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역전세 쓰나미'올까…2년 전 정점찍었던 전세 만기[전세의 비극②]

2021년 전세 낀 '갭 투자' 3배 늘어…올해 체결된 아파트 전세 계약의 62%는 하락거래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뉴스1


올해 하반기부터 역전세 후폭풍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셋값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정점을 찍었다. 이 전세의 만기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도래한다. 역전세는 시장 침체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을 통틀어 말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기간 아파트 값의 70% 이상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한 갭 투자가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다. 집주인들이 자기 돈이 아니라 세입자의 돈과 대출로 집을 샀기 때문에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든 사례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가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갭 투자 현안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아파트 값의 70% 이상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한 건수가 2020년 2만6319건에서 2021년 7만3347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중 자기 돈을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무자본·마이너스 갭 투자’도 2020년 1847건에서 2021년 6986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예를 들면 집을 5억원에 매입하고 전세를 5억5000만원에 주는 식이다.

임대인이 의도한 전세 사기가 아니더라도 전셋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임대차 계약 종료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3월과 4월 임차권 등기 명령 신청 건수가 두 달 연속 3000건을 넘어섰다. 임차권 등기는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이사를 나간 후에도 등기부등본에 임차권이 있음을 명시하는 것이다.

임차권 등기가 설정돼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같은 신청 규모는 이례적이다. 지난해 7월까지 임차권 등기 명령 신청 건수는 월별 기준으로 1000건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올해 전세 60% 이상 하락 거래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021년 하반기~2022년 초에 정점을 찍었다.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의 전세 최고가도 당시에 형성됐다. KB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2021년 9월 6억2680만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년 만기가 끝나는 오는 9월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근거다.

이때를 정점으로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전셋값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10월 1년 만에 5억원대(5억9966만원)로 내려갔다. 올해는 2020년 수준까지 떨어졌다. 올해 4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4억9833만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이 5억원대 이하로 내려간 것은 2020년 9월(4억6833만원) 이후 처음이다. 초저금리로 인해 본격적으로 부동산에 돈이 몰리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올해 체결된 아파트 전세 계약의 62%가 2년 전과 비교해 하락 거래됐다는 조사도 있다. 부동산R114가 올해 4월 26일까지 전세 거래된 전국 아파트 18만9485건 가운데 동일 단지 동일 면적의 전세 계약이 1건 이상 체결된 3만2022건의 최고 거래 가격을 비교한 결과다.

특히 수도권 하락 거래가 66%로 지방 57%에 비해 더 높았다.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큰 폭으로 내렸고 낮은 가격에 신규 계약한 사례가 많았던 영향이다. 신축 아파트일수록 역전세 우려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2년 전 대비 올해 전세 하락 거래 비율은 5년 이내 신축이 70.9%로 가장 높았다.

여경희 부동산 R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보증금 반환 지연에 따른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은 물론 소송·대출 이자 등 비용 부담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전셋값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가격 고점이었던 2021년~2022년 초까지 계약한 임차인들의 전세 만료 시점이 속속 도래하면서 역전세 이슈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전세 심화, 주택 가격 하락에도 영향
역전세가 급증하면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세 시장은 임차인이 나가면 새 임차인을 구하면서 자금의 연쇄 고리가 형성돼 있는데 전셋값이 하락하면 이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상승기에 전세 보증금을 매매의 지렛대로 활용해 온 만큼 역전세난이 심화되면 전세 사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보증금에서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세와 매매의 상관관계가 커져 왔다”며 “전셋값이 오르면서 매매가를 끌어올렸던 트렌드를 역으로 본다면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매매 가격을 끌어내리는 구조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올해 전세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2019년 전세 사기가 급증했고 2020년 임대차 3법, 2021년 임대차 신고제가 시행됨에 따라 전세난이 심화됐다”며 “당시의 계약들이 2년·4년 만기로 돌아오는 상황이라 올해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 장관은 전세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를 없애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전세를 없애자는 식의 주장은 너무 단순한 접근"이라며 "대출 없는 임차인은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월세만 존재한다면 가계소득의 대부분이 주거비로 나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역시 지난 21일 "정부가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자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다"며 "국민이 선호하는 것에 따라서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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