재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는 등 자동차 부품업에도 진출했습니다.

과거 한국의 상사맨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수출 한국’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들의 정보력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강력한 무기였죠. ‘상사맨의 가방에는 국가 기밀이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다시 한 번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는 한국 종합상사들의 재도약을 응원합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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