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한 예술가의 인생 속으로[서평]

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 39인의 예술가를 통해 본 미술과 클래식 이야기
김희경 지음│한경arte│1만8800원최근 시즌2를 예고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 게임〉에서는 456명의 사람들이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게임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비추며 울려 퍼지는 경쾌한 ‘쿵짝짝’ 3박자의 왈츠 음악.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으로, 잔인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과 모순되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2022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아버지인 진영기 부회장이 아들인 진성준을 배신하는 상황을 그의 아내인 모현민이 고야의〈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그림에 빗대 표현하며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매체 속에서 흐르던 좋은 음악, 시선을 끄는 인상적인 그림. 이렇듯 예술은 결코 멀고 낯선 존재가 아니라, 인식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일상 속에 늘 존재하고 흐르고 있다. 단순히 음악과 그림만 듣고 보았을 때의 강렬함도 인상적이지만, 그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삶과 철학을 함께 알고 본다면 같은 작품도 색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슈트라우스 2세는 유명 음악가인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와 견제로 인해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꽤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서야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곡이기도 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의 전쟁(1866년)에서 패하자 국민들의 상처와 불안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이처럼 그는 불안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의 복잡한 심정이 이 음악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해야만 하는 기묘한 상황, 참가자들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그럼에도 우승을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음악과 함께 더욱 간절하게 증폭된다.

이와 반대로 잘 나가던 궁정 화가였던 고야의 삶은 46살에 콜레라에 걸려 청력을 잃게 되면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던 그는 오히려 새로운 관점과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1808년 5월 3일〉을 비롯해 전쟁 등에 담긴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다수 그리기 시작했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는 고야가 말년에 귀가 안 들리는 증세가 악화되면서 점차 세상과 격리된 채 집에서 홀로 지내며 그린 작품으로,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길까 봐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 신을 그린 그림이다. 어느 날 고야에게 한 하인이 늘 어둡고 잔인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묻자, 고야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야만인이 되지 말자는 얘기를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

이처럼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과 철학, 감정이 녹아있다. 신간 《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가 에드워드 호퍼, ‘음악의 아버지’이자 ‘클래식의 시작이자 끝’이라 불리는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등 각양각색 개성을 가진 39명의 예술가들의 대표작과 그들의 일생에 관해 들려준다. 예술경영을 전공한 문화부 기자 출신이자 영화, 만화 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저자는 대중적인 예술가들을 주로 다루었던 전작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에 이어, 이번 책에서는 다양한 개성과 색깔을 가진 39명의 예술가의 삶과 작품 속으로 안내한다. 영화, 드라마, 광고, 책, 전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지만 그 진가를 몰라보았던 미술과 음악의 세계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39인의 예술가와 함께 울고 웃다보면 어느새 호퍼가 만들어낸 따뜻한 빛의 세계와 바흐의 음악으로 가득한 사막이 열릴 것이다.

윤혜림 한경BP 출판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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