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반도체 업계를 움직이는 세 가지 변수

TSMC, 대만 이외 지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가격 인상 나서
마이크론, 메모리 가격 하락 중단…반등 기대감 커져
미국, 중국산 반도체 줄이자 대만 반사 이익 얻어

TSMC가 일부 라인에 한해 가격 인상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TSMC)


지난해 공급 과잉으로 혹한기를 보낸 반도체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를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이 과거와 다르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최대 기업인 TSMC는 가격 인상을 시도하고 있고 메모리 3위 기업인 마이크론은 가격 인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업의 행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미·중 무역 갈등으로 대만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점은 한국 기업에 부정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놓고 상대 국가 기업에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중간에서 대만이 반사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TSMC 가격 인상 시도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58.5%(지난해 4분기 기준)에 달하는 TSMC는 최근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가 특정 생산 라인에 한해 가격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사업 안정성과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대만 밖에서 만들어지는 반도체 가격을 기존 대비 최소 10%에서 최대 30%까지 올리는 것이 골자로, 미국과 일본에서 제조하게 되는 신규 생산 라인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일본산 칩은 10%, 미국산 칩은 30% 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주에 400억 달러(약 53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해 12월 TSMC는 “우리의 결정은 애리조나 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외국인 직접 투자”라고 밝혔다.

TSMC는 2024년부터 애리조나 공장에서 4나노 반도체 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2026년부터 3나노 칩 생산도 시작한다. 완공되는 2개 팹은 연간 60만 장 이상의 웨이퍼를 생산하게 된다.

TSMC는 또 일본 구마모토현에서는 소니·덴소와 합작해 구형 반도체 칩을 만드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4년 생산 예정이고 12·16·22·28나노 등을 이곳에서 생산하게 된다. 월 생산 능력은 4만5000개 수준이다.

가격을 올리는 것은 영업이익률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올해 1분기 TSMC의 매출은 5086억3300만 대만 달러, 순이익은 2069억8700만 대만 달러다. 영업이익률은 45.5%다. TSMC는 2분기 영업이익률은 39.5~41.5%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률 52%를 기록한 이후 지속 하락하는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 생산 라인에서 가격을 조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신규 고객을 확보할 타이밍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TSMC의 고객사가 가격 인상 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삼성전자가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수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4나노 공정 수율은 70% 이상으로 올라왔지만 3나노 공정은 이보다 낮은 60% 수준이다. TSMC의 수율은 이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이 가격 인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사진=마이크론)
마이크론 가격 인하 중단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3위 기업이자 미국 최대 메모리 회사인 마이크론은 가격 인하를 중단했다. 최근 디지타임스는 “마이크론이 유통사에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최근까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전년 대비 낮은 가격에 반도체 칩을 판매해 왔다. 반도체 시장의 과잉 공급으로 고객사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공급사에 불리해진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8기가비트(Gb)의 4월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19.89% 하락한 1.45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기준 3.41달러에서 크게 떨어졌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생산 비용이 더 들어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라는 말까지 나왔다. 8월 결산 법인인 마이크론은 지난 2분기(2022년 12월~2023년 2월)에 매출 36억9000만 달러, 당기 순손실은 23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 줄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됐다. 앞서 1분기(2022년 9~11월)에도 매출 40억9000만 달러, 당기 순손실 1억9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의 감산 결정 이후 현물 가격 하락 속도가 완화되고 업황 개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가격 인하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5월 9일 기준 DDR4 16Gb 2666 D램의 평균 현물 가격은 3.1달러로, 지난 4월 대비 약 4.2% 하락했다. 전월 대비 8~10% 이상의 하락세를 보인 올해 초보다 하락 폭이 줄었다.

마이크론의 이번 결정은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앞서 SK하이닉스는 4월 26일 진행한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수요 상황을 고려할 때 2분기에도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고객단에서 몇 가지 변화가 있다. 현물가가 이제 바닥이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계약 가격까지 안정화 기조로 갈 것인지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2분기를 정점으로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감소하면 가격 하락 폭도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론이 가격을 더 이상 내리지 않으면 메모리 가격은 예상보다 빨리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의 반도체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입지 넓히는 대만 반도체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의 영향력이 커지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 대만이 차지한 점유율은 19.2%다. 2018년(9.5%) 대비 점유율이 9.7% 높아지며 1위 국가가 됐다.

2018년 30.2%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기존 1위였던 중국은 미·중 무역 분쟁 이후 11.7%로 줄었다. 대만 기업들이 중국 자리를 대체하며 반사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 점유율은 큰 차이가 없다. 2018년 10.8%에서 지난해 12.6%로 소폭 증가했지만 순위는 여전히 3위에 그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출품이 달라 우리는 수혜를 볼 수 없다”며 “한국 기업들의 주력 수출품은 메모리 반도체지만 이번에 미국 시장에서 변화가 생긴 부분은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쪽”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과 한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점유율 변화는 미미하다는 설명이다.

향후 미국이 대만 반도체에 대한 수입량을 계속 늘리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대만 시장 조사 업체 디지타임즈리서치가 발표한 ‘2022년 반도체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국가는 미국(49.3%)이다. 뒤를 이어 한국이 19.3%의 점유율로 2위를 기록했다. 3위는 9.7%의 대만으로, 한국과의 점유율 격차는 9.6% 수준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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