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팝업스토어 전략 통해 ‘신선함’ 유지
MZ세대 트렌드 ‘로코노미·디깅소비’에 맞춰 새로운 시도 적극적
백화점이 고루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힙한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들 회사가 본격적으로 젊은층의 트렌드를 좇는 전략을 강화한 것은 2021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21년 2월, 더현대 서울의 오픈이 기점이었다. 주요 명품 없이도 개점 1년 만에 매출 8000억원을 돌파한 더현대 서울은 직장인만 가득하던 여의도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불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백화점은 집객에 중점을 둔 일회성 매장 운영 등을 확대하며 MZ세대를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팝업의 성지’가 된 백화점몇 해 전까지만 해도 ‘팝업스토어’는 백화점들이 간간이 하는 이벤트성 공간이었다. 팝업스토어는 기간을 정해 두고 운영되는 일회성 매장으로, 그동안 고객들의 동선 등을 고려하지 않고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MZ세대 고객의 집객 효과가 입증되면서 유동 고객이 많은 핵심 장소에 팝업을 배치하는 등 백화점의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이다. 더현대 서울은 오픈 후 2년간(2021년 2월 26일~2023년 2월 26일) 321여 회의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행사장을 운영했다는 의미다. 올해는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유튜버 다나카, 트로트 가수 영탁, 레고 BTS 다이너마이트, 웹툰 ‘데못죽(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등의 팝업 행사를 열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의 팝업스토어는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슬램덩크’, ‘데못죽’ 등 마니아 층이 많은 주제는 지하 2층 ‘팝업 아이코닉’ 자리에 배치했다. 여의도역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의 연결 통로에서 백화점으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곳으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장소다. 성과도 좋다. ‘데못죽’ 팝업은 오픈 1주일 동안 1만여 명 이상 방문했고 오픈 후 13일간 매출 9억1000억원을 달성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MZ 고객 집객 효과를 높이려면 단순히 팝업 횟수를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색적이면서도 새롭다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올해도 MZ 고객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지는 콘텐츠들을 업종 불문하고 다양하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와 롯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을 ‘팝업 성지’로 만들기 위해 1층을 행사장 자리로 잡았다. 백화점의 얼굴이기도 한 1층 입구 일부를 팝업 공간 ‘더 스테이지’로 만들고 국내외 럭셔리 브랜드의 행사를 연다. 특히 강남점은 연매출 2조원을 돌파한 점포인 만큼 특성을 살려 샤넬·로저비비에·루이비통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협업해 단독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더 스테이지는 올해 2월부터 7월 9일까지 16번의 팝업 행사를 열었다. 하반기 팝업 계획도 완료된 상태다. 7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15번의 각기 다른 브랜드와 팝업존을 운영할 예정이고 연말까지 30여 개의 팝업 행사를 소개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 명품 장르 외에도 스포츠·주얼리 등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상품군의 팝업 행사를 선보이는 중”이라며 “MZ세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990 스티커즈 한정판 공개, 스티브 잡스의 운동화로 유명한 992 시리즈를 단독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의 타깃은 ‘잠실점’이다. MZ세대 고객들을 주요 타깃으로 대형 팝업을 진행하는 ‘아트리움’과 럭셔리 브랜드 팝업을 진행하는 ‘더 크라운’ 두 곳을 중심으로 투 트랙(MZ세대·럭셔리) 전략을 펼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년간 롯데월드몰 1층에 자리한 ‘아트리움’ 광장에서 30여 개의 팝업을 열었고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1만 명 이상이다. 특히 롯데백화점은 체험 콘텐츠를 강화했다. 지난 5월 운영한 테니스 팝업 ‘더 코트’는 게임존을 설치해 고객들이 직접 테니스를 쳐 볼 수 있게 했고 인증 샷 촬영 등의 미션을 수행하면 선물을 증정하며 20만 명의 방문객을 확보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기존 팝업은 백화점에 입점하지 않는 신규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최근에는 단순 상품 구매를 넘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잠실점의 두 팝업존을 중심으로 럭셔리 브랜드부터 트렌디한 이색 브랜드까지 롯데백화점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지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돈을 써도 힙한 곳에서”…백화점이 달라지는 이유또한 식음료(F&B) 매장을 팝업 형태로 운영하는 것도 백화점의 달라진 전략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얻는 ‘맛집’을 백화점에서 선보이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장 쉽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맛이 보장됐다는 점, MZ 고객들이 구매 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때문에 자동으로 홍보가 된다는 점 등이 F&B 팝업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7월 초부터 더현대서울 지하 1층에서 ‘브레디포스트’ 팝업을 진행하고 있다. 브레디포스트는 용산과 성수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프레즐 가게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얻어 ‘오픈런(영업 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행위)’이 있는 카페가 됐다.
올해 초 리뉴얼을 마친 목동점에서는 MZ세대의 니즈를 반영해 연남동 태국음식 맛집 ‘쌉(SSAP)’, 망원동 베이글 맛집 ‘브릭 베이글’ 등 다양한 F&B 브랜드를 선보였다. 그 결과, 리뉴얼 100일(3월 15일~6월 22일)간 방문 고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고 고객 연령대는 4.1세 낮아진 39.6세로 집계됐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강남점에서 떠 먹는 스콘 ‘파운드마켓’, 성수동 유명 제과점 ‘쿠키샾’, 부산 마카롱 맛집 ‘브로쓰마카롱’ 등 SNS에서 반응이 좋은 F&B 팝업스토어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점에서 푸딩 파이로 유명한 ‘더파이샵’, 강릉 유명 제과점 ‘마카모예 베이글바’, 성수동 핫 플레이스 ‘붕어유랑단’, 떡 맛집 ‘자이소’, 약수동 유명 제과점 ‘청킴제과’, 타르트 맛집 ‘브레드풀’ 등을 팝업 형태로 입점시켰다.
백화점이 팝업스토어를 강화하는 이유는 특정 현상이나 제품에 대해 쉽게 싫증을 느끼는 MZ세대 고객을 상대로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소유’가 아닌 ‘경험’에 초점을 맞춘 소비에 나서는 특징이 있다. 또한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된 ‘디깅 소비’, ‘로코노미’ 등과 맞닿아 있다.
‘덕후(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 활동이 비주류 문화에 속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핵심 소비층이 됐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팬슈머(팬+컨슈머의 합성어)’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이 만든 문화가 ‘디깅 소비’다. ‘파다(dig)’에서 파생된 단어로, 선호하는 영역을 깊게 탐구하고 소비하는 현상이다. MZ세대의 디깅 소비가 확산되자 백화점도 애니메이션·웹툰·아이돌 등 다양한 분야의 팝업스토어를 열고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로코노미는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로 특정 동네 또는 특정 지역에서 이뤄지는 소비 생활을 뜻한다. 지역 특산물뿐만 아니라 성수동에서 유명한 빵집, 제주도 맛집 등도 ‘로코노미’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정 지역의 음식 또는 제품을 소비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시장 조사 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로코노미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10명 중 8명이 로코노미 식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지역 특색이 반영된 점이 재미있어서’, ‘특별한 경험이어서’ 등이 가장 많았다. 로코노미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새로운 유통의 소비 트렌드가 되자 백화점도 팝업스토어 형태로 로코노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