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물질’ LK-99, 세계를 흔들다[노벨상일까 신기루일까]
입력 2023-08-04 06:30:01
수정 2023-08-04 06:30:01
[스페셜 리포트 : 노벨상일까, 신기루일까]
7월 22일 미국 시간 오전 7시 51분.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한국 연구진의 논문 하나가 등재됐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김지훈·권영완 연구진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논문이었다.
논문 제목은 ‘최초의 상온 상압 초전도체’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시각, 아카이브에 유사한 내용의 논문이 하나 더 게재됐다. ‘초전도체, 실온 및 대기압에서의 부상과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최초란 내용이 빠지고 저자가 일부 바뀐 논문은 내용 면에서는 동일했다. 이들은 납을 이용해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가진 물질을 만들었고 섭씨 영상 30도의 상온에서 전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섭씨 영하 200도의 극저온이나 초고압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던 기술이었다. 이석배·김지훈·김현탁·임성연·안수민·오근호 등 6명의 연구원이 등재된 이 논문에는 3시간 전 논문을 발표한 권영완 고려대 교수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이들은 이 물질에 ‘LK-99’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두 개의 논문
이 소식은 과학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상온 초전도체 기술이 상용화되면 전력 손실 없는 초고효율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다. 그간 전 세계 연구자들이 초전도체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성공 사례는 없었다. 과학계의 대표적인 숙원이자 ‘꿈의 물질’이었다. 만약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게 사실이라면 ‘에너지 혁명’에 비견될 사건이었다.
과학계는 빠르게 움직였다. 논문의 진위 여부를 토론하고 이를 실제 실험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즈음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초전도체’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려대에서 만든 초전도체 영상이래요.’
‘상온 1기압 초전도체 상용화되면 세상을 바꿀 정도 아녜요?’
‘상온·상압 초전도체 진짜예요??’
7월 26일부터 누리꾼들은 관련 소식을 퍼 날랐다. 초전도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해당 연구가 사실이라면 ‘노벨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는 트래픽 한도 초과로 접속이 차단됐다. 관련 ‘밈’도 쏟아졌다. ‘초전도체가 상용화된다면’을 가정한 미래의 이야기가 장난처럼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한국이 기후 변화를 멈추게 할 것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누리꾼들은 ‘꿈의 물질’을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 수 있다는 가정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논문 속 연구진도 전면에 등장했다. 7월 28일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는 ‘MML 2023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MML은 자성·비자성 금속 다층 및 이종 구조에 대해 연구하는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물리적 현상과 응용을 제공하는 금속·자기·초전도 이종 구조의 새로운 개발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심포지엄이다. 1993년 일본에서 시작돼 영국·캐나다·독일·미국·호주·스웨덴·스페인을 돌아 올해 11회 차를 맞아 한국에서 처음 열렸다.
이날 학회에서는 깜짝 발표가 진행됐다. 당초 예정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대한 발표가 마지막 세션에 열렸다. 6일 전 발표된 화제의 논문에 관심이 집중되자 세션이 추가된 것이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들의 관심은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쏠렸다. 세션에 참가한 A 씨는 “대부분 석학의 반응은 흥미로운 물질은 맞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아닌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석 위에서 둥둥 뜨게 하는 마이스너 효과가 있는데 그 현상이 구현되지 않았고 여러 측정 결과와 물성, 조성 분석 등 데이터가 부실해 상온·상압 초전도체 물질 발견은 아닌 것 같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했다.
논문 속 데이터가 부실하다는 의견에 연구진도 의견을 내놓았다. 연구진 중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근무했던 김현탁 박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LK-99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많은 것을 아는데 그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여러 실험실에서 재현 연구가 필요하다. 실험하려는 모든 팀을 돕겠다”고 말했다.
유사한 논문이 시간 차를 두고 두 개 게재된 것과 관련해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다른 저자들의 허락 없이 권 교수가 임의로 아카이브에 게재한 것”이라며 “아카이브에 내려 달라고 요청해 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즉, 권 교수가 연구진의 허락 없이 논문을 올린 이후 3시간 뒤 부랴부랴 이 대표를 비롯한 연구진이 다른 논문을 아카이브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의 연구진도 급하게 수정됐다. 이전까지는 이석배 대표를 비롯해 권영완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김지훈 연구원이 리서치 디렉터로 등재돼 있었지만 7월 29일에는 권영완 CTO의 내용이 삭제됐다. 이 자리에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테크니컬 어드바이저란 직책으로 들어갔다. ‘LK-99’을 둘러싸고 연구진 사이에서 ‘내부 갈등’ 의혹이 불거진 배경이다.
