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복권 사기극들 : 로또 이야기 4 [최정봉의 대박몽]

요즘 로또 추첨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7월 8일 제1075회 1등이 모두 9명이 나왔는데 2등이 무려 160명이나 쏟아졌다. 직전 회차들에서 대략 60~90명의 2등이 나온 선례를 감안하면 극단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복권들의 판매 장소다. 김포시 A업소에서 25장, 같은 김포시 B업소에서 또 25장, 김포시와 인접한 강화군 C업소에서 25장, 같은 강화군 D업소에서 15장. 지리적으로 밀접한 4곳의 판매점에서 무려 90장의 2등이 나왔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매우 희소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기이한 추첨 결과는 또 있었다. 올해 3월 4일 1057회차 추첨에서는 물경 664건의 2등이 등장했다. 당첨된 664장 중 609장은 구매자들이 직접 수동으로 기입한 복권이라고 한다. 그중 103장이 동대문 소재 한 판매점에서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억시게’ 운 좋은 한 고객이 무려 100장의 2등 당첨 복권을 구매했다는 황당 실화. 흠….

증폭되는 의혹에 복권위원회와 동행복권은 진화에 나섰다. 생방송을 선보이면서 경찰과 일반인이 참관하는 추첨에 조작이 있을 수 없다며 언론전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한 과신이나 방심은 금물이다. 다른 나라의 선례들로 미뤄 보면 복권 조작은 언제든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 복권 조작 사례들
복권 조작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해 왔다. 2004년 시안 북서부 도시에서 스포츠 복권 조작 혐의로 관련 기관 공무원들을 포함한 12명이 검거됐다. 특정 복권이 1등에 당첨되도록 조작해 오던 일당이 공모자가 아닌 18세 남성에게 당첨 복권을 전달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

한편 2007년 랴오닝성 안산시의 복권 판매인 자오리췬 씨는 ‘3D’라는 복지 복권의 허점을 이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자오 씨는 당첨 번호가 발표된 후 5분 이내에 그 번호에 해당하는 복권을 구매할 수 있다는 빈틈을 발견했다. 또 당첨 복권을 두세 대의 기계에서 동시에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러한 방법으로 약 2800만 위안(약 53억원)을 전취한 그에게 법정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로이터는 정작 취약한 시스템과 허술한 관리는 젖혀 둔 채 맹점을 이용한 개인에게만 가혹한 처벌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일부 여론을 전했다.

규모나 수법 측면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복권 스캔들은 2015년 미국에서 발생한 핫 로또(Hot Lotto) 사건이다. 미국복권협회(MUSL)의 정보 보안 책임자였던 에디 팁튼(Eddie Tipton)이 범인이었기 때문이다.

보안 시설에 접근 권한을 지닌 팁튼 씨는 난수 생성 컴퓨터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악성 소프트웨어, 즉 루트킷(rootkit)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이 설정한 숫자가 특정 날짜에 추첨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해 뒀다. 이런 첨단 조작으로 팁튼 씨는 1430만 달러 (약 2000억원)의 상금을 사취했다.

그와 두 형제들은 이 사건 외에도 콜로라도·위스콘신·아이오와·캔자스·오클라호마 주 복권 추첨 조작에 가담한 것이 드러났다. 2005년부터 무려 10년간 발각되지 않고 벌인 행각이었다. 결국 핫 로또는 파산했고 2017년 로또 아메리카(Lotto America)로 대체됐다. 사건의 전말은 ‘악명 높은 복권 강탈(The Notorious Lottery Heist)’이라는 다큐멘터리로 2018년 제작됐다.

아날로그 복권 사기극

첨단 디지털 조작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중국 한나라에서부터 고대 로마까지 통용돼 온 ‘고전적’ 수법들이 여전히 쓰인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로또는 안대 쓴 아이들의 추첨으로 유명했는데 이후 마피아가 개입된 조작임이 밝혀져 더 큰 유명세를 얻었다. 범죄 일당은 추첨에 선발된 아동들을 미리 고지 받았고 이들을 매수해 특수 훈련을 시키는 수법을 썼다.

<사진1> 안대를 한 아이가 은색공을 추첨하는 밀란 복권 (출처: 유로밀리언스)


안대의 막을 얇게 만들어 그 틈으로 실눈 뜬 아이들이 추첨 대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특정 공에 광택을 내거나 냉동 혹은 가열해 다른 공들과 차별성을 확실히 해 뒀다. 이런 방식으로 9명의 일당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1억7400만 달러(약 2280억원)의 상금을 갈취했다. 2001년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친구’에도 유사한 추첨 장면이 등장한다.

