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CJ푸드빌과 올리브영에서 두각을 보였던 ‘구창근 매직’ 효력이 CJ ENM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사람을 자르고 일시적으로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본 방식이 처음 내놓은 성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회사에 따르면 1분기 매출액은 949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35.2% 감소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로는 0.9% 감소해 매출액 부문에서는 선방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503억 여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순익 역시 약 889억 원 적자로 지난해에 이어 적자세를 이어갔다.
회사가 영업적자를 낸 것은 전임 강호성 대표 시절에 없었던 일이다. CJ에서 재무구조 개선 전문가로 활약하던 ‘구창근 매직’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윤상현 대표가 이끄는 커머스 부문은 175억 원의 영업흑자를 낸 반면 구 대표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만 678억 원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지난해 10월 CJ 그룹 임원인사를 통해 올리브영 대표이사에서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고강도 조직개편 및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불거진 올해 초 당시 회사 측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인력 효율화라고 설명했지만 지난 4일 열린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회사 관계자가 구조조정을 공식화 하면서 말을 바꿨다.
사실상 적자의 이유를 직원들에게 돌린 것. 하지만 CJ ENM이 어려워진 것은 미국 제작사 피프스시즌을 1조 원에 육박하는 금액에 사들이고 넷플릭스와 경쟁 자체가 안 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티빙에 무리한 투자를 한 것 때문이라는 분석이 증권가 및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규모 M&A나 투자는 경영진의 판단에 기인한다.
전문경영인 양지을 대표가 이끄는 티빙의 실적이 영업적자의 주요 요인이라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양 대표는 지난 2021년부터 티빙을 이끌면서 매년 1000억 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며, 모회사 실적에 큰 부담을 준 바 있다. 티빙은 올해 1분기 역시 400억 원 대의 적자를 냈다.
모회사뿐만 아니라 티빙 주요주주로 참여한 JTBC와 네이버도 지분가치 하락을 면치 못하게 됐다. '술꾼도시여자들', '환승연애'를 비롯한 히트작도 제법 있었지만 넷플릭스를 따라잡기는 턱도 없고, 사실 티빙이 국내 OTT 1위를 차지한 것 마저도 KT 시즌과의 합병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합병 이전에는 웨이브가 지켰던 1위 자리를 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즌과의 합병이 없었더라면 커머스 멤버십을 바탕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쿠팡플레이에 밀렸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이에 효율 경영을 중시하는 구창근 대표와 적자를 지속하는 양지을 대표가 경영 궁합이 맞냐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OTT 사업을 당장 그만두기도 어렵다. TV 시청층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CJ ENM의 계륵과 같은 티빙에 대해 회사 측 관계자는 “티빙은 성장하는 사업이라 당분간은 투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티빙과 피프스시즌보다 더 큰 우려는 회사 출범이래 캐시카우였던 TV광고 시장 위축과 콘텐츠 판매 부진에서 나온다. 1분기 광고와 콘텐츠 판매가 주축을 이루는 미디어 플랫폼 사업 쪽에서만 343억 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 과거, 현재, 미래까지 암울한 전망 일색이다. 3조 원까지 내다봤던 시가총액은 1조 원 대로 감소했고 주가는 7만 원대로 바닥을 치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라이브시티 사업도 공사중단에 빚 투성이다.
실적뿐만 아니라 기업 이미지도 추락하고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으로 실형을 살았던 PD들의 복귀 때문이다. 회사는 최근 안준영 PD를 복직 시켰다. 여론이 악화하자 알맹이 없는 사과문으로 무마하려 했으나 더 큰 지탄을 받았다.
사과문에 김용범, 안준영에 대한 구체적인 향후 조치가 없기 때문. 조작 논란 당시 CJ ENM 대표였던 허민회 현 CJ CGV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전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 모두 거짓말이 됐다. 이에 대해 여론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비판도 거세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안준영 PD 복귀에 대해 “꼬리자르기, 꼼수 사과로 넘어가려 한다면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구대표는 유력 정치인의 일갈에도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구 대표가 올해 내내 이어진 CJ ENM 센터 고층부 공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묵인하는 모습을 보여 경영효율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공사는 100억 원이 넘게 소요된다고 알려져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신입사원 교육과 비즈니스 등을 하는 다목적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