김지훈 연구원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LK-99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난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이 초전도체를 찾기 위한 연구 방법엔 비동의한다. 난 실험 재료를 섞고 가열하고 초전도체의 특성이 보이지 않으면 멈췄고 보이면 계속 진행했다. 이는 매우 지루한 과정이다. 난 20년간, 1000번의 실험을, 전 과정을 실험했다.”
연구에 대한 진위 여부, 연구진의 갈등에 대한 의혹 등이 소개되는 동안 한 곳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었다. 돈과 주식이다. 아직 미완의 발견임에도 기대감이 반영되며 관련주가 크게 출렁였다. LS전선·서남·모비스·원픽피앤이·고려제강·덕성·신성델타테크 등 초전도체 관련주들의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증과 상한가공방전은 계속됐다. ‘제2의 황우석’, ‘주가 사기꾼’ 등 논란이 가열됐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논문은 세부 사항이 부족해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마이클 노먼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원은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연구진이 사용한 재료 중) 납·인회석은 비전도성 광물이고 이는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망하지 않은’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반대의 의견도 나왔다. 7월 29일 메릴랜드대 연구소, 중국과학원 등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초전도체는 아니지만 측정 결과 논문과 일치하는 샘플 합성에 성공했다’ 등의 발표를 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진도 ‘LK-99’에 대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한 결과 상온 초전도체 구현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미국 에너지 산하 국립연구소로, 노벨 화학상·물리학상 논문을 다수 배출한 기관이다.
해외 연구 기관의 긍정적인 검토에 기대감은 치솟기 시작했다. 초전도체 관련주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일부 종목은 상한가를 기록하며 8월 2일 장중 변동성 완화 장치(VI)가 발동됐다. 증권가에선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며 투자 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과학계 난제였던 상온 초전도체의 구현은 아직 학계의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8월 2일 성명문을 내고 “두 편의 아카이브 논문을 통해 발표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논문과 영상의 물질은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라며 “현재 상황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정확히 판단하고 결과를 명확히 판단하기 위해 상온 초전도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원장은 서울대 김창영 교수로, 검증위원회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회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다수의 연구 기관들이 논문에 따른 재현·검증을 현재 진행 중이다.
인류의 희망일까, 섣부른 기대일까. ‘LK-99’의 검증에 학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스> ‘LK-99’ 못다 한 이야기 ①20년의 역사는.연구진은 LK-99의 탄생이 20여 년 동안 1000회 이상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라고 밝혔다. 20년간 1주일에 최소 1회는 실험에 매진한 것이다. 20년 전 이들은 고 최동식 교수의 연구 이론을 바탕으로 초전도체 연구에 매달렸다.
둘째 논문의 끝자락에는 ‘고 최동식 교수를 기립니다(We acknowledge late prof. chair tong-seek)’란 문장이 기재돼 있다.
LK-99이란 이름에서 유추할수 있듯이 이들의 연구는 당시 이석배(L) 교수와 대학원생 김지훈(K) 씨를 중심으로 1999년 시작됐다. 이들은 1990년대 고려대 화학과 최동식(1943~2017년) 명예교수가 주장한 이론을 바탕으로 20여 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했다. 최 교수는 ‘초전도 혁명의 이론적 체계(1994년)’라는 저서를 남기고 1990년대 초전도체에 관한 기존 BCS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체 연구의 바탕을 마련한 인물로 한국 초전도 이론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의 작고 이후 그의 후배들이 그의 연구 이론을 바탕으로 20여 년에 걸쳐 초전도체 물질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2008년 고려대 연구진이 모여 퀀텀에너지연구소를 창업했다. 2000번의 실험 끝에 나온 결과물이 지금 논문 속의 LK-99이다. ②왜 아카이브에 등재했나.아카이브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빠르게 공개하기 위한 곳으로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어 정확성·전문성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처음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출했지만 랑가 다이어스 로체스터대 교수 사태 때문에 네이처가 논문 게재를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학술지에 먼저 올려 한국 전문가의 검증을 받고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③다이어스 교수 사태는.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은 202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상온 섭씨 영상 15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는 100년 만에 ‘상온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고 밝힌 연구 논문이었다. 그해 사이언스지의 10대 과학 성과에 선정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022년 해당 논문은 국제 학술지에서 게재 철회 결정을 받았다. 실험 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의혹이 발견됐다는 것. 당시 영국의 네이처지는 “다이어스 교수가 2020년 발표한 상온 초전도 논문의 게재를 철회한다”고 2022년 9월 26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이 논문의 표 두 개에 나온 실험 데이터에서 비정상 신호를 빼면서 표준적이지 않고 자신들이 임의로 규정한 절차를 사용했다는 게 철회의 이유였다.
