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폼페이 유물들은 종종 상식의 허를 찌른다. 2007년 고고학자들은 파피루스 종이 조각에서 숫자 75와 함께 ‘폼페이 복권(Sortes Pompeianae)’이라는 글귀를 찾아냈다. 또 다른 유적지에서 복권 추첨에 쓰여진 원구체가 그려진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실 복권과 여타 도박은 고대 로마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향락의 도시 폼페이가 예외였을 리 없다. 당시 로마 화폐로 1 세스테스티우스(sestertius)의 가치가 있었던 이 복권은 현재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로마 제국 초기 복권은 귀족층들의 전유물이었고 도박보다 경품 추첨 성격이 강했다. 사적으로 행해진 복권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같은 축제나 디너 파티의 흥을 돋웠다. 이들의 파티는 호스트의 부와 관대함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모든 참석자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려고 했으니 복권 당첨률은 당연히 100%였다. 파티장에 입장할 때 손님들은 티켓을 받았고 경품으로 은쟁반이나 식기류 같은 고급 물품이 주어졌다.
반면 국가가 직접 대중에게 복권 판매에 나선 기록도 나온다. 그 시초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저(기원전 27~14년)였다. 복권으로 마련된 기금은 로마 시 정비에 사용했고 당첨자에게는 검투사 경기 관람권·음식·옷·가축 등 다양한 상품이 주어졌다. 황제의 정치적 인기 상승과 국가 제정 개선을 도모한 ‘일타쌍피’의 묘안이었다.
물론 로마 제국이 복권의 발상지는 아니다.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에서도 유사한 행태의 놀이가 있었다. 기원전 7~11세기 사이에 쓰여진 중국의 ‘시경(詩經)’에도 나무를 뽑는 운수 게임(제비뽑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유서가 가장 깊은 듯하다.
실증 자료로 따져봐도 중국 한나라 시대의 전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권이다. 100개의 숫자 목록이 새겨져 있는 작은 대나무 전표들이 기원전 205년에서 187년 사이 만들어진 중국 창사 시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이 시기 만리장성 건조 자금의 일부도 복권으로 조달했다고 한다. 이 전표는 현재 후난성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로트(Lot), 혹은 운명의 춤
현대 사회의 복권은 영어로 로터리(Lottery)라고 부른다. 로터리의 어근을 거슬러 오르면 ‘로트(Lot)’라는 단어와 마주친다. 원래 로트는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 돌·뼈 등과 같은 작은 물체를 의미했다.
로트의 전형적인 사례가 동물의 뼈로 만든 주사위다. 주사위처럼 로트를 바닥에 던지거나 용기에서 뽑아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은 인류학적으로 꽤나 보편적이다. 운명이 이미 결정됐다는 의미로 “주사위는 던져졌다”곤 하는데, 이 표현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로트에 가장 근접한 우리말은 제비뽑기다. 제비는 여러 물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거기에 적힌 기호나 글에 따라 승부 또는 차례를 결정하는 방법 혹은 그것에 쓰이는 종이나 여타 물건을 가리킨다. 무속인들이 곡물·깃발·나무 패 등을 이용해 운과 미래를 엿보는 행위가 그 전형이다.
돌잡이에서 실·떡·붓·돈 등을 대상으로 하는 선택 또는 그것으로 아이의 장래와 직업을 예견하는 의례도 우리에게 익숙한 로트 혹은 제비뽑기다. 물론 세태가 변한 요즘, 카메라·청진기·마이크·공 등을 놓는다고 한다.
로트는 17개의 상이한 뜻을 지닌 단어지만 우연·운명 그리고 할당된 분량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중추를 이룬다. 이 세 가지 의미를 합하면 ‘우연과 운명이 결정해 준 지분’이 된다. 이렇게 결정된 지분이 당신의 얼굴이나 성별일 수도, 재능이나 직업일 수도, 부모나 국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연과 운은 신이 주관하는 ‘업무’다. 그 결과는 거스를 수 없으므로 복잡한 인간사를 로트, 즉 신의 뜻에 의지해 온 인류의 선택은 일면 합리적이기도 하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로트가 인간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명은 인간을 넘어 우주 만물을 포괄하며 그 운명의 불규칙한 춤은 신들에게도 적용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크로누스와 레아의 통치를 전복한 세 형제는 로트를 통해 지배 영역을 결정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 세계를 뽑았다. 추첨은 눈먼 선지자 티레시아스의 주관하에 신들의 고향 올림푸스 산에서 열렸고 그 결과는 최종적이었다. 운명이야말로 신들 위에 군림하는 신이라는 매혹적인 이야기다.
