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선정 20개 유니콘 가운데 19개 인건비 늘려
스타트업, 지난해까지 파격 대우 앞세우며 개발자 확보 경쟁
적자 늘어나며 채용 부담 커지자 올해 분위기 달라져
지난해 지방에서 서울 대기업으로 이직한 개발자 유 모 씨는 올해 취업 분위기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스타트업의 주된 화두는 ‘인재 영입’이었다. 같은 규모의 경쟁사는 물론 정보기술(IT) 대기업보다 좋은 개발자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신입 초봉 6500만원’, ‘성과급은 기본급의 1000%’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커진 인건비 부담이다. 흑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건비가 늘어나자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스타트업은 허리띠 졸라 매기에 들어섰다. 개발자 채용 규모를 줄이는 곳은 물론 한시적으로 중단한 곳까지 나오고 있다. 1년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비상장 유니콘들, 고정비 부담 커졌다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비상장 기업들은 흑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도 인건비를 늘려 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20개 기업을 살펴본 결과 한 곳(위메프)을 제외한 모든 기업이 인건비에 해당하는 ‘급여 지출액’을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매출액 대비 급여 지출액 비율이 10%를 넘는 기업은 13곳으로 나타났다.
인건비로 큰 타격을 받은 회사는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의 직거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당근마켓’의 연결 기준 급여 지출액은 2021년 130억원에서 지난해 324억원으로 139.3%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대비 급여액 비율은 50.7%에서 65.0%로 늘었다.
이 밖에 지난해 상여금 9억3000만원, 복리 후생비 50억원 등 총 1064억원을 영업비용으로 지출했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영업 손실액 565억원을 기록하며 매출(499억원)을 뛰어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당근마켓의 적자에는 인건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근마켓은 2021년 300명의 개발자를 채용할 당시 신입의 초봉을 6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IT 대기업 초임보다 약 500만~1000만원 높은 금액으로, 당근마켓은 ‘업계 최고 대우’를 앞세워 개발자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당근마켓은 IT업계 인기 기업인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 포함돼 ‘네카라쿠배당토(당근마켓과 토스를 추가한 단어)’로 불리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기간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며 개발자를 채용한 직방도 타격을 받았다. 직방은 2021년 세 자릿수의 개발자 채용에서 초봉 6000만원을 제시했고 경력직 채용 시에는 직전 직장 1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내걸기도 했다. 또한 재직자에게는 연봉 2000만원을 인상하며 ‘개발자 대우’에 초점을 맞춰 왔다.
직방의 인건비는 2021년 104억원에서 지난해 234억원으로 123.8% 늘었고 매출액 대비 급여액 비율은 18.7%에서 26.5%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직방의 영업 적자는 82억원 수준에서 371억원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515억원이다.
결국 직방은 최근 구조 조정을 시작했다. 현재 직방은 내부에서 인사 평가와 개별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퇴사를 권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 직방의 임직원 수는 448명이다. 다만 직방 측은 정리 해고가 아닌 인사 평가 시즌에 생길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개발자들 “1년 만에 세상 달라져…성과급? 꿈도 못 꿔”이 밖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높아졌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의 연결 기준 인건비(급여 지출액)는 2021년 795억원에서 지난해 1572억원으로 97.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10.2%에서 13.2%로 높아졌다.
숙박 앱을 운영하는 야놀자는 지난해 인건비(퇴직급여 포함)로 1972억원을 지출했다. 전년(930억원) 대비 112.0% 증가했고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28.2%에서 32.6%로 높아졌다.
이 외에도 무신사·버킷플레이스·리디·엘앤피코스메틱·아이지에이웍스·시프트업 등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인건비 비율이 높아졌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빠르게 성장하려면 능력 있는 개발자를 많이 데려와야 하는데 한두 명 가지고 경쟁이 되겠나. 수십~수백 명이니까 인건비가 는다. 온라인을 강화하려는 회사 중 직원의 60~70%를 개발자로 두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면서 동시에 실력 좋은 리더급 개발자도 있어야 한다”며 “그런 개발자들은 부르는 게 연봉이다. 그런 사람들이 10명 몫을 해내기 때문에 연봉이 높다고 데려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직 개발자가 느끼는 현실도 달라졌다. 네트워크 인프라 개발직군에 있는 유 모 씨는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회사들이 개발자를 많이 찾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그런 자리가 사라졌다”며 “불과 1~2년 전만 해도 ‘그래도 뽑자’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뽑지 말자’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21년 취업 자리가 100개 있었다면 지난해 50개, 올해 10개가 된 느낌”이라며 “지난해와 올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성과급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기본급 1000% 이런 성과급이 다 사라졌고 기대도 못 한다. 내가 여기에서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직군에 있는 황 모 씨는 “‘연봉 1억원을 주고 모셔온다’는 말은 이미 끝난 지 오래”라며 “실력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회사 눈치 보며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과장해 표현하면 1년 전까지는 우리가 갑이었는데 올해는 을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입이 아니라 신입 초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 회사부터가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다”며 “올해는 있는 사람들이라도 지키자는 분위기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채용에 대해 같은 기조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