이석배 대표는 다이어스 교수 사태가 네이처지에 논문을 올리지 못한 주요 배경이라고 주장했다.④관련주는.8월 2일 증시는 ‘초전도체’의 날이었다. 특히 초전도체 테마가 형성되면서 수급이 초전도체 관련주로 옮겨 가자 2차전지·반도체 업종의 낙폭을 키웠다. 시장에서는 배터리와 반도체의 양강 속에 초전도체라는 더 큰 산업이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 코스피는 1.9% 코스닥지수는 3.18% 내렸지만 ‘초전도체 테마’로 분류된 종목들은 시장 분위기와 정반대로 일제히 급등세를 보였다. 서남·서원·파워로직스·신성델타테크 등은 상한가를 기록했고 비츠로테크(24.33%), 대창(18.41%), 인지디스플레(15.60%), 국일신동(12.48%), 고려제강, 덕성 등도 크게 올랐다.
초전도 전류 제한기 실증 시험장까지 갖춘 LS일렉트릭도 테마주에 분류된다. 이 기업은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초전도체를 활용해 전력 계통에 발생하는 고장 전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초전도 전류 제한기 실증 시험장 구축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위한 실증 시험을 시작했다. LS 관련주들도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일제히 빠진 이날 급등했다. LS전선아시아는 상한가(29.9%)를 기록했고 LS네트웍스(19%)와 LS일렉트릭(9.2%), LS전선(5.4%), LS(4.3%) 등 전 계열사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다만 일부 종목은 시장에서 상온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이고 있지만 상당수는 초전도체와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테마주에 묶인 대정화금은 이날 오전 가격 제한 폭에 근접한 28.22%까지 오르자 회사 측이 홈페이지를 통해 “초전도체와 관련해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구리 등을 포함한 거래 내역이 없다”고 밝힐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아직 학계의 검증이 필요한 만큼 ‘묻지 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다.⑤황우석 사태는.사람의 난자에서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으로 2005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당시)의 논문 조작 파문을 말한다.
당시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 전까지 황우석 열풍이 불 정도로 국민적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 국민적인 비난을 받게 되고 황우석 교수는 팬카페 아이러브 황우석 등을 중심으로 지지와 동정을 얻게 된다. 이후 네티즌은 ‘PD수첩’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해 이후 방송에서 ‘PD수첩’은 광고 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사태가 일어난다. 또한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 운동 붐이 일어 수많은 사람들이 난자 기증에 서명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일각에선 LK-99 또한 제2의 황우석 사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황우석 사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박도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7월 22일 미국 시간 오전 7시 51분.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한국 연구진의 논문 하나가 등재됐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김지훈·권영완 연구진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논문이었다.
논문 제목은 ‘최초의 상온 상압 초전도체’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시각, 아카이브에 유사한 내용의 논문이 하나 더 게재됐다. ‘초전도체, 실온 및 대기압에서의 부상과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최초란 내용이 빠지고 저자가 일부 바뀐 논문은 내용 면에서는 동일했다. 이들은 납을 이용해 상온에서도 초전도성을 가진 물질을 만들었고 섭씨 영상 30도의 상온에서 전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섭씨 영하 200도의 극저온이나 초고압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던 기술이었다. 이석배·김지훈·김현탁·임성연·안수민·오근호 등 6명의 연구원이 등재된 이 논문에는 3시간 전 논문을 발표한 권영완 고려대 교수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이들은 이 물질에 ‘LK-99’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두 개의 논문
이 소식은 과학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됐다. 상온 초전도체 기술이 상용화되면 전력 손실 없는 초고효율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다. 그간 전 세계 연구자들이 초전도체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성공 사례는 없었다. 과학계의 대표적인 숙원이자 ‘꿈의 물질’이었다. 만약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게 사실이라면 ‘에너지 혁명’에 비견될 사건이었다.
과학계는 빠르게 움직였다. 논문의 진위 여부를 토론하고 이를 실제 실험하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즈음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초전도체’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려대에서 만든 초전도체 영상이래요.’
‘상온 1기압 초전도체 상용화되면 세상을 바꿀 정도 아녜요?’
‘상온·상압 초전도체 진짜예요??’
7월 26일부터 누리꾼들은 관련 소식을 퍼 날랐다. 초전도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해당 연구가 사실이라면 ‘노벨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소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누리꾼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는 트래픽 한도 초과로 접속이 차단됐다. 관련 ‘밈’도 쏟아졌다. ‘초전도체가 상용화된다면’을 가정한 미래의 이야기가 장난처럼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한국이 기후 변화를 멈추게 할 것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누리꾼들은 ‘꿈의 물질’을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을 수 있다는 가정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논문 속 연구진도 전면에 등장했다. 7월 28일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는 ‘MML 2023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MML은 자성·비자성 금속 다층 및 이종 구조에 대해 연구하는 세계의 과학자들이 모여 새로운 물리적 현상과 응용을 제공하는 금속·자기·초전도 이종 구조의 새로운 개발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심포지엄이다. 1993년 일본에서 시작돼 영국·캐나다·독일·미국·호주·스웨덴·스페인을 돌아 올해 11회 차를 맞아 한국에서 처음 열렸다.
