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대박 아니면 쪽박, 채권 투자 흥망사 [투자 시장 뉴 트렌드 ]

[스페셜 리포트 - 투자 시장 뉴 트렌드]

사진=연합뉴스

‘마켓 히스토리101 : 지금은 채권을 사야 할 때.’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월 게재한 기사의 제목이다. 1973년 오일쇼크는 물가 상승을 촉발했고 세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 2차 오일쇼크로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자 당시 폴 볼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연이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충격으로 자산 가격이 폭락했고 시장의 흐름은 분명해졌다. 1973년과 1980년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경기 침체기마다 채권은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투자자들의 관심은 또다시 채권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안전 자산인 채권은 시장이 요동치는 때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채권 발행 기관이 파산하면 원리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국채보다 회사채에 투자할 때는 선별적인 투자가 더욱 중요하다. 각 기업마다 리스크가 천차만별인 만큼 한 끗 차로 ‘대박 혹은 쪽박’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회사채 투자, 옥석 가리기 중요한 이유
1997년 외환 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에 큰 상흔을 남겼다.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과 실물 경제가 붕괴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기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 성공한 투자자들이 있었다. 외환 위기 직후 한국의 ‘AAA’ 등급 기업 채권의 연간 금리는 30%까지 솟구쳤다. 당시 채권에 투자한 사람들은 우량 회사채를 통해 안정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높은 수익까지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1997년 ‘채권 투자 대박’의 기억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 위기가 찾아오며 또다시 위력을 발휘한다. 금융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시장 금리는 치솟으면서 채권에 관심을 두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었다. 금융 위기 직후 각국 중앙은행들이 사상 유례없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 또한 채권 투자자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 요인이었다. 금리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명확해지면서 한국 금융 시장의 전문가들 또한 채권 투자가 유망하다며 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시는 투기 등급인 국내 3년 만기 ‘BBB―’ 등급 채권의 연 수익률이 11∼12%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증권사 소매채권 창구에선 금리가 연 7%를 웃돌아야 상품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다. 실제 2009년 개인 투자자들의 회사채 순매수 규모만 3조60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채권 투자로 대박을 냈던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3월 기아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아차는 대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BW를 4000억원어치 발행했다. 만기 3년에 연 5.5% 수익률로, 사채 발행 조건도 무난했다. BW는 회사채와 함께 워런트가 부과된 채권(Bond with Warrant)이다. 일반 회사채와 비교해 이자율이 낮은 대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인수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금융 위기로 인해 투자처가 막혔던 상황에서 기아차의 BW는 큰 화제가 됐다. 기아차의 BW 청약에 약 8조원이 몰리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때 뛰어든 투자자들은 채권 외에 기아차가 새로 발행하는 신주를 6880원에 살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2년 뒤인 2011년 기아차는 신주를 발행했는데 당시 주식 시장에서의 주가는 7만4700원 이상이었다. 이때 신주인수권을 사용한 이들은 7만원이 넘는 주식을 6880원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연 5.5%의 금리 외에도 워런트만으로 2년 만에 10배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채권 투자가 늘 ‘대박’을 치는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 또한 적지 않다. 2014년 동양 사태는 비우량 회사채 투자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시멘트와 레미콘 등 건설 관련 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동양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건설 경기 부진으로 경영 실적이 악화되고 적자 폭이 급속히 커졌다. 2013년 현재현 당시 동양그룹 회장은 ‘법정 관리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부실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대량으로 발행했다.

당시 동양그룹의 계열사였던 동양증권은 이와 같은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동양그룹의 회사채를 판매했다. 결국 2013년 9월 동양그룹의 계열사 5개 기업이 법정 관리를 신청했고 신용 등급이 ‘디폴트(D)’로 강등되며 회사채는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다. 이로 인해 4만여 명이 넘는 개인 투자자들이 원금을 손실하는 등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피해 금액만 1조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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