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프랑스에서 설립됐지만 2013년 미국 데커스에 인수돼
매출, 2015년 900억원 수준에서 2021년 1조1700억원까지 성장
후원해온 전문 선수들의 성공으로 운동 ‘덕후’들 관심 받아
미국의 운동화 브랜드 호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불과 5년 전 2000억원대의 매출이 최근 1조원 이상으로 늘었다. 매출 규모는 매년 50% 이상 늘고 있고 업계에서는 실적이 더 개선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호카는 창업자의 진짜 고민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어떻게 해야 안전하면서도 빠르게 내리막길을 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제품이 탄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후원해 온 전문 운동선수들의 성공과 인플루언서의 착용으로 인기가 더해졌다. 한국에서는 독특한 디자인이 통하며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러닝화’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1조 회사’로 성장…‘내 고민’에서 시작된 브랜드호카는 2009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로, 뉴질랜드 마오리족 언어로 ‘날아오르다’는 뜻이 있다.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 출신의 니코 머무드와 장 뤼크 디아르가 회사를 나와 호카를 설립했다. 이후 2013년 미국의 데커스 아웃도어가 호카를 인수했다.
어그·테바·사눅 등 다양한 신발 브랜드를 보유한 데커스는 2015년 호카가 포함된 ‘퍼포먼스 라이프스타일 사업부문 사장’에 테니스 선수 출신의 웬디 우드 양을 선임했다. 양 사장은 팀버랜드·리복·뉴발란스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데커스의 스니커즈 부문 사장을 지냈는데 이 기간 호카가 크게 성장했다.
실제로 호카의 매출은 2015년 이전까지 7000만 달러(약 900억원) 수준에 그쳤지만 2017년 1억5350만 달러(약 2017억원)로 성장했고 2020년에는 5억7120만 달러(약 7500억원)로 늘었다. 2021년 호카의 매출은 전년 대비 56.1% 늘어난 8억9160만 달러(약 1조1700억원)를 기록했다.
호카는 2016년까지만 해도 데커스 아웃도어 실적 자료에서 ‘아더 브랜드(other brands)’에 속해 개별 집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2017년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실적이 개선되자 별도 매출을 기재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매출 1위인 어그에 이어 둘째 자리로 올라서며 중요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호카는 창업자의 ‘진짜 고민’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취미가 달리기인 창업자들은 고도가 높고 위험한 산의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반 달리기뿐만 아니라 다치지 않고 마라톤 완주가 가능한 기능성 제품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면서 호카의 제품 개발이 시작됐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첫 제품은 ‘오버사이즈 아웃솔’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두께감이 얇고 최소한의 쿠션만 들어간 미니멀리즘 신발이 인기였다. 호카는 정반대 전략을 추진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러닝화보다 2배 이상의 쿠션감을 추가하고 험난한 지형에도 적합하도록 신발 밑창(아웃솔)을 과하게 부풀린 것이 특징이다. 과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무게는 가볍게 만들었다. 호카에서 내놓은 대부분의 제품은 200~300g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과하다는 의미를 담아 ‘맥시멀리스트’라고 불렀지만 호카는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고객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덕후’에 초점…“우승한 선수, 뭐 신었어?”이후 호카는 ‘운동 덕후(한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을 가진 사람을 특정하는 단어)’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인기의 시작에는 ‘마라톤 선수’가 있었다. 호카가 후원하는 운동선수들이 세계적인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호카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호카는 ‘우승하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운동을 좋아하는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게 됐다.
실제로 호카의 첫 후원 대상이었던 미국의 울트라 마라톤 선수 칼 멜처는 100마일(약 160km) 러닝 경기에서 호카를 신고 우승했다. 호카는 멜처 선수의 선택으로 인기를 얻자 멜처 선수의 별명인 ‘스피드 고트(역대 최고의 스피드)’를 따 2015년 ‘스피드고트’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8년 마라토너 캠 레빈스 선수는 마라톤 데뷔 무대에서 캐나다 국내 기록을 깼고 스콧 파블 선수는 2019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9분 9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다른 마라토너 짐 위슬리 선수는 2019년 호카 제품을 신고 50마일(80km) 세계 신기록 4시간 50분 8초의 기록을 세웠다. 또한 2020년 올림픽 선발 마라톤 대회에서 미국의 알리핀 툴리아무크 선수는 호카 제품을 신고 승리했다.
호카는 현재도 후원을 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현재 호카는 전 세계 각국에서 마라토너, 트라이애슬론 선수, 울트라 트레일 선수 등을 후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지수 선수가 호카코리아 소속으로 호카의 후원을 받고 있다.
호카는 공식 홈페이지 소개란에도 “우리는 모든 운동선수가 두려움 없이 창의적으로 행동하고 목적과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자도 신는다…인플루언서로 입소문도 한몫호카의 성공에는 이미지 마케팅도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유명인들이 호카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실제 구글에 호카를 검색하면 ‘어떤 연예인들이 호카를 신었나요’, ‘호카는 왜 그렇게 유명한가요’, ‘카일리 제너가 신은 호카 제품은 무엇인가요’ 등이 연관 질문으로 나온다. 구글은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다른 사용자들이 단어와 함께 자주 한 질문을 함께 보여준다.
해외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해리 스타일스와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의 이복 동생 카일리 제너, 영국 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 블레이크 라이블리 등 수많은 유명인들이 호카를 신고 운동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 영화배우 카메론 디아즈, 브리 라슨, 제니퍼 가너 등도 공식 석상 또는 일상에서 호카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배우 한예슬 씨도 호카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한예슬 씨는 과거 유튜브 채널에서 “운동할 때는 무조건 호카를 신는다”며 “20대 때 무릎 수술을 했다. 쿠션이 많아 러닝을 하거나 오래 걸을 때 이 운동화를 신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1년 사이에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유튜브 영상에서 호카를 언급하는 영상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MZ세대 사이에서는 캐주얼한 디자인이 통하며 지난해부터 인기를 얻었다. 경쟁사와 비슷하거나 이보다 비싼 가격대로 ‘프리미엄 러닝화’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도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호카 러닝화는 20만~30만원대에 나오며 등산화는 30만원대 이상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호카에 대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러닝화 브랜드”라며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산업이 침체됐는데도 호카는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위기에 강한 러닝 브랜드’라고 하는 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랑거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