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략 위해 플랫폼 고민 필수…비금융에서 고객 확장 노려야 -

=헬스케어 연계한 해외 사례 참고
=챗GPT가 금융업 기술 장벽 무너뜨려
=AI 도입 위해 거버넌스 논의해야

[스페셜 리포트 - 토크노믹스 시대 열어가는 STO]


류창원 하나금융연구소 실장이 6월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산업플랫폼 혁신포럼’에서 금융 디지털 플랫폼의 구축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 실장은 “전통 금융상품이 비대면으로 판매되면서 금융 플랫폼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김기남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유통업뿐만 아니라 금융업에서도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고 있습니다. 금융 상품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라도 금융의 플랫폼화를 추진해야 할 때입니다.”

류창원 하나금융연구소 실장은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에서 6월 8일 열린 ‘산업 플랫폼 혁신 포럼’에서 “전통 금융사도 플랫폼 경제의 판을 읽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류 실장은 이날 ‘비욘드 파이낸스, 금융회사 플랫폼 비즈니스의 미래’를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한경미디어그룹과 INF컨설팅이 함께 주최했다.

류 실장은 금융업계의 디지털 전략 수립에서 플랫폼 구축에 대한 고민이 필수가 됐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사업의 확장은 금융업계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봐서다. 그는 “금융사의 펀드 판매 비율에서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뛰어넘기 시작했다”며 “대환 대출 플랫폼의 등장과 카카오뱅크·토스와 같은 테크핀 업체의 등장으로 금융 플랫폼 간 경쟁 격화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금융 부문 세션을 진행한 연사들은 플랫폼과 인공지능(AI)을 금융업 디지털 혁신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제로섬 금융 시장 넓히려면 플랫폼 구축 절실”
류 실장은 금융업계의 디지털 플랫폼 구축이 절실한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플랫폼 경쟁력을 갖춘 해외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가 금융업 진출을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골드만삭스와 함께 연이율 4.15%의 저축 계좌 상품을 선보인 애플이 그렇다. 애플은 이 상품을 내놓으면서 수수료와 최소 예금 조건도 없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애플이 노키아를 무너뜨렸듯이 은행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은 금산 분리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의 금융사들도 거대 플랫폼의 금융업 진출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금융사가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디지털 플랫폼 구축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사실상 포화 상태인 금융 시장에서 경쟁사 고객을 빼앗아 오는 식의 ‘제로 섬(zero sum)’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비금융 플랫폼의 고객들을 금융 부문으로 끌어들이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류 실장은 “주거·모빌리티·여행 등 비금융 부문과 금융 부문의 플랫폼들을 한데 아우르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비금융 부문에서 고객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해 금융사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소비자의 후생을 높이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플랫폼 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도 금융업계의 디지털 플랫폼 구축을 유도하고 있다. 플랫폼 물결로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장기적으로는 금융사가 비금융 서비스를 공급하는 쪽으로 규제가 개선될 것이란 게 류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보험사는 헬스케어, 카드사는 생활 분야에서 플랫폼 사업 진출이 지금보다 수월해질 것”이라며 “규제 개혁이 이뤄지면 금융사는 디지털 플랫폼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헬스케어, 여행, 모빌리티 등 비금융과 연계해야
류 실장은 금융업계의 디지털 플랫폼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도 두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하나는 금융 부문에 생활 서비스를 결합하는 ‘비욘드 파이낸스’ 전략이다. 이 전략은 금융 서비스 채널을 주택·부동산·교육·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비금융 부문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반면 ‘임베디드 파이낸스’ 전략은 비금융 업체들의 플랫폼에 금융 기능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이미 해외에선 비금융 부문과의 연계로 효과를 본 금융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보험사인 중국평안보험이 그렇다. 이 회사는 자회사인 평안건강을 통해 건강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보험 상품과 연계하는 전략을 펼쳤다. 류 실장은 “중국평안보험은 지난해 신규 고객 중 35%를 비금융 플랫폼을 통해 확보했다”며 “건강 관리 서비스가 보험 상품 추천으로 이어지는 소통 창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도 비금융 연계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DBS는 여행·모빌리티·이동통신 등의 시장과 연계해 금융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류 실장은 “DBS가 싱가포르에서 여러 온라인 시장들을 이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했다”며 “은행이 한국의 네이버와 비슷한 역할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일본 미즈호은행도 헬스케어와 보험 영업을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AI 기술 만큼 디지털 우선 사고방식 중요”
6월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에서 한경미디어그룹과 INF컨설팅 주최로 ‘산업플랫폼 혁신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주요 기업 경영진 등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오전 행사에 참석한 청중들이 전우종 SK증권 대표의 강연을 듣고 있다. 김기남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이날 포럼에선 금융업계의 AI 도입에 대한 전문가 제언도 나왔다. 오순영 KB국민은행 금융AI센터장은 ‘금융과 AI 기술 간의 성공 방정식’을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오 센터장은 “앞으로 금융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데이터와 AI가 될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금융 기업들이 생성 AI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업의 디지털 전환(DX)에서 AI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가 됐다는 얘기다.

오 센터장은 오픈AI의 생성 AI 서비스인 ‘챗GPT’의 유행이 금융업계의 기술 장벽을 무너뜨릴 기회가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사업에 도입하기엔 복잡했던 AI 운용법이 챗GPT의 등장으로 간소화돼서다. 오 센터장은 “지금은 누구나 챗GPT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 전문가가 AI 분야의 물결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이제 금융사들은 기술 그 자체보다 생성 AI 기술로 어떠한 서비스를 개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디지털 우선 사고방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금융업계가 기술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서도 디지털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문제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하는 게 디지털 우선 사고방식”이라며 “기업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와 앞으로 필요하게 될 데이터가 무엇인지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AI 도구의 표준화 여부, 직원들의 디지털 이해도 정도가 금융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AI 기술 도입에 앞서 금융업계가 고려해야 할 불안 요소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오 센터장은 생성 AI 서비스 도입에 따라 금융 사업자의 플랫폼의 운용 비용이 크게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생성 AI 서비스의 사업 모델이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 센터장은 생성 AI 기술이 급변해 이 기술을 도입한 금융 플랫폼의 안전성이 떨어지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결국 기술 도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I 거버넌스”라며 “업계 전반에서 AI와 관련된 거버넌스를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정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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