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충돌…위기의 순간 [에코프로의 시간④]

[스페셜 리포트 : 에코프로의 시간]

올해 한국의 주식 시장은 에코프로가 지배했다. 연초만 해도 이 회사의 주가는 10만원대에 불과했다.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2007년부터 10여 년간은 1만원 박스권을 넘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황제주에 등극하기까지 에코프로의 26년사는 성장주의 치열한 생존 일기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논란과 숙제도 남겼다. <한경비즈니스>는 6회에 걸쳐 ‘에코프로의 시간’을 연재한다.
4월 첫 발간된 에코프로 매도 보고서.


< ③ 성장주 후보와 배터리 아저씨>에 이어서

지난 4월, 증권사에서 첫 매도 리포트가 나왔다. A증권사는 에코프로 종목이 현재 단기 과열됐다며 ‘매수’에서 ‘매도’로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했다. 해당 리포트는 “에코프로의 현 시가 총액은 5년 후 예상 기업 가치를 넘어섰다”며 “주가 추가 상승을 위해서는 당분간 중기 실적을 확인하는 상당한 기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당시 20조원에 가까운 에코프로의 시가 총액이 2027년 목표치인 11조8000억원을 이미 웃돌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잇달아 B사도 에코프로비엠의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에코프로비엠의 미래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주가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미래 이익을 반영해 당분간 이를 검증할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좋은 기업이지만 주가가 너무 올라 주식으로서는 매력이 없다’는 논리였다.

‘배터리 아저씨’ 박 전 이사는 여의도 애널리스트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며 리포트를 믿지 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특정 증권사를 공개 저격하며 이들의 추천 리포트에는 검은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매도’ 리포트에 대해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쓴 것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제도권(애널리스트)과 비제도권(유튜버 등 재야의 분석가)의 충돌이었다. 이는 한국 투자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다는 시각도 있다. 재야가 더 이상 재야가 아니고 제도권이 더 이상 제도권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애널리스트는 숫자로 이야기한다. ‘주가수익률(PER)’, ‘주가순자산배율(PBR)’이 그들의 리포트를 입증하는 증빙 자료다. 반면 성장주는 숫자와 상관없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테슬라도, 쿠팡도 PER과 주가에 괴리가 있었다. 기존의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주가를 설명하는 지표가 바로 꿈을 먹고 자라는 주식, ‘주가꿈비율(PDR : Price to Dream Ratio)’이다. PDR은 급등하는 종목을 설명하는 지표가 아닌 개념만 존재했다. 한국투자증권이 2020년 PDR의 구체적 산출 방식을 내놓았지만 특정 산업의 전체 시장 규모와 특정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예측 자체가 어려워 한계가 있다. 그 누구도 에코프로를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에코프로를 발굴한 이들 역시 증권가 애널리스트다.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유망주·추천주로 에코프로를 꼽았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는 리포트에 욕망이나 꿈, 투자자의 투자 심리를 반영할 수 없다. 숫자로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주가와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틈새로 제도권 밖 전문가들이 환영받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이다.)

국내외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가 발간되자 에코프로그룹의 주가는 한풀 꺾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매도 리포트가 처음 나온 4월 10~14일 개인 투자자들은 에코프로를 51만304주 순매수했다. 그전 2주(19만578주)의 2.7배 수준이다. 개미 투자자들이 ‘배터리 아저씨’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에코프로에 리스크도 터졌다. 이동채 전 에코프로 회장이 법정 구속되는 CEO 리스크였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5월 11일 항소심에서 이 전 회장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1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며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 대해 집행 유예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벌금 22억원을 선고했다.

에코프로 측은 즉각 전문 경영인 중심 경영을 내세우며 CEO 리스크 지우기에 나섰다. 당시 에코프로는 성명문을 통해 “2022년 3월 이동채 전 대표이사가 에코프로 대표직에서 사임한 이후 에코프로와 에코프로 가족사들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해 왔다”고 강조했다. 투자 심리는 위축됐다. 70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5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첩첩산중’, ‘위기’, ‘주의보’와 같은 단어가 에코프로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거품 우려보다 2차전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K-2차전지는 제2 반도체’라는 믿음을 가진 개인들이 에코프로 3형제를 사들였다. 에코프로 형제의 인기는 2017년 바이오주 열풍을 능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7년 바이오주 열풍이 한국을 강타했다. 바이오주 열풍을 타고 급등한 바이오 벤처 신라젠은 2016년 12월 6일 상장 이후 항암제 개발 호재로 1년 새 560% 넘게 급등하면서 시가 총액이 한때 10조원을 넘을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전 경영진의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상장 폐지 위기까지 겪는 등 수난을 겪었다. 당시 주주 피해도 극심했다.)

<⑤ 개미 대 공매도 왕관의 무게>에서 계속
<에코프로의 시간>

① ‘황제주’ 에코프로, 우연한 합작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526b
② ‘황제주’ 잭팟의 서막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5b
③ ‘성장주’ 후보와 배터리 아저씨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6b
④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충돌…위기의 순간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7b
⑤ ‘개미 대 공매도’ 왕관의 무게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46218b
⑥ ‘황제주’ 에코프로, 주가 결정 지을 3가지 키워드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307209702b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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