로또 (Lotto), 르네상스 세속주의와 만나다
복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작위 추첨 또는 선택을 통해 티켓이나 숫자를 구매한 참여자에게 상금을 제공하는 우연의 게임이다. 이런 복권의 구체적 틀은 대략 15세기께 갖춰졌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베니스 등지에서 시작된 로또(Lotto)가 그 출발점이다.
운명을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 로또가 복권의 한 이름으로 사용됐지만 그 후에는 로또가 복권 전체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전환됐다(참고로 2002년 시작된 한국의 복권 로또도 여기에서 따왔다). 바뀐 것은 명칭만이 아니었다. 신과 운명의 영역이었던 로트(Lot)가 국가·정부가 주관하는 도박으로 세속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15세기 중반 만개한 르네상스의 기운은 중세의 금욕과 신성 질서를 교란했다. 이런 꿈틀거림을 잘 포착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사랑과 배반, 도박과 복권 등 세속의 풍경이 가득하다.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올랜도 퓨리오소’에는 주인공 제르비노가 복권에 당첨돼 열광하는 장면도 나온다.
물욕으로 팽만해진 피렌체·베니스·밀라노에서는 여러 형태의 도박과 복권이 성행했다. 가톨릭 교회의 통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만큼 로또 추첨은 광장이나 시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다.
1530년 투스카니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2만 두카트(Ducat)라는 큰 금액의 로또 추첨을 참관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복권 추첨은 저자거리의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대규모 행사로 수일간 지속되기도 했다.
<그림1>
로또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곳은 이탈리아 북서부 제노아였다. 흥미롭게도 제노아의 로또(Lotto di Genoa)는 행정가를 선출하는 정치 제도이자 그 결과에 대한 투기적 복권의 합성물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6개월마다 행정 후보자 90명 중 5명을 추첨으로 뽑았는데 시민들이 당첨될 만한 원로회 의원 이름에 베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로또를 세메나이우(semenaiu)라고 불렀다. 정치와 도박의 결합에 ‘맛들인’ 시민들은 1년에 두 번 오는 베팅 기회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직 후보자 이름과 무관한 단순 숫자 추첨이 등장했고 그 빈도와 추첨 방식이 현대사회 로또에 근접했다.로또, 파우스트의 거래가 되다
비슷한 시기, 개신교 영향권 하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역시 로또와 여타 머니 게임에 개방적 태도를 견지했다. 무역상들의 자유주의 성향이 반영된 지역 의회와 권력 기관은 금기와 통제보다 제도적 개입을 통한 도박 양성화에 나섰다.
이탈리아보다 이른 1434년 네덜란드의 슬루이스(Sluis)에서 공개 복권 행사가 실시됐다는 기록이 제시하듯이 이들은 근대적 형태의 로또, 즉 ‘국가가 관장하는 도박’의 선두 주자였다. 대신 제도적 도박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자선 구호와 공공사업을 벌이는 일종의 ‘파우스트의 거래(Faustian Bargain)’에도 성공적이었다.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기독교 윤리의 배합을 통해 로또에 대한 현세적이고 실용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로또 수익금을 군사와 정치적 용도로 이용할 때 네덜란드와 벨기에 도시들은 경제와 복지에 투자했다. 전자가 성벽 강화, 군비 증강에 주력할 동안 후자는 병원과 학교 신축, 공공 수로 사업과 빈민 구제에 주력했다.
공공기금으로 사용될 국가의 안정적 수입원으로써 로또는 이렇게 길들여지고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그 관록 때문일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복권의 소유·관리자도 네덜란드 정부다. 이름은 일반 복권(Generaliteitsloterij)에서 국영 복권(Staatsloterij)으로 변했지만 1726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되는 세계 최장수 복권이다.
