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센터장의 편지 “피고 지는 꽃 아닌 변함없는 산 되기를” [2023 상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2023 상반기 베스트 증권사 & 애널리스트]

참 쉽지 않은 직업입니다. 새벽에 출근하고 어떤 때는 주말에도 책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매도 리포트를 쓰지 않는다고 욕먹고 매도 리포트를 쓰면 주주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유튜브도 해야 하고 방송에도 나가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도 받아 줘야 하는 직업입니다.

재야의 고수들은 왜 이리 많은지, 이제는 경쟁자가 누구인지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경쟁 구도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재야의 고수들은 나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됩니다. 물론 예상이 틀려도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컴플라이언스, 금융 당국의 규제, 회사와 리서치센터의 방침까지 다 맞춰 가며 의견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선망의 직업이었지만 애널리스트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애널리스트가 없는 주식 시장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발굴하는 개척자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복잡한 길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 역할도 합니다. 그들은 숫자로 말하지만 이면을 찾아내는 인사이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변화와 시련의 시기, 현장에서 뛰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위해 한경비즈니스는 선배인 리서치센터장들에게 편지를 받아 싣습니다.(편집자주)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돌이켜보면 자본 시장에서 매순간 힘들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애널리스트는 매일 무엇인가를 써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학습뿐입니다. 업황이 좋지 않을 때, 시장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잠시 글을 접고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섹터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세요. 가장 훌륭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금융 시장에서 핵심 브레인이라는 자긍심에 걸맞은 직업 윤리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함양하며 솔선수범해 시장 질서를 지키고 고객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자국 편향(home bias)에서 벗어나 글로벌 관점을 기르고 언어·분석 능력 등을 금융 선진국 투자은행(IB) 수준에 달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 섹터에만 매몰되기보다 매크로·주변 섹터 등과 융합·입체적 시야를 가질 필요도 있겠지요. 시장과의 공감 능력도 중요합니다. 학술 연구소가 아닌 셀사이드 리서치, 따라서 시장 심리·다이내믹스를 이해하는 한편 투자자들과의 소통 능력도 중요합니다. 새로운 도전도 하십시오. 애널리스트 경험을 기반으로 보다 생산적 직종으로 업그레이드해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저는 22년간 애널리스트로서 후회없이 살아왔지만 후배 애널리스트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패시브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부상과 액티브 펀드 시장의 위축, 법인 영업의 침체 등으로 애널리스트업계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소신 있는 보고서를 쓰고도 저항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여러 분들이 추정한 실적과 작성한 논리를 기반으로 한국 주식 시장이 움직인다는 자부심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1999년 여의도에서 애널리스트를 시작한 후 벌써 24년이 됐습니다. 여전히 후배들과 같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세미나를 하고 있지만 과거보다 애널리스트 업무 환경이 너무 열악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곳에서 우리의 글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투자자와 기업인들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산업 전문가로서 기업들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전달하고 투자 전략가로서 다양한 삼라만상을 설명하면서 우리만의 날카로움을 유지한다면 지금보다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애널리스트는 공명심보다 사명감, 돈보다 자긍심을 근간으로 숫자에 기반해 차별적인 통찰력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가장 빠르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아니면 깊이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제공하거나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충족해야 합니다. 스스로가 궁금해하는 리서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궁금해하는 리서치를 해야 합니다. 항상 시장과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홀세일 영업 환경의 장기간 부진이 표면적인 요인이지만 삶의 질과 컨디션을 중요시하는 시대의 변화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주요 컨설팅 회사들이 과거에는 산업을 접근할 때 증권사 리포트를 가장 먼저 참고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고 자료의 질적 성장보다 당장의 영업 지원을 우선시했던 업계의 풍토에 센터장 중 한 명으로 책임감도 느낍니다.

