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그리고 T25, 한국은 어디로? [세계는 핵분열 중]

[스페셜리포트] G2 그리고 T25


“사우디아라비아는 누구의 편인가. 브라질은 또 누구의 편인가.”

세계가 분열 중이다. ‘미국의 푸들’을 자처했던 이들이 중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작은 중국’을 대표했던 국가들이 미국에 양다리를 걸친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립을 표방하거나 적과의 동맹을 시도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던 국제 정치의 이론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G2가 무역 전쟁을 치르는 사이 세계는 변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G2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양쪽과 거래하듯 실용적으로 중립을 지킨다. G2는 세력을 늘리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2세기에 걸쳐 세계를 제패했던 세계화가 물러나면서 국가별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한 지역의 위기는 처음에는 지역에만 그치지만 곧 전국으로 퍼지고 그다음에는 이웃 나라로 흘러가 결국 전 세계로 확산된다.” 이스라엘 기자 나다브 이얄은 세계화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추적한 ‘리볼트-세계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이란 책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운동 기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말에 주목했다. “베이징과 전 세계 도시들에는 마천루가 올라갔는데 디트로이트의 공장과 마을은 허물어졌습니다.”

미국인들은 세계화라는 흐름을 멈추겠다고 약속한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가 세계를 덮쳤다. 미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맹공을 퍼부었다. 미·중 무역 갈등의 시작이다. 그후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슬로벌라이제이션(느리다+세계화의 합성어)’에 휩싸였다. 굳건했던 국가 동맹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70년 동맹 재검토“‘우리 편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계속 듣는데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국민 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은 2022년 10월 25일 미국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되물었다. 대표적 친미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열음이 시작된 것은 2022년 10월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회의부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가 한자리에 모인 날, 이들은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원유 감산을 주장한 것은 OPEC+의 두 주축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감산 결정에 뒤통수를 맞은 것은 미국이었다.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에 찾아가 ‘생산량을 늘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헛수고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비판했다. 미국 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동맹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1974년 ‘페트로 달러 협정’으로 체결한 양국의 ‘48년 혈맹’이 송두리째 흔들린 사건이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동맹 중 동맹이었다.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로만 한다’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하에 양국은 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안보를 보장 받았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달러 지위를 높이며 기축 통화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의 배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22년 12월 7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유를 위안화로 구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뿐만 아니라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에도 원유의 위안화 결제 허용을 요구했다. 48년 페트로 달러 체제를 깨고 위안화로 석유 결제를 가능하게 하려는 야심이자 기축통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안보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 대화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갖게 됐다. 로이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의 관계가 날로 긴밀해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오랜 동맹국인 미국의 안보 우려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도 중동 정책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미 정책은 변화하고 있다. 배경을 좇다 보면 결국 실리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최대 원유 수입국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중국의 중동 지역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세계 최대 석유 공급국이기 때문이다.

G2를 사이에 둔 위태로운 줄타기는 남미에서도 진행 중이다. 남미 대국 브라질을 이끄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4월 13일 중국 국빈 방문에서 깜짝 발언을 했다. “왜 달러가 세계를 지배하나. 매일 밤 나는 왜 모든 국가들이 무역을 달러에 기반해야 하는지 자문했다.”

룰라 대통령의 발언은 1년 전 브라질 행보와 정반대다. 전임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철저한 친미 정책을 펼쳤다. “중국이 브라질을 사들이고 있다”며 강한 반감을 보일 정도였다. 룰라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지난 4월 중국과의 정상 회담에서 양국 통화인 위안과 헤알을 활용한 무역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달러 패권’에 대한 사실상의 도전이다. 공식 일정 첫날에는 중국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방문했다. 미국의 제재 대상 대표 격인 화웨이를 방문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룰라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친중파’에 가깝다. 하지만 두 달 전에는 미국과 만나 양국 협력을 다짐했다. 룰라 대통령은 2월 10일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열고 환경 부문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보우소나루 전 정부가 반환경 정책을 시행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다면 룰라 대통령은 기후 변화 대응과 아마존 보호로 환경 정책을 회귀해 미국과 국제 사회의 지지를 회복한 것이다. 양국은 2019년 맺은 ‘비 NATO : 북대서양조약기구) 주요 동맹’도 유지하고 있다. 비 NATO 주요 동맹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안보 협력체인 NATO 동맹국이 아니면서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는 나라에 부여하는 지위다. 군사 장비 구매 등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현재 브라질 외에 아시아의 한국·호주, 중동의 쿠웨이트,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 16개 나라가 이 지위를 갖고 있다.