환경 정의를 목표로 한 포스트코드 복권을 세계 최초로 출범시킨 것도 네덜란드 정부다. 세속적 욕망을 인정하되 그 에너지를 공공선으로 전환시킨 ‘로또 선진국’의 진취성과 노련함이 부럽기만 하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사실 복권과 여타 도박은 고대 로마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향락의 도시 폼페이가 예외였을 리 없다. 당시 로마 화폐로 1 세스테스티우스(sestertius)의 가치가 있었던 이 복권은 현재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로마 제국 초기 복권은 귀족층들의 전유물이었고 도박보다 경품 추첨 성격이 강했다. 사적으로 행해진 복권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같은 축제나 디너 파티의 흥을 돋웠다. 이들의 파티는 호스트의 부와 관대함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모든 참석자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려고 했으니 복권 당첨률은 당연히 100%였다. 파티장에 입장할 때 손님들은 티켓을 받았고 경품으로 은쟁반이나 식기류 같은 고급 물품이 주어졌다.
반면 국가가 직접 대중에게 복권 판매에 나선 기록도 나온다. 그 시초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저(기원전 27~14년)였다. 복권으로 마련된 기금은 로마 시 정비에 사용했고 당첨자에게는 검투사 경기 관람권·음식·옷·가축 등 다양한 상품이 주어졌다. 황제의 정치적 인기 상승과 국가 제정 개선을 도모한 ‘일타쌍피’의 묘안이었다.
물론 로마 제국이 복권의 발상지는 아니다.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에서도 유사한 행태의 놀이가 있었다. 기원전 7~11세기 사이에 쓰여진 중국의 ‘시경(詩經)’에도 나무를 뽑는 운수 게임(제비뽑기)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유서가 가장 깊은 듯하다.
실증 자료로 따져봐도 중국 한나라 시대의 전표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권이다. 100개의 숫자 목록이 새겨져 있는 작은 대나무 전표들이 기원전 205년에서 187년 사이 만들어진 중국 창사 시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이 시기 만리장성 건조 자금의 일부도 복권으로 조달했다고 한다. 이 전표는 현재 후난성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로트(Lot), 혹은 운명의 춤
현대 사회의 복권은 영어로 로터리(Lottery)라고 부른다. 로터리의 어근을 거슬러 오르면 ‘로트(Lot)’라는 단어와 마주친다. 원래 로트는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 돌·뼈 등과 같은 작은 물체를 의미했다.
로트의 전형적인 사례가 동물의 뼈로 만든 주사위다. 주사위처럼 로트를 바닥에 던지거나 용기에서 뽑아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은 인류학적으로 꽤나 보편적이다. 운명이 이미 결정됐다는 의미로 “주사위는 던져졌다”곤 하는데, 이 표현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로트에 가장 근접한 우리말은 제비뽑기다. 제비는 여러 물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거기에 적힌 기호나 글에 따라 승부 또는 차례를 결정하는 방법 혹은 그것에 쓰이는 종이나 여타 물건을 가리킨다. 무속인들이 곡물·깃발·나무 패 등을 이용해 운과 미래를 엿보는 행위가 그 전형이다.
돌잡이에서 실·떡·붓·돈 등을 대상으로 하는 선택 또는 그것으로 아이의 장래와 직업을 예견하는 의례도 우리에게 익숙한 로트 혹은 제비뽑기다. 물론 세태가 변한 요즘, 카메라·청진기·마이크·공 등을 놓는다고 한다.
로트는 17개의 상이한 뜻을 지닌 단어지만 우연·운명 그리고 할당된 분량이라는 세 가지 의미가 중추를 이룬다. 이 세 가지 의미를 합하면 ‘우연과 운명이 결정해 준 지분’이 된다. 이렇게 결정된 지분이 당신의 얼굴이나 성별일 수도, 재능이나 직업일 수도, 부모나 국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연과 운은 신이 주관하는 ‘업무’다. 그 결과는 거스를 수 없으므로 복잡한 인간사를 로트, 즉 신의 뜻에 의지해 온 인류의 선택은 일면 합리적이기도 하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로트가 인간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명은 인간을 넘어 우주 만물을 포괄하며 그 운명의 불규칙한 춤은 신들에게도 적용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크로누스와 레아의 통치를 전복한 세 형제는 로트를 통해 지배 영역을 결정했다. 제우스는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는 지하 세계를 뽑았다. 추첨은 눈먼 선지자 티레시아스의 주관하에 신들의 고향 올림푸스 산에서 열렸고 그 결과는 최종적이었다. 운명이야말로 신들 위에 군림하는 신이라는 매혹적인 이야기다.