리서치센터가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산업 환경 전반에 영향을 주는 진정한 지식인 집단이 되는 날을 언제나 꿈꾸고 있습니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부심만큼은 갖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애널리스트입니다. 분석 자료가 음원처럼 가치를 인정받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증권업계에서 피고 지는 ‘꽃’이 아니라 변함없는 ‘산’이 되길 바랍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애널리스트 경력 20년, 센터장 경력 3년 차 센터장으로서 후배 애널리스트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 특히 주니어 애널리스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자료입니다. 애널리스트는 자료를 통해 시장과 소통하는 직업입니다. 자료가 있어야 고객에게 세미나도 할 수 있고 콜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료의 양적·질적 수준이야말로 애널리스트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기업 기업홍보(IR) 담당 임원들과 얘기해 보면 애널리스트들과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예전만큼 원활하지 않고 자료의 양적인 부분도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커버하고 있는 회사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빈도 높은 업데이트 자료를 통해 시장과 적극적인 소통이 애널리스트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만큼 자료의 양적·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쉽지 않은 환경에서 증권사 리서치라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후배 애널리스트 혹은 애널리스트를 꿈꾸고 있는 후배 연구원들을 응원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주지하다시피 셀사이드 리서치 업무의 매력도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졌습니다. 과거와 같은 명예도 찾기 힘들고 금전적 보상도 과거와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뉴 미디어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셀사이드 리서치 애널리스트 업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자의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이유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셀사이드 리서치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물론 얼토당토하지 않은 목소리로 구성된 다양성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야만 리서치의 존재 가치도 유지가 됩니다. 경험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이제 갓 데뷔한 애널리스트의 의견도 시장에 빠르게 전달되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매력은 다른 직종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울 겁니다. 후배 여러분, 여러분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의견이 한국의 자본 시장을 더 건강하게 효율적으로 만드는 원천입니다. 힘든 일을 하는 가운데 이러한 자부심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자그마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도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예전만큼 인기가 높지 않습니다. 금융업의 환경 변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라는 역할은 본질적으로 금융업의 기본이고 뼈대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변할 수 없고 영원합니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도 애널리스트가 볼 수 있는 인사이트는 대체할 수 없을 겁니다.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투자업계에서 애널리스트는 ‘육식 동물’과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의 성향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투자업계에서 활동하는 이상 육식 동물처럼 죽는 날 아침까지도 사냥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는 활동적이며 전문적이고 멋진 직업입니다. 항상 새로운 변화를 탐구하고 맡은 분야에 적용한다면 꽤 멋진 커리어를 갖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애널리스트는 지식 노동자입니다. 시장과 기업에 대한 통찰이 애널리스트의 경쟁력인데 요즘은 여러 면에서 도전이 많습니다. 정보가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전문가들이 가졌던 경쟁 우위가 희석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온갖 정보와 뉴스가 흘러 넘치고 제도권 밖의 전문가들도 많아졌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숫자가 30% 넘게 감소한 것은 이런 세태가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애널리스트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아의 전문가도 있지만 시장의 전문가도 있습니다. 자칭 재야의 고수들을 비롯해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증권사 리서치 자료들이 그들 판단의 근거가 되곤 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자본 시장에서 형성되는 담론의 최초 생산자들입니다. 또한 애널리스트들은 ‘통제 받는’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자본 시장은 돈이 걸린 포지션들이 경쟁하는 곳입니다. 돈과 관련된 조언은 공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언자 스스로가 특정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본 시장의 조언자에게는 엄격한 규제가 적용돼야 하는데 애널리스트의 의견은 이런 규칙에서 시장에 제시됩니다.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늘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때론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의견을 내는 전문가로서 감내해야 할 숙명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일은 한두 주 바짝 뛰고 메달의 색깔이 결정되는 올림픽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 경기가 열리는 야구의 페넌트 레이스와 비슷합니다. 늘 이길 수는 없고 평균적인 승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전주와 세종시에서 분투하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장후배 애널리스트에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리포트에 ‘혼’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리포트에 그 어렵다는 영혼을 갈아 넣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분명히 1년에 한두 번 아주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리포트를 쓰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넣고 고민하고 생각해 리포트를 한번 작성해 보기를 권합니다.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둘째, 주변 동료 애널리스트와 그리고 주변 관계자들과 잘 지내십시오. 애널리스트는 분명히 냉철한 판단을 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리포트와 세미나에서 그렇게 하면 됩니다. 평소 동료 애널과 친하게 지내고 주변 관계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당신을 위해 도와 주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입니다. 인생은 혼자서만 살 수는 없으니까요.

셋째,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지 마십시오. 선배 애널리스트로서 돌이켜 보면 가장 반성되는 부분입니다. 저 또한 한때는 스스로의 한계를 만든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깨닫게 됐습니다. 인생에서 한계를 남이 만들어 주지 않더군요. 우리가 만드는 한계 대부분은 스스로 만듭니다. 물론 살다보면 벅차고 어렵게 보이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의지보다 높은 것은 없습니다. 뜻을 세우고 하나하나 합시다. 위 내용은 지금도 제가 지키고 싶고 지키고자 하는 인생의 중요 덕목이기도 합니다. 한국 금융 시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A 리서치센터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핵심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애널리스트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무 제표라는 과거를 기반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현재 현상을 분석해 미래 산업과 기업과 자본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은 단순한 인기 투표나 누가 잘했다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본 시장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어느 순간부터 고되고 제약만 많을 뿐 타 직군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지는 직업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리포트에 반영하면서 자본 시장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직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늘도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무언가를 분석하고 있을 무명의 애널리스트들에게 지금의 어려움보다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해 자본 시장의 중요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에 감사와 응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