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요 앞에 파리 좀 다녀올 게요, 한남동 아스티에 드 빌라트 [MZ공간 트렌드]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보면 괜히 한 번 밟아 보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심보 때문일까. 현생을 충실히 사는 것이 바빠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때면 해외에 대한 로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들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파리 매장을 고스란히 서울로 옮겨 놓았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만큼 브랜드의 신념도, 매장의 분위기도 모두 ‘고유’할 따름이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전경(아스티에 드 빌라트 제공) 프랑스 파리가 통째로
1996년 파리에서 시작된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과거에서 얻은 예술적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다. 디자이너인 이반 페리콜리와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창립했고 식기류·향수·조명·가구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인테리어 소품에 대해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프랑스 여행 갈 때 꼭 들르는 매장 중 하나다. 그래서 그럴까. 한남동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기자마자 줄을 서 들어가야 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브랜드의 가장 특별한 점은 상품을 전통적인 방식에 착안해 만든다는 점이다. 제품들의 정체성 역시 18~19세기 프랑스 문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현지에서는 파리지앵의 전통을 이어 받는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하니 브랜드 자체가 이미 프랑스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2층에는 세라믹 제품을 만날 수 있다.(아스티에 드 빌라트 제공) 파리 매장을 그대로 재현하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라는 브랜드를 잘 몰라도 매장을 스윽 한 번 둘러보면 그리 낯설지 않은 식기류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스누피 형상이 재현된 컵과 양배추 잎을 생각나게 하는 접시, 빈티지한 색감이 돋보이는 알파벳 접시까지 익숙함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파리에 온 것 같다’는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파리 스토어의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번의 붓질로 만든 페인트의 질감과 나무의 결이 살짝 벗겨진 듯한 계단 손잡이 그리고 코너마다 진열돼 있는 조각 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한 번도 파리에 가본 적이 없어도 마치 파리에 다녀온 적이 있고 또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건물은 총 5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는 식기류를 비롯해 문진·노트·엽서 등 잡화와 함께 인센스 스틱과 캔들 등 향기 나는 제품을 판매한다. 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풍기는 인센스 향은 이곳의 제품과 공간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품고 있다. 또한, 유리창 너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은 비치된 거대한 장미와 만나 빈티지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선사한다. 2층에서는 1층에서 미처 다 보지 못한 식기류들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다. 가볍고 우아한 흰 빛깔의 세라믹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대표 제품이다. 3~4층에서는 조명·가구·패브릭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5층에는 작은 카페가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루프톱에 앉아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긴 커피를 마시다 보면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만끽하게 해 준다.

4층에서는 가구류가 전시되어 있다.(이민희 기자) 역사를 향기에 담아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향수 아닐까. 1층 매장에서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향수 3종을 만날 수 있다.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아닉 르 게레와 무려 20년이 넘는 자료 조사와 연구를 통해 향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스러운 향, 고대 로마 왕실의 고풍스러운 향, 쇼팽의 연인이자 여류 소설가였던 조르주 상드의 메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까지 르네상스와 유럽 제국주의를 지나 현재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유럽 전체를 이 한 병의 향수에 농축시키려는 것만 같다.

기자가 방문한 날, 작은 파리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프랑스인들의 취향이 궁금해서, 혹은 잠시나마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아주 잠깐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긴,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가치는 역사 속에 방점을 찍고 있으니 유럽의 과거를 만나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작고 소중한 프랑스 여행은 늘 똑같기만 했던 우리의 시간에 새로운 의미를 선물해 준다.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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