브라질은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아프리카 방문을 계획 중이다. 미래 자원과 시장 확보가 목적이다. 브라질에 정통한 외교 관계자는 “(브라질이) 실리 외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며 “국제 무대에서 브라질의 비중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이며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세계 양극화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을 우선적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T25의 등장초강대국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양쪽과 거래하듯(Transactional) 실용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들의 앞자리에 ‘T’를 붙였다. 미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양국 집단(G2)도, 세계 주요 20개국을 모은 G20도 아니다. 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방관하거나 미·중 대결에 비동맹을 유지한다. 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대결 모두에 비동맹을 유지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국가들 중 주요 국가를 모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브라질을 비롯해 멕시코·모로코·알제리·이스라엘·튀르키예·베트남·카타르·방글라데시·콜롬비아·페루·이집트·태국·남아프리카공화국·필리핀·칠레·나이지리아·싱가포르·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아르헨티나·아랍에미리트(UAE) 등 총 25개국으로, ‘T25’다.

T25는 14억 명이 사는 인도와 271만 명이 거주하는 카타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7000달러 이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1600달러에 불과한 파키스탄을 포함할 정도로 국부와 정치 체제 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T25는 전 세계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2년 11%에서 2023년 18%로 증가했다. 유럽연합(EU)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이들 국가의 접점은 ‘실용주의’다. 탈냉전 후 20년 동안 많은 국가들은 서구권과 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관계를 구축하는 게 가능했다. 더 이상은 아니다. 미국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고 중국의 기술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제삼국에는 어느 편인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T25는 실용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이들은 강대국 중 한쪽을 선택하는 대신 유동적인 환경에서 신속한 협상을 진행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T25 중립 전략에는 큰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 이코노미스트는 “T25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T25 중 하나인 인도는 인도는 남아시아의 맹주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과의 무역량이 중국보다 많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인도를 공급망 중심에 편입시키기 위해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하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서유럽 국가를 원조했고 냉전 시대에는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로 소련을 견제했다”며 “지금은 패권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인도에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여전히 러시아에서 무기와 값싼 석유를 구매하고 있다. 푸틴 정권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오랜 관계를 끊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NATO 회원국 튀르키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줄타기 행보를 이어 가며 국제 외교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NATO 동맹국이면서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전쟁 초에는 우크라이나에 드론을 판매하며 대규모 이익을 챙겼고 러시아와는 곡물 수출입을 성사시켜 러시아의 고립을 완화했다. 동서 문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튀르키예는 러시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지역의 원유와 가스를 러시아 경유 없이 서방으로 직접 연결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을 통제하는 에너지 허브 국가인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농산물을 공급하는 국가다. 자국의 실리에 따라 중립을 선택한 셈이다.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이스라엘에서도 최근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사법 정비(대법원 권한 축소) 입법에 우려를 나타내자 고위급 인사들이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가장 친한 친구들을 비롯한 해외의 압박이 아닌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주권 국가”, “이스라엘은 성조기에 그려진 별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며 불만을 보인 것. 반면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이스라엘의 최대 무역 대상국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투자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대체 국가로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1992년 이스라엘-중국 간 국교 수립 이후 양국 간 경제 무역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무역액의 증가를 넘어 최근에는 연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전망된다. 성사된다면 중동 최초다. 중국의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전략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T25+‘α’, 세계 재편T25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사실상 ‘중립’에 들어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3일간의 중국 방문 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유럽 국가들이 대만에 대한 미국 정책의 ‘추종자’가 돼선 안 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우리와 무관한 위기에 휘말려 들어갈 위험에 처했다. 유럽이 답해야 할 질문은 ‘대만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냐’이고 그에 대한 답은 ‘아니오’”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교부 장관 또한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면 국익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은 크고 영향력이 있고 중요하다. 기술력도 가졌다. 환경·경제 분야에서 믿을 수 없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며 “따라서 중국과 밀접하게 규칙적으로 관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주도하던 단극 체제는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 1위가 돼 또 다른 단극 체제가 시작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지만, 혹자는 현재 세계는 대륙마다 패권을 차지하려는 군웅할거 조짐마저 보인다고 주장한다. 윤석천 경제평론가는 나라경제에 쓴 기고에서 “중동 패권을 둘러싼 이스라엘·이란·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 간 경쟁이 좋은 예”라며 “세계는 이미 다극 체제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극 체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시금 자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20세기의 석유 자원 민족주의에 이어 21세기는 ‘광물’자원 민족주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전기차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치들이 통과됨에 따라 전기차 핵심 광물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온쇼어링(해외 기업의 자국 유치), 니어쇼어링(지리적 인접한 국가에 유치)이 기업들의 화두가 된 지금 국가 역시 광물 자원의 희소성을 유지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자원의 국유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OPEC와 같은 협의 기구를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니켈 생산 1위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현재 니켈을 원광 형태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2022년 11월 OPEC와 같은 니켈 생산국들을 위한 기구를 설립하는 준비에 착수했다. 인도네시아는 호주와 캐나다 정부에 함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니켈 생산 2위 국가인 필리핀 역시 니켈 광석 수출에 대해 최대 1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리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2022년 7월 중남미·카리브해 국가 공동체 정상 회의에서는 리튬 협의 기구 결성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아르헨티나·칠레·볼리비아가 주도적으로 리튬 협의 기구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1970년대의 중동 전쟁과 같은 공급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2의 페트로 달러 협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세계 제1의 위치를 공고히 했듯이 또 다른 ‘G1’의 탄생이 광물 자원 민족주의에서 나올 수도 있다.

