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애널리스트 50인과의 대화 “매도 리포트 발간 시 항의 빗발쳐…성숙한 투자 문화 조성돼야”

[2023 베스트 애널리스트]


‘메이드(made), 라이트 바이(write by).’

애널리스트는 이름을 거는 직업이다. 기업이나 조직의 이름에 숨을 수 없다. 필명을 내세우지 않는 한 자기 이름을 걸고 리포트를 낸다. 무형 자산이다. 머리·몸·감정까지 써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돈 버는 부서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위상은 전과 같지 않다. 달라진 위상에도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업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1990년대생 애널리스트다.

이들은 왜 애널리스트를 꿈꿨을까. 지금 그들이 바라는 변화는 무엇일까. 보고서 속 그들을 만나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1990년대생 애널리스트 50인의 이야기다.

(*애널리스트 보호 차원에서 이번만큼은 소속 기관과 이름을 가명으로 표기했다.) -애널리스트, 왜 좋았나요.1993A : 본인의 이름을 걸고 시장에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일이 멋져 보였어요.
1991 : 시장에서 제 의견을 인정받고 싶었죠.
1994 : 애널리스트가 꿈은 아니었어요. 리서치가 일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 조직이라고 판단했죠.
1997 :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1990 : 데이터를 다루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애널리스트는 둘 다 할 수 있어요.
1996A : 증권사 입사 후 선배 애널리스트 분들을 보면서 꿈을 갖게 됐어요. 모닝 미팅때 센터장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구체적인 근거와 논리로 답변하고 자신의 섹터와 커버 종목에 대한 투자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1996B : 하워드 막스의 ‘투자에 대한 생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투자 대가들처럼 자신만의 투자 철학과 전략을 확립해 그 아이디어를 남들에게 공유하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1993B : ‘작지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직업’이에요. 개인이 거대한 산업과 기업을 분석하고 시장에 목소리를 내 누군가의 투자 판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멋있고 보람찬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본인이 노력한 만큼 성과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요.-꿈꿔 온 직업, 기뻤던 순간은 있나요.1994A : 애널리스트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걸고 작성했던 보고서를 완성했던 그 순간.
1997 : 오 저도요.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두 달간 끝없이 고민해 가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글·차트·표·밸류에이션 등 하나하나 제 손길이 닿은 결과물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을 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1996 : 저는 그 보고서가 매체에 나올 때, 제 이름이 언급될 때 기뻤어요.
1995A : 그렇게 공들인 보고서에서 추천한 업종들이 예상대로 좋은 성과를 보이거나 제 보고서를 읽고 의견을 더 듣고 싶은 이들이 직접 연락할 때 얼마나 기쁘게요.
1995B : 맞아요. 첫 단독 세미나를 나갔을 때 잊을 수 없죠.
1993 : 투자자들이 제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도움이 됐다는 말을 할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1991 : 고민하던 논리가 완성되고 근거를 발견할 때 기뻐요. 유레카!
1994B : 역시 성적이죠.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이 제가 제공한 투자 아이디어를 통해 실제 수익까지 이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힘든 순간도 있었죠.1995A : 자료 일정과 세미나 일정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요.
1990 : 맞아요. 좋은 종목을 발굴했는데 바빠서 적시성있게 추천하지 못할 때 정말 아쉬워요.
1995B : 바쁜 일정이 겹쳐 잠을 못 자는 일이 반복될 때, 다양한 업무가 겹쳤을 때 체력적으로 버겁더라고요 ㅠㅠ
1994A : 야근, 야근, 야근이요!
1993B : 다양한 기업의 실적들과 예상하지 못한 스폿성 공시들이 한번에 쏟아질 때…제발 그만ㅠㅠ
1994B : 보고서를 작성하고 전망치와 다를 때 힘들어요. 제가 무얼 놓쳤나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1995C : 저도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해요.
1994B :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A사에 B섹터 담당 애널이 누구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요. 정말 좌절했습니다.
1993C : 업황 부진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매력적인 스토리가 보이지 않을 때요. 답답합니다.
1993D : 공감해요. 사이클 산업을 담당하는데 다운사이클인 지금 시장의 관심도 적어지고 점점 사양 산업이 되는 것 같아 슬픕니다.
1992 : 아직은 힘듦을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단호). -가장 큰 고민은 뭐예요.1996 : 정보기술(IT) 기업을 시작으로 최근 사기업까지 ‘주4.5일제 시행’을 비롯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환경이 개선되면서 여전히 근무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애널리스트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1994A :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습니다.
1997A : 결혼·출산·육아를 하면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애널리스트는 계약직이라 육아 휴직은 어려울 것 같아요. 주변에 아이가 없거나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 애널리스트가 다수여서 참고 사례도 없고요.
1995 :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 시장이 급변하고 있어요. 더 발빠르게 대응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을 느낍니다.
1994B : 리서치 업종의 시장 규모가 작아지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죠. 유튜브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등 증권사 리서치의 리포트 외에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증권사들의 주요 수익원인 법인 영업도 점차 침체되고 있어요.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 간 격차도 점차 커지고 있고요. 과연 제가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1997B : 공모 시장이 축소되는 추세도 한몫하죠.
1993 : 애널리스트 위상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진 것이 고민이에요. 역할이 무엇인지 회의도 들고요.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1994 : 기업의 자본·부채를 바탕으로 적정 가치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1990 : 데이터와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객관적인 분석으로요.
