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소재 녹슬까봐 페인트칠하며 6년 버텼죠”…다시 뛰는 두산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 르포
멈췄던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탈원전 폐기 1년 만에 원전 생태계 복원 속도
“SMR 수주 증가 예상…신공장도 추진”

[비즈니스 포커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원자력 공장에서 직원이 교체형 원자로 헤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제공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직전에 놓였던 원자력발전소 생태계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원전 활성화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1년 만에 원전 생태계가 정상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월 15일 찾은 경남 창원의 두산에너빌리티 공장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날 창원공장에선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주기기 제작 착수식이 열렸다. 두산에너빌리티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2023년 3월 체결한 2조9000억원 규모의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주기기 공급 계약에 따른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주기기 제작은 2017년 10월 이후 6년 만이다. 신한울 원전 3·4호기는 경남 울진군에 1400MW급 한국형 원전(APR1400) 2기를 짓는 사업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에 따라 중단됐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재개됐다. 3호기는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이날 착수식에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황주호 한수원 사장을 비롯해 원전 협력 업체들과 도지사·국회의원들도 참석했다. 이 장관은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한국전력공사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됐다”며 “원전 생태계를 신속하게 복원해 원전 정상화 정책을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원전 산업의 메카인 경남도의 감회는 남다르다. 경남도에는 원전 등 에너지 관련 협력 업체들이 집중돼 있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최근 고용·실업·제조업생산지수 등 경제 지표를 보면 경남이 경제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가 경남 경제에 활력을 주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단조 공장에 설치된 1만7000톤 프레스기가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중 하나인 증기 발생기 단조 소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제공


K-원전 부활 신호탄…SMR 일감 기대감 쑥

창원공장은 축구장 660개 규모,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드넓게 펼쳐진 마산만을 배경으로 원자력 공장, 주조·단조 공장, 터빈·발전기 공장, 풍력 공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선 소재 제작부터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이 가능하다.

공장 한쪽에선 무게 1만7000톤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프레스가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단조 작업에 한창이었다. 성인 남성 24만 명이 동시에 누르는 것과 같은 힘으로 200톤 규모의 합금강을 눌러 신한울 3·4호기에 들어가는 증기 발생기의 형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프레스에 들어간 쇳덩어리의 모양과 형태가 잡히면 중형차 520여 대 무게에 해당하는 775톤 규모의 증기 발생기가 완성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증기 발생기를 비롯해 원자로·터빈발전기·원전계측제어설비·원자로 냉각재펌프 등 주요 기기를 제작해 신한울 원전 3·4호기에 공급한다.

주기기 제작에 필요한 소재·부품과 제작 과정에 필요한 기계 가공, 제관 제작, 열처리 등은 한국의 460여 개 원전 협력사에 발주할 계획이다. 이미 2022년 약 320억원을 조기 발주했고 2023년 약 2200억원 규모를 발주하고 있다.

창원공장에선 탈원전 정책의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원자력 공장 앞에는 2017년 신한울 원전 공사 중단으로 제작이 중단된 주단 소재들이 쌓여 있었다. 이동현 원자력 공장장은 “6년 전에 제작됐지만 산화 방지를 위해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신한울 3·4호기에 들어가는 1400MW급 한국형 표준 모델 APR1400 원자로도 이곳에서 완성된다. 한때 350명이 근무했던 원자력 공장은 일감 감소로 160여 명으로 인력이 줄었다. 원전 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신규 채용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공장이 생각보다 휑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제 막 제품을 만들기 시작해 아직 보여줄 게 많지 않다”면서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시장 도약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단조공장에서 5월 15일 진행된 신한울 3∙4 주기기 제작 착수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원자력 공장은 미래 먹거리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글로벌 파운드리 전략의 핵심 공장이기도 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부터 미국 뉴스케일 파워의 핵심 사업 파트너로서 첫 SMR인 UAMPS 관련 시제품 제작을 진행해 왔다. SMR 제조를 위해 2023년 7월부터 원자력 공장 개조도 계획 중이다. 공장 개조가 완료되면 대형 원전 주기기 일색이던 공장이 SMR 관련 일감으로 가득찰 예정이다.

이동현 공장장은 “지금은 대형 원전 주기기 제작이 중심이지만 2024년 2월부터는 뉴스케일파워에서 수주한 SMR 6기 제작에 착수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SMR 수주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추가 수주 상황에 맞춰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SMR 신규 공장 건립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친환경 에너지 기업”…수소 퍼스트 무버 도약

두산에너빌리티는 탈원전 정책의 최대 피해자로 꼽혀 왔다. 탈원전 정책 여파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 등 알짜 계열사도 매각해야 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 대주주들은 5740억원 규모의 두산퓨얼셀 지분을 무상으로 두산에너빌리티에 증여했고 임원들은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약 1년 10개월간 급여 일부를 반납했다.

인력 감축, 자산 매각, 유상 증자 등 꾸준한 재무 개선 노력과 함께 원자력 중심에서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힘을 쏟은 결과 약 2년 만에 채권단 관리 체제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탄소 중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로 전환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채무 부담을 덜어낸 뒤 재도약하기 위해 사명도 두산중공업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바꿨다.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발전용 대형 가스 터빈의 최종 조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때마침 기회도 찾아왔다. 세계적인 탄소 중립 기조 속에서 탈탄소 산업 구조 전환이 본격화됐다. 전쟁 이후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원전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력·수소·암모니아·풍력 등을 탄소 중립 전략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터빈과 풍력 발전 기술 국산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설치된 발전용 가스 터빈의 전량이 외국산이었지만 두산에너빌리티가 2020년 세계에서 다섯째로 가스 터빈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탄소 중립 대응을 위한 수소 터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스 터빈에서는 ‘패스트 팔로워’였지만 수소 터빈에선 ‘퍼스트 무버’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2027년까지 수소 터빈 개발을 완료하고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항공·조선 산업 등 최첨단 부품 산업과 수소 경제로 파급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상언 파워서비스BG GT센터담당 상무는 “국산 가스 터빈 개발로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며 “가스 터빈은 후발 주자였지만 수소 터빈만큼은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말했다.


창원=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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