G2 그리고 한국국제 정세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비동맹 국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은 최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식 협상 개최지로 호주와 인도네시아를 선정했는데 그 내막에는 자원이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인환 애널리스트는 “호주는 리튬·니켈·망간 등 대부분의 핵심 광물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고 인도네시아는 니켈 생산 및 매장량 1위의 자원 부국”이라며 “미국이 재편하려는 공급망에서 이들 국가가 갖게 될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2013년부터 대외 팽창 정책인 ‘일대일로’를 통해 아시아·중동·아프리카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공개된 ‘2022년 아프리카 청년 세대 조사(아프리카 15개국 18~24세 청년 4507명 대상)’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영향력 부문에서 77%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가로 조사됐다. 미국은 67%로 중국에 이은 2위다. 두 국가의 영향력 차이는 10%포인트로 이전 조사(5%포인트) 때보다 더 벌어졌다. 조사를 진행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츠코위츠재단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국가들이 아프리카 개발에 거의 참여하지 않을 때 중국은 꾸준히 했다”며 “특히 투자·무역·인프라 구축 등에서 미국의 역할은 매우 미미했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국은 20년 만에 최대 수출국이 변화할 가능성에 놓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주력 수출 시장이었던 대중 수출액은 95억2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5% 감소했다. 대중 수출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6월(-0.8%) 이후 11개월째다. 반면 지난 4월 대미 수출액은 91억8000만 달러로 4.4% 감소했다. 대미 수출이 소폭 줄면서 양국 간 월별 수출액 격차는 3억4000만 달러로 좁혀졌다. 2004년 6월 이후 가장 좁은 차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최대 수출국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의 협력은 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4월 26일 미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첨단 산업 포럼 축사에서 “양국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돼 ‘프렌드 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다극화 시대 미국과의 단극 외교에 경종을 울린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에 대한 수출 금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중국발 수출액의 감소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중국발 수출의 33.4%가 ‘반도체’이니 3분의 1 이상은 반도체 업황 악화의 영향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주 중앙대 교수는 동아시아연구원에 쓴 기고에서 “공급망의 재편과 미중 전략 경쟁의 현실을 반영한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특정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협력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공급망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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