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20개 기업 인건비 26조…속도 조절에도 부담 늘었다[인건비의 역습①]

삼성전자, 1분기 연결 매출 대비 인건비 15%…하이닉스는 28%
20개 기업 매출 대비 인건비 평균 15.2%…게임업계는 절반이 인건비

여의도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한국경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기업들은 뜻밖의 호황을 경험했다. 반도체·자동차·바이오·인터넷·게임·2차전지·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산업이 한꺼번에 살아난 영향이었다. 호황은 두 가지 변수와 마주쳤다. 개발자 등 늘어나는 인력 수요에 비해 부족한 인재 풀 그리고 자기 권리에 철저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이었다. 이 만남의 결과는 큰 폭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가 꺾일 조짐을 보이자 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번 탄력을 받은 임금 상승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졌다. 인건비 지출이 계속 늘어난 것. 매출 증가에 비해 임금이 더 올라 수익성이 악화된 상장 대기업들이 많았다. 상장을 추진 중인 일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들은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이 50%를 넘어 재무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우선 상장사. 한경비즈니스가 한국의 주요 상장사 20개사의 1분기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이 지출한 인건비는 2021년 1분기 20조3459억원에서 2022년 1분기 25조1149억원으로 23% 증가했고 올해 1분기 25조78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1분기 매출 상위 14개 기업(재무제표에 급여를 표기한 곳)과 SK하이닉스를 포함해 국내 주요 정보기술(IT)·게임 업체 6곳이 분석 대상이었다. 순수 지주회사와 공기업은 제외했다.



분기 보고서에는 급여 총액을 의무적으로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판매 관리비 내에 있는 급여와 매출 원가에 속하는 급여를 더해 급여 총액을 표기하고 있다. 급여 총액을 표기하지 않은 기업은 재무제표에서 급여와 퇴직 급여, 복리 후생비를 더해 인건비를 산출했다.

2021년 기업들의 인건비 인상 경쟁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들은 인건비에 대한 부담을 내비치며 연봉 인상 속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20개 기업 중 엔씨소프트를 제외한 19개 기업이 모두 2년 전과 비교해 올해 1분기에 인건비로 지출한 비용이 더 늘었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벌어들인 금액 중 얼마만큼을 인건비로 썼느냐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2년 전보다 높아진 기업은 11곳이었다. 삼성·SK하이닉스, 최악 실적에도 인건비 늘어

지난 1분기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최근 4년 중 가장 높았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연결 기준 급여, 퇴직 급여, 복리 후생비를 합한 금액은 9조7207억원으로 매출의 15.2%를 차지했다. 숫자와 비율 모두 최근 4년 새 가장 높았다.

반도체 업황이 고꾸라지면서 삼성전자는 연봉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나섰다. 삼성전자와 노사협의회는 지난 4월 평균 임금을 4.1% 인상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2021년 7.5%, 작년 9%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43조원 수준으로 2021년보다 16%가량 줄어든 경영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재협상을 요구하며 다시 조정에 나섰다. 노조 측은 10%대의 연봉 인상률을 주장하다가 6%대 이상 인상으로 요구안을 낮췄다.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 가입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에 인건비로 1조4421억원을 지출했다. 금액은 지난해 1분기(1조8073억원)보다 줄었지만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은 28.3%로 4년 중 가장 높았다. 업계에서는 현금 흐름이 좋지 않은 SK하이닉스가 인비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 매출액 절반이 인건비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봉 인상 격전지였던 IT업계의 인건비 지출은 다른 업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의 주요 IT·게임업체 5곳은 매출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크래프톤은 1분기에 매출의 48.5%에 해당하는 1008억원을 인건비로 지출했다. 엔씨소프트(44.2%)와 넷마블(31.1%) 역시 개발자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던 만큼 인건비 지출이 컸다.

늘어나는 인건비와 반대로 게임업계의 실적은 부진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업계 전반에 실적 쇼크 도미노가 이어졌는데 올해 1분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넷마블은 올해 1분기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6% 줄었고 엔씨소프트 역시 39.42% 줄었다.

최근 수년간 인건비 급증은 수익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넷마블은 올해 1분기 282억원의 영업 손실을 보며 5분기째 적자가 이어졌다. 엔씨소프트는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67%나 급감했다. 크래프톤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0% 줄었다. 개발 인력 구인난에 게임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재 유치 ‘출혈 경쟁’을 벌였지만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았고 매출은 도리어 감소한 영향이다.

IT 양대 산맥인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20%대를 기록했다. 네이버는 매출액의 21.6%에 해당하는 5360억원을 인건비에 썼고 카카오는 매출액의 25.6%인 4458억원이 인건비로 나갔다. 이 가운데 카카오는 최근 4년간 1분기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을 비교한 결과 올해 1분기가 가장 높았다.

