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만난 블링컨 “미중 관계 안정화 원해”… ‘디리스킹’ 첫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6월 1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 만난 미국 정부 최고위 인사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중 관계 안정화에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은 6월 18부터 19일까지 이틀 간의 일정을 통해 친강 중국 외교부장(장관)과 중국 외교라인 수장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그리고 시 주석을 차례로 만났다. 시 주석과의 만남은 회동 1시간여 전에야 확정 공지됐다.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첫 최고위급이자 5년 만의 미 국무장관의 방문이다. 이에 중국은 고위급 외교 채널 재개에는 호응했지만, 미국의 대중 강경 정책과 대만 문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암시했다. 하지만 양국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연내 대면 정상회담 가능성 또한 커졌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대화 물꼬 튼 미중, 관계 개선 성과 있을까
블링컨 장관은 6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약 35분간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모두 미중 양국의 격렬한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는 것은 ‘공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시 주석은 “두 강대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윈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며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있다”고 양국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미국도 중국을 존중해야 하며 정당한 권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블링컨 장관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양국이 책임감, 의무감을 갖고 양자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국은 중국의 제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중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사실상 중국 측과 갈등 요인을 만들지 않을 ‘책임과 의무’를 부각시킨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시 주석과의 회담 후 방중 협의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에 합의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등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음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이뤄졌다. 그러나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또 블링컨 장관은 "우리에 대항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핵전력 강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을 거론했다. 최근 미국은 중국을 첨단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배제한다는 인상이 강한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 대신 '디리스킹(de-risking·경제 및 무역의 대중국 의존 심화에 따른 위험을 제거)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군사력 고도화와 연결되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결코 방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중 관계 훈풍, 한국 기업들에도 호재 기대감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디리스킹과 디커플링 사이에는 심오한 차이가 있다"며 그 개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그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지난주 의회에서 증언했듯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하고 중국과의 모든 무역과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며 “미중 간의 건전하고 강한 경제 교류는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고 힘을 줘 말했다. ‘디커플링’이라는 용어가 암시하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 단절은 미국의 선택지가 아님을 재확인 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디리스킹’과 ‘다양화’를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의 기술이 미국을 적대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중요한 기술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회담에서 역시 미국의 국가 안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특정 표적 맞춤형 조치를 계속할 것임을 (중국 측에) 분명히 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매우 불투명한 핵무기 프로그램이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과 억압적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특정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취하고 있는 행동들, 이미 취한 행동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미국이 계속 취할 행동들은 국가 안보를 진전시키고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며, 그와 같은 기준으로 신중하게 재단되고 있다"며 "이것이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사이의)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교역과 투자는 계속하되, 전략적 경쟁 상대인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 안보를 약화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단절'을 계속한다는 데 단호한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에 따라 결국 디리스킹의 핵심은 ‘첨단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미중 간 군사력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인공지능(AI)과 정밀 무기 등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과 미국 동맹국들의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다만 이번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미중 관계의 훈풍이 국내 산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는 걸으면서 한국 또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서, 중국과의 긴장 관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에서 유예를 받은 한국 기업들의 유예기간 연장 등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향후 미중 양측은 경제는 물론 정무 차원의 대화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고 있고, 양국이 추진에 뜻을 같이한 친강 부장의 방미도 하반기 중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다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 대상인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바이든·시진핑 2차 대면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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