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있는 주택 전세 제도, 과감히 폐기해야 하는 이유[최광석의 법으로 읽는 부동산]

세입자 보호에 근본적 한계 노출
주택 갭투기의 주요 수단으로도 활용

[법으로 읽는 부동산]

사진=연합뉴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 제도는 유일하다는 자체부터가 이상한데 집없는 서민이 다른 사람 집을 빌리면서 집값에 육박하는 거액을 집주인에게 맡긴다는 자체가 너무 위험하고 기괴하지 않을 수 없다.

집값의 등락, 집주인의 경제 사정 등 위험이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보증금 반환 지연으로 인한 연쇄적 불편도 비일비재하는 등 주택 임대차 제도로서의 전세 제도는 매우 후진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전세 제도는 심각한 구조적 결함, 즉 안전한 보증금 반환을 보장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보증금 반환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대항력, 우선 변제권을 위해서는 ‘전입 신고’가 필요한데 그 효력 발생 시점이 전입 신고 ‘다음 날 0시’라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잔금을 지급하고 이사 가는 당일 아무리 빨리 전입 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당일 설정된 저당권보다 후순위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원래 주민등록(전입 신고)은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 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항상 명확하게 파악해 주민 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 사무를 적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민등록법 제1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구 동태를 파악한다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세입자 보증금 보호를 편리하고 저렴하게 하는 수단으로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 당시 주민등록이라는 요건을 도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보증금 확보 기능으로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전에는 보증금 확보 수단으로 전세권이나 저당권 같은 물권이 이용됐는데 임대차 목적물인 부동산등기부에 ‘접수 번호’로 표시돼 등기부상 권리 간의 순위를 명백히 할 수 있어 적어도 안전이라는 면에서는 제도적 문제가 없었다.

반면 주민등록은 등기부에 표시되는 권리가 아니다 보니 등기부에 기재되는 다른 권리와의 혼동을 방지하고 거래 질서 안정을 위해 주민등록한 다음 날 0시를 임대차 대항력(우선 변제권) 발생 시점으로 정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 보호에 근본적 한계가 노출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왔지만 같은 날 이뤄진 저당권과 전입 신고 시점의 선후를 따져 권리 순위를 정하는 것이 현행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이런 구멍난 기본 구조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도 자체에 이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임대인 선의에만 의존한 채 전 재산이 될 수 있는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는 무모한 거래를 해 왔던 셈이다.

궁여지책으로 최근에는 국토교통부와 5대 은행의 협약을 통해 이들 은행이 주택 담 보대출 심사 과정에서 담보 대상 주택에 부여된 확정 일자가 있는지와 보증금 규모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실행하게 해 집주인이 세입자 몰래 대출받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보완 조치를 시도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개선책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확인 시스템을 모든 금융회사나 대부 업체 등으로 전면 개방하기가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 작정하고 저지르는 임대인 부당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현행법에서는 전입 신고, 확정 일자에 의존하지 않고 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전으로 돌아가 저당권이나 전세권을 설정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는데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임대인의 부당 행위를 염려해 적지 않은 설정 비용을 들이는 것이라 적극 권유하기가 쉽지 않다.

거액의 보증금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법률 검토 비용, 보증금 반환 보증 보험료 등까지 감안하면 현행 전세 제도는 결코 저렴하다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제도 자체의 위험과 비용을 감안하면 비록 계산상으로는 조금 더 부담이 될 수 있는 반전세 내지 월세 계약이 훨씬 정상적이고 안전할 수 있다.

전세 제도는 하루빨리 대폭 축소하거나 폐기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증금 사고를 개인적 불운으로 치부하고 서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이유로 전세금 대출까지 쉽게 해 주면서 축소돼야 할 전세가 임대차 시장에서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세 제도가 주택 갭투기의 주요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전세 보증금 대출 제도는 대폭 축소하고 서민 주거 안정은 저렴한 월세 임대주택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최광석 로티스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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