카카오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2019년 8000만원에서 2020년 1억800만원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1억7200만원까지 뛰었다. 2020년 대비 59.2% 급증했다. 2021년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먹튀’ 논란이 터지면서 내부 불만이 거세지자 내부 구성원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으로 연봉 인상 카드를 꺼내든 영향이다. 지난해 본사 임금 인상률은 15%였다. 지난해에는 성과급 등이 줄며 1억3900만원으로 떨어졌지만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네이버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8400만원(2019년), 1억248만원(2020년), 1억2915만원(2021년), 1억3449만원(2022년)으로 꾸준히 올랐다. 네이버는 올해 채용 속도를 조절하며 비용 효율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경영진은 인건비 통제를 강조했다. 올해 네이버 노동조합과 사측이 합의한 임금 인상률은 4.8%다. 노조가 11% 연봉 인상률을 제시하고 사측은 3.8% 인상률을 제시하면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다가 합의됐다. 앞서 카카오는 올해 본사 기준 임금 인상률을 6%로 합의했다. ‘연봉 자랑’에서 ‘해고 걱정’으로 바뀐 블라인드

지난 몇 년간 이어진 기업의 임금 인상 경쟁이 실적에 부담을 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시작은 개발자 인력난이었다. 2020년부터 정보통신기술(ICT)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재 쟁탈전이 전 산업계로 번지면서 이직 도미노 현상도 일어났다.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개발자 위주였던 연봉 인상 경쟁이 전 직군으로 확대됐고 스타트업과 IT 기업을 넘어 전 산업계로 연봉 인상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

자금이 풍부한 기업들이 높은 연봉을 내세워 인재 채용에 나섰고 젊은 직원들은 ‘연봉’을 1순위로 두고 회사를 옮겼다. 잡코리아가 2020년 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직장인 10명 중 8명(전체 응답자 485명)이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이직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봉이었다. 응답자 중 43.7%가 ‘연봉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앞다퉈 연봉 인상 행렬에 동참했던 이유다.


인재 확보전과 연봉 인상의 불을 지핀 IT업계의 상황은 더 치열했다. 연봉을 높여도 일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변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권고사직’을 검색한 직장인이 1년 만에 9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년까지만 해도 블라인드에는 서로의 연봉 인상률과 복리 후생비를 다 합쳐 “이 정도 받는다”며 자랑 글이 넘쳐났다. 기업별로 노조의 연봉 인상 요구가 빗발쳤던 것도 블라인드를 통해 서로의 내부 사정과 연봉 인상률을 정리하는 글이 올라오고 이런 내용이 빠르게 번져 나간 영향도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경영진도 “경쟁사보다는 0.1%라도 더 올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올해는 밝은 키워드 대신 어두운 키워드가 블라인드를 채웠다. 블라인드가 발표한 ‘1분기 블라인드 한국 가입자의 고용 불안 키워드 검색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고·권고사직·실업급여·구조조정·희망퇴직·명예퇴직을 포함한 고용 불안 키워드의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배 증가했다. 특히 ‘권고사직’ 검색량이 9.3배 늘었다. 지난해 1분기 연관 검색어 50위권 밖이었던 ‘당일 해고’는 1년 만에 2위로 올라섰다.임금 상승→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전문가들은 기업 생산성 향상이나 실적 개선과 무관한 임금 인상 경쟁이 지속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건비 등 고정비가 지나치게 증가하면 영업이익 감소는 물론 투자 축소로 미래가 흔들리고 고용도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나서 기업들의 ‘임금 인상 릴레이’에 경고하기도 했다. 고물가가 임금 인상을 자극하고 높아진 임금이 다시 물가 상승을 자극하며 소비가 감소하고 경기가 둔화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난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쟁적인 임금 인상은 오히려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으니 기업은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생산성 향상으로 자체 흡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당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됐다. “인플레이션 잡으랬더니 왜 직장인을 잡냐”는 이유에서다. 추 부총리가 말한 임금 인상 자제 발언의 배경은 “대기업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 인상은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확대하고 기업 현장 곳곳에서 일자리 미스 매치가 심화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고임금·고비용 구조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말했다.

직장인들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발언이지만 노동 유연성이 떨어지는 한국에서 기업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적이 성장하고 사업이 안정적일 때 적극적인 고용에 나섰지만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는 인력을 줄이기 힘들다. 한국 대기업의 딜레마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역시 구글·아마존·메타 등 빅테크, 콘텐츠업계, 바이오업계가 전체 직원의 6~13% 정도를 해고하는 대대적 감원 절차에 돌입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해고된 미국 테크 노동자의 79%는 해고 3개월 내에, 37%는 한 달도 못 돼 재취업에 성공했다. 그만큼 미국 경제가 좋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실리콘밸리 기업의 ‘쉬운 해고’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지 않는 배경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은 고용 유연성이 떨어졌고 MZ세대 사원들의 요구를 경영진이 수용하는 분위기가 이미 형성됐다”며 “재택근무가 주3회에서 주2회로 줄기만 해도 직원들의 반발이 심한데 연봉은 출근보다 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에 동결 카드를 꺼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심의 급격한 임금 인상은 한국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인 이중 구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대기업 직원의 연봉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연봉 인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격차가 더 벌어지면 사회적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좁은 문을 향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인재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더 취약해지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업 생태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기업 직원, 특히 MZ세대의 파워가 강해진 한국의 현실에서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상생이라는 단어가 최근 언론에서 사라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높은 인건비 부담은 한국 산업의 경쟁력 전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한국 대기업의 임금은 일본을 웃돌고 있다. 단순한 임금 경쟁력으로만 보면 일본에 뒤처진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평균 임금은 3만9711달러로 34개국 중 24위였다. 반면 미국의 임금은 일본보다 약 1.9배 높은 7만4738달러였다. 한국의 평균 임금은 4만2747달러였다. 한국에서 제조업 창업이 줄어드는 것도 인건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 인상 요구를 ‘절대적 임금 수준이 높다’며 무시할 수도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또 사람이 경쟁력인 시대에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돈보다 더 좋은 무기가 없다는 점도 딜레마다. 대기업들의 임금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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