생방송 복권쇼의 호스트가 주모자인 경우도 있었다. 1980년 펜실베이니아 복권 ‘트리플 식스 픽스(The Triple Six Fix)’는 매일 진행되는 TV 라이브 추첨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 닉 페리는 추첨을 감시하는 감독관 에드워드 플레벨(사진① 오른쪽)과 함께 대담하지만 엉성한 조작을 공모한다.

3개의 용기에 숫자가 적힌 탁구공 10개가 각각 들어 있고 각 용기에서 하나씩 공이 배출되면서 그날의 당첨 조합이 결정된다. 이들은 여타 공모자들과 함께 4번과 6번 공의 무게를 늘려 용기 속에 투입했고 그 결과 666이 그날의 당첨 번호가 됐다.

공모자들은 4와 6으로 가능한 8가지 조합 복권들을 미리 구매했는데 일반인들이 여러 문화적인 이유로 유독 이 두 숫자를 기피하고 따라서 그들의 당첨 배당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감안한 작전이었다. 일당 8명은 당시 118만 달러(현재 약 419만 달러, 약 55억원)를 챙겼다.

일당은 다수의 복권을 한 술집에서 공동 구매하는 어리숙함을 보였고 추첨 직전 진행자 페리가 이 술집에 전화를 건 사실도 밝혀지면서 꼬리가 밟혔다.

<사진2>1980년 4월 24일 펜실베니아 복권추첨 조작 당일 방송 캡쳐 화면 (AP)


조작과 비리 종합 세트, 루이지애나 복권 회사

1868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 의회는 찰스 하워드 소유의 복권 회사에 25년간 독점 운영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복권 운영이 금지된 상태였다. 하지만 우편을 통한 외지 복권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 회사는 전미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다. 지역 실세 및 의원들과 결탁된 이 회사는 연간 4만 달러의 자선 기부를 뺀 일체의 세금 면제 특권도 누렸다.

공정 이미지 구축을 위해 저명인사들을 복권 추첨에 동원했고 도서관·학교·교회·소방서 등을 지원하면서 공적 신뢰를 ‘매입’했다. 하지만 미판매 복권 전량을 추첨 호퍼(Hopper)에 투입해 회사 스스로가 최고 상금을 타는 등 편법과 농간을 일삼았다. 물론 대리인을 통해 상금을 회수했고 이사회는 그 노획물을 나눠 가졌다.

이렇게 수익률은 50%에 달했고 당시 금액으로 약 3000만 달러(약 390억원)라는 놀라운 연간 이익이 지속됐다. 그 돈은 정치계·법조계·언론계·금융계로 흘러 들어가 전방위적 뇌물 사슬을 형성했고 급기야 주정부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회사의 부패는 정점에 달했다. 몰락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된다.

회사는 1879년 사업권 연장 조항을 주 헌법에 추가하는 로비 과정에서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공여했는데 그 실상이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다. 찬성을 대가로 1만 달러(약 1500만원)를 수뢰한 의원들이 줄줄이 기소됐고 사건에 깊이 연루된 주 재무장관 에드워드 버크는 100만 달러의 주 정부 자금을 들고 온두라스로 도주했다.

우편을 통해 타 주(州) 노동자들의 돈을 쓸어 담는 루이지애나 복권회사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연방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삽화. 1890년 미국 매거진 Judge에 수록 (출처 위키완드)


전미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연방의회도 칼을 빼 들었다. 우편을 통한 복권 판매와 복권의 신문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우편을 통한 외지인 구매가 전체 복권 수익의 90%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회사는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복권 회사를 상대로 수년간 싸워 왔던 상원의원 머피 포스터가 1892년 새 주지사에 당선됐다. 예상대로 그는 1893년 12월 31일 이후 루이지애나에서 모든 복권 판매와 추첨을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시켰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복권 횡령·조작·부패 카르텔은 이렇게 사라졌다. 그 후 1965년 로드아일랜드 주에서 복권이 재개되기까지 무려 72년간 미국은 ‘복권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완벽한 보안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복권 관리와 추첨에 조작이나 편법이 개입될 소지는 다분하다. 예나 지금이나, 디지털이나 아날로그 방식이나, 외국이나 한국을 불문하고 말이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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