로또 (Lotto), 르네상스 세속주의와 만나다
복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작위 추첨 또는 선택을 통해 티켓이나 숫자를 구매한 참여자에게 상금을 제공하는 우연의 게임이다. 이런 복권의 구체적 틀은 대략 15세기께 갖춰졌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베니스 등지에서 시작된 로또(Lotto)가 그 출발점이다.
운명을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 로또가 복권의 한 이름으로 사용됐지만 그 후에는 로또가 복권 전체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전환됐다(참고로 2002년 시작된 한국의 복권 로또도 여기에서 따왔다). 바뀐 것은 명칭만이 아니었다. 신과 운명의 영역이었던 로트(Lot)가 국가·정부가 주관하는 도박으로 세속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15세기 중반 만개한 르네상스의 기운은 중세의 금욕과 신성 질서를 교란했다. 이런 꿈틀거림을 잘 포착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사랑과 배반, 도박과 복권 등 세속의 풍경이 가득하다. 아리오스토의 서사시 ‘올랜도 퓨리오소’에는 주인공 제르비노가 복권에 당첨돼 열광하는 장면도 나온다.
물욕으로 팽만해진 피렌체·베니스·밀라노에서는 여러 형태의 도박과 복권이 성행했다. 가톨릭 교회의 통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만큼 로또 추첨은 광장이나 시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다.
1530년 투스카니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2만 두카트(Ducat)라는 큰 금액의 로또 추첨을 참관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복권 추첨은 저자거리의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대규모 행사로 수일간 지속되기도 했다.
<그림1>
로또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곳은 이탈리아 북서부 제노아였다. 흥미롭게도 제노아의 로또(Lotto di Genoa)는 행정가를 선출하는 정치 제도이자 그 결과에 대한 투기적 복권의 합성물이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6개월마다 행정 후보자 90명 중 5명을 추첨으로 뽑았는데 시민들이 당첨될 만한 원로회 의원 이름에 베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로또를 세메나이우(semenaiu)라고 불렀다. 정치와 도박의 결합에 ‘맛들인’ 시민들은 1년에 두 번 오는 베팅 기회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직 후보자 이름과 무관한 단순 숫자 추첨이 등장했고 그 빈도와 추첨 방식이 현대사회 로또에 근접했다.로또, 파우스트의 거래가 되다
비슷한 시기, 개신교 영향권 하에 있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역시 로또와 여타 머니 게임에 개방적 태도를 견지했다. 무역상들의 자유주의 성향이 반영된 지역 의회와 권력 기관은 금기와 통제보다 제도적 개입을 통한 도박 양성화에 나섰다.
이탈리아보다 이른 1434년 네덜란드의 슬루이스(Sluis)에서 공개 복권 행사가 실시됐다는 기록이 제시하듯이 이들은 근대적 형태의 로또, 즉 ‘국가가 관장하는 도박’의 선두 주자였다. 대신 제도적 도박으로 조성된 기금으로 자선 구호와 공공사업을 벌이는 일종의 ‘파우스트의 거래(Faustian Bargain)’에도 성공적이었다.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기독교 윤리의 배합을 통해 로또에 대한 현세적이고 실용적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로또 수익금을 군사와 정치적 용도로 이용할 때 네덜란드와 벨기에 도시들은 경제와 복지에 투자했다. 전자가 성벽 강화, 군비 증강에 주력할 동안 후자는 병원과 학교 신축, 공공 수로 사업과 빈민 구제에 주력했다.
공공기금으로 사용될 국가의 안정적 수입원으로써 로또는 이렇게 길들여지고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그 관록 때문일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복권의 소유·관리자도 네덜란드 정부다. 이름은 일반 복권(Generaliteitsloterij)에서 국영 복권(Staatsloterij)으로 변했지만 1726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되는 세계 최장수 복권이다.
환경 정의를 목표로 한 포스트코드 복권을 세계 최초로 출범시킨 것도 네덜란드 정부다. 세속적 욕망을 인정하되 그 에너지를 공공선으로 전환시킨 ‘로또 선진국’의 진취성과 노련함이 부럽기만 하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