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발 반도체 폭풍…삼성·SK 언제까지 웃을까[투자 시장 뉴 트렌드 ]
입력 2023-06-05 06:01:40
수정 2023-06-05 06:01:40
엔비디아, AI 산업에 필요한 ‘GPU’ 시장점유율 90% 차지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이어 2분기에도 시장 기대치 웃돌 전망
증권업계, 힌국 기업 주가 상승세 둔화 가능성 언급
반도체주가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챗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정보기술(IT)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반도체 칩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상승은 미국의 시스템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가 이끌고 있다. 엔비디아의 실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끌어올리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7만원 선을 회복했다.
반도체 경기는 당분간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한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 상승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엔비디아 ‘실적 고공 행진’, 2분기까지 이어진다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각을 돌려놓은 것은 엔비디아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주가는 5월 30일 장 마감 기준 401.11달러를 기록했다. 5월 4일 기준 엔비디아의 주가는 275.62달러였다. 5월 들어 상승률 45.53%를 기록했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상승세는 더 두드러진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1월 3일(143.15달러) 대비 180.20% 급등했다.
엔비디아가 속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5월 30일 기준 1만3017.43을 기록했다. 5월 4일(1만1966.40)과 비교하면 8.78% 올랐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나스닥 주가를 견인한 영향이다.
엔비디아의 주가 급등은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5월 24일 1분기 71억9000만 달러의 매출과 21억4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70% 늘었다. 순이익은 44% 증가, 20억4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엔비디아는 1분기에 시장 전망치(65억2000만 달러)를 10.28% 웃돈 실적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엔비디아는 ‘심화하는 AI 경쟁’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로 실적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IT 산업은 가속 컴퓨팅과 생성형 AI라는 두 가지 변화를 겪고 있다”며 “기업들이 모든 제품에 AI를 적용하는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급을 대폭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2분기 전망도 낙관적이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은 110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전망치(71억5000만 달러)보다 53.85% 높다. AI 수혜, 왜 ‘엔비디아’일까AI 산업의 경쟁 심화가 엔비디아에 특별히 긍정적인 것은 ‘영향력’ 덕분이다.
딥러닝을 포함한 대부분의 AI 기술은 보통 ‘병렬 연산’ 방식으로 처리된다. 병렬 연산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동시에 읽을 수 있어 데이터 처리 속도를 줄여 준다. 쉽게 말해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고 병렬 연산은 데이터 학습의 효율성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IT 기기에서 병렬 연산을 하는 곳은 ‘그래픽처리장치(GPU)’다. GPU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뿐만 아니라 자율 주행과 AI 등 대부분의 기술에 사용되는 부품이다.
컴퓨터 전체의 두뇌는 중앙처리장치(CPU)이지만 AI로만 한정했을 때는 CPU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GPU다. 이같이 중요한 GPU를 최초로 선보인 곳이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1999년 대규모 병렬 연산이 필요한 비디오 게임의 3D 이미지를 렌더링하는 GPU를 출시하며 GPU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현재 엔비디아의 GPU 시장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세상에 나오는 GPU 10개 가운데 9개는 엔비디아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공급 부족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급 AI 반도체는 수요가 많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며 “가격은 3만3000달러(약 440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GPU는 전력 소모가 크고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체재가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전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신경망처리장치(NPU)가 GPU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여전히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아직은 GPU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CEO 카운슬 서밋’에 참석해 “현시점에서 GPU는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I 모델에는 최소 1만 개 이상의 GPU가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챗GPT 이전 버전에 사용된 GPU는 1만 개, 최신 버전에는 이보다 최대 5배 이상의 GPU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겨룬 구글 ‘알파고’에 엔비디아의 GPU 176개가 사용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 상승세엔비디아 반도체 칩 수요 증가로 한국 기업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일 주가가 강세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5월 30일 종가 7만2300원을 기록했다. 5월 초인 5월 2일(6만5700원)과 비교하면 10.05% 올랐고 올 초인 1월 2일(5만5500원)보다는 30.27% 상승했다.
SK하이닉스는 5월 30일 11만300원을 기록했다. 5월 2일(9만200원) 대비 22.28%, 1월 2일(7만5700원)과 비교하면 45.71% 상승했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업이 덩달아 주목받는 이유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엔비디아의 GPU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로, 여러 개의 D램 칩을 TSV(Through Silicon Via)로 수직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HBM은 1세대 HBM을 지나 2세대(HBM2)와 3세대(HBM2E)를 거쳐 현재 4세대(HBM3)까지 개발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세계 최초로 HBM3를 개발하고 2022년 양산에 성공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점유율은 50%, 삼성전자는 40%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HBM 수요는 매출 기준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성장할 것”이라며 “대부분 수주도 끝났다고 판단하고 있고 내년에도 동일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파운드리는 고객사 재고 상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됨에 따라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며 “용량 메모리 집적 기술인 8단 HBM3 2.5D 패키지 기술 개발을 완료해 향후 생성형 AI용 제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상향은 맞지만 전망은 엇갈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상승으로 방향을 튼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 대해 증권가 전망은 엇갈린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상승을 반영,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9만원, SK하이닉스를 13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주가의 단기 급등으로 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우상향 방향성은 명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연구원은 “AI 시장 성장에 따른 반도체 업계의 수혜가 막연한 기대에서 현실로 바뀌었다”며 “엔비디아의 수혜는 메모리에 대한 관점이 전문품에서 범용품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HBM 등의 제품은 공급 제약이 명확한 가운데 시장 성장성이 높아 수주형 비즈니스로 전환될 여지가 있다. AI 반도체 사이클에서 한국 반도체의 가치 확장 명분은 충분히 가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도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9만원, HSBC는 8만8000원으로 높였다.
반면 신중한 목소리도 있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수요가 아주 좋다거나 하반기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고 소비 지표도 좋은 것 같지 않다는 게 이유다.
그는 “기업도, 개인도, 상황도 좋지 않다”며 “해외 빅테크 업체들은 레이오프(구조 조정)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현금 유동성 측면에서 투자를 늘리지 못한다. 개인들이 소득이 늘어나고 소비 여력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차지하는 부분은 서버, 스마트폰, PC 순”이라며 “AI 서버 수요 딱 하나만 좋은데 전체 서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다. 결국 엔비디아만 좋은 상황이라는 의미다.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볼 수 있지만 제한적이다. AI 서버가 전체 시장을 개선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 역시 “하반기에 들어서면 지금처럼 급격하게 오르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지난 1년간 워낙 바닥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다가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가 한 번에 몰려 주가가 반응했다. 하반기에도 조금씩 상승하겠지만 그런 기대감이 무뎌지면서 큰 폭의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정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버·스마트폰· PC 등에서 다양한 호재가 있기 때문이다. 서버에서는 빅테크 업체와 클라우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에서는 하반기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라인업이 예년보다 일찍 공개될 가능성이 있고 애플의 신제품 출시도 예정돼 있다. PC 수요는 연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줄어들 수 있지만 분기별로 보면 회복세를 이어 갈 것으로 관측된다.
정 연구원은 “전반적인 메모리 응용처들의 회복이 예상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좋아질 것”이라며 “반도체주는 6개월을 선행한다고 한다. 지금부터 6개월이면 연말이다. 그쯤 대부분의 응용처가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