1996 :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많은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등장하고 있지만 해당 기업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시장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애널리스트의 전통적 역할은 변함이 없어요. 애널리스트는 건전한 자본 시장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991 : 과거와 역할이 달라진 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치열한 분석으로 의견을 도출해야 합니다.
1997 : 결국 의사 결정은 투자자의 몫입니다. 애널리스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제도권 내에서 어느 정도 공인된 목소리를 내 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 역할은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 :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뚝심 있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분석하고 판단한 내용을 시장에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나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해명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1993A : 늘 존재하는 공매도 결탁 음모론.
1993B : 외부 세력과 결탁한 적이 없습니다(단호).
1994 : 공감해요! 애널리스트가 특정 세력과 결탁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어이없고 억울합니다.
1990 : 제가 전달한 말의 앞뒤가 생략되거나 곡해돼 퍼질 때 해명하고 싶어요.
1995 : 매수 리포트 내고 창구로 매도 물량 던졌다고 욕먹을 때….
1996 : 기업의 펀더멘털이 훼손돼 불가피하게 목표 주가를 하향 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종목토론방·블로그 등에서 리포트가 매도 당할 때요.
1997 : 보고서를 올린 날 주가가 떨어지면가끔 네이버 종목토론방에 이름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분들이 있어요. 사람인지라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죠. -업계에 자정이 필요한 것이 있나요. 1993A : 리포트 전반의 퀄리티 향상이요.
1990 : ‘매수(buy)’ 중심의 의견을 제시하는 부분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2 :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매도 리포트를 내기 부담스러운 환경인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하지만 단기간에 변하긴 어렵다고도 생각합니다.
1994A : 매도 리포트 발간 시 항의가 빗발쳐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입니다. 물론 현재 한국의 공매도 제도에 문제점이 많아 투자자들의 의견에도 공감하지만 투자자들의 의식 성숙 없이 매도 리포트가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1997 : 저 역시 애널리스트 개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애널리스트의 솔직한 판단에 의한 투자 의견도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1993B : 보고서 유료화 부분은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1994B : 애널리스트의 범법 행위에 대한 기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위상을 제고할 방법은 있나요.1993A : 리포트의 퀄리티 향상이 우선 아닐까요.
1993B : 그러려면 애널리스트 본연의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은행(IB) 등 다른 분야에 대한 내부 지원이 많아지면서 업종과 기업을 분석하는 본연의 업무를 하기에 벅찬 경우가 있습니다.
1995A : 애널리스트들이 발간하는 보고서가 단순히 공개되는 참고용 자료가 아닌 지식재산권이라는 인식이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1997A : 대우를 더 잘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1994A : 애널리스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확실한 보상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1995B: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세요.
1994B: 리서치 조직의 이탈이 발생하는 이유는 과연 앞으로도 리서치 업종 자체가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보다 비용 부서로 인식되기 때문이겠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1992 : 리서치 어시스턴트(RA)부터 조직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근과 주말 출근 등 일하는 만큼 대우한다면 조직 이탈은 지금보다 줄어들 겁니다.
1997B : 비용 부서로 인식되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탈 지속은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업무 강도가 높은 직업이지만 처우 또는 인식마저 좋지 않다면 좋은 제의가 왔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죠. 리서치 능력을 기반으로 회사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든 직접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구조가 변화하든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해 보입니다. -앞으로 어떤 애널리스트를 꿈꾸나요.1995 : 투자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애널리스트가 되겠습니다.
1994A : 데이터와 논리로 이야기하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1994B : 실력과 전달력을 두루 갖춘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목표는 ‘베스트 애널리스트’입니다!
1997 : 정보의 홍수 속에서 ‘믿음이 가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산업 전문가의 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1993 : 신뢰받는 애널리스트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숫자를 기반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내용을 작성하며 오타와 같은 사소한 요인까지 챙기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신뢰가 쌓이게 되면 궁극적으로 제 보고서가 시장에 작지만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1996A : 적중률이 높은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1996B : 제 자료를 참고해 투자하는 분들이 최소한 손실을 보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높은 수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손실 한도 제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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