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생산량을 7월부터 최소 한 달 간 하루 100만 배럴(bpd)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OPEC+의 다른 회원국들도 자발적 감산 기간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 등 24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월 4일 OPEC+는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례 장관급 회의 후 낸 성명에서 사우디가 7월부터 한 달간 추가로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 생산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OPEC+ 국가들도 지난 4월 결정한 자발적 감산 기한을 내년 말까지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부터 50만 배럴을 자발적 감산했던 러시아도 내년 말까지 이 방침을 연장하기로 했다. OPEC+는 성명에서 이 같은 결정이 "세계 원유 시장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OPEC+ 회원국은 앞서 지난해 10월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4월에는 일부 회원국이 116만배럴 규모의 자발적인 추가 감산을 깜짝 발표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당시 감산을 결정한 국가는 사우디(50만배럴), 이라크(21만1000배럴), 아랍에미리트연합(UAE·14만4000배럴), 쿠웨이트 (12만8000배럴), 카자흐스탄 (7만8000배럴), 알제리(4만8000배럴), 오만(4만배럴) 등이다.
여기에 더해 사우디의 100만 배럴 추가 감산이 이뤄지면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OPEC+의 총 감축량은 하루 466만 배럴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전 세계 수요의 약 4.5%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을 '사우디 롤리팝'이라고 표현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성명을 통해 "자발적인 추가 감산은 7월부터 시행하고 연장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가 감산을 원하는 배경에는 경제 성장에 힘을 주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이 자리하고 있다.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인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Neom City)’ 등을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올들어 국제유가는 내내 70달러 선에서 움직여왔다.
실제 추가 감산을 결정한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은 7월부터 하루 약 900만배럴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이었던 2021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UBS의 상품 애널리스트 지오반니 스타우노보는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은 1200만배럴에 가깝기 때문에 900만배럴 생산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봐야 한다”면서 “사우디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는 반등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8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사우디 감산 발표 후 아시아 거래에서 장중 한때 전장 대비 3.4% 급등한 배럴당 78.73달러를 찍었다. 7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장중 한때 전장 대비 4.6% 오른 75.06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상승 폭을 줄이며 73.1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경기에 미칠 파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먼저 물가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세계 경기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제 유가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컨설팅회사 라피단에너지그룹의 밥 맥낼리 회장은 “유가 안정을 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추가 하락에 베팅하는 트레이더 간의 전쟁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