이날 학회에서는 깜짝 발표가 진행됐다. 당초 예정된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대한 발표가 마지막 세션에 열렸다. 6일 전 발표된 화제의 논문에 관심이 집중되자 세션이 추가된 것이다.
세계 유수의 석학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들의 관심은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상온·상압 초전도체에 쏠렸다. 세션에 참가한 A 씨는 “대부분 석학의 반응은 흥미로운 물질은 맞지만 상온·상압 초전도체는 아닌 것 같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석 위에서 둥둥 뜨게 하는 마이스너 효과가 있는데 그 현상이 구현되지 않았고 여러 측정 결과와 물성, 조성 분석 등 데이터가 부실해 상온·상압 초전도체 물질 발견은 아닌 것 같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내용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했다.
논문 속 데이터가 부실하다는 의견에 연구진도 의견을 내놓았다. 연구진 중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근무했던 김현탁 박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LK-99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많은 것을 아는데 그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여러 실험실에서 재현 연구가 필요하다. 실험하려는 모든 팀을 돕겠다”고 말했다.
유사한 논문이 시간 차를 두고 두 개 게재된 것과 관련해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다른 저자들의 허락 없이 권 교수가 임의로 아카이브에 게재한 것”이라며 “아카이브에 내려 달라고 요청해 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즉, 권 교수가 연구진의 허락 없이 논문을 올린 이후 3시간 뒤 부랴부랴 이 대표를 비롯한 연구진이 다른 논문을 아카이브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퀀텀에너지연구소 홈페이지의 연구진도 급하게 수정됐다. 이전까지는 이석배 대표를 비롯해 권영완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김지훈 연구원이 리서치 디렉터로 등재돼 있었지만 7월 29일에는 권영완 CTO의 내용이 삭제됐다. 이 자리에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가 테크니컬 어드바이저란 직책으로 들어갔다. ‘LK-99’을 둘러싸고 연구진 사이에서 ‘내부 갈등’ 의혹이 불거진 배경이다.
김지훈 연구원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LK-99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난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이 초전도체를 찾기 위한 연구 방법엔 비동의한다. 난 실험 재료를 섞고 가열하고 초전도체의 특성이 보이지 않으면 멈췄고 보이면 계속 진행했다. 이는 매우 지루한 과정이다. 난 20년간, 1000번의 실험을, 전 과정을 실험했다.”
연구에 대한 진위 여부, 연구진의 갈등에 대한 의혹 등이 소개되는 동안 한 곳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었다. 돈과 주식이다. 아직 미완의 발견임에도 기대감이 반영되며 관련주가 크게 출렁였다. LS전선·서남·모비스·원픽피앤이·고려제강·덕성·신성델타테크 등 초전도체 관련주들의 주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증과 상한가공방전은 계속됐다. ‘제2의 황우석’, ‘주가 사기꾼’ 등 논란이 가열됐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논문은 세부 사항이 부족해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마이클 노먼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연구원은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연구진이 사용한 재료 중) 납·인회석은 비전도성 광물이고 이는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망하지 않은’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반대의 의견도 나왔다. 7월 29일 메릴랜드대 연구소, 중국과학원 등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초전도체는 아니지만 측정 결과 논문과 일치하는 샘플 합성에 성공했다’ 등의 발표를 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진도 ‘LK-99’에 대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한 결과 상온 초전도체 구현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미국 에너지 산하 국립연구소로, 노벨 화학상·물리학상 논문을 다수 배출한 기관이다.
해외 연구 기관의 긍정적인 검토에 기대감은 치솟기 시작했다. 초전도체 관련주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일부 종목은 상한가를 기록하며 8월 2일 장중 변동성 완화 장치(VI)가 발동됐다. 증권가에선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며 투자 주의보가 울리고 있다.
과학계 난제였던 상온 초전도체의 구현은 아직 학계의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8월 2일 성명문을 내고 “두 편의 아카이브 논문을 통해 발표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논문과 영상의 물질은 상온 초전도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라며 “현재 상황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정확히 판단하고 결과를 명확히 판단하기 위해 상온 초전도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원장은 서울대 김창영 교수로, 검증위원회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회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다수의 연구 기관들이 논문에 따른 재현·검증을 현재 진행 중이다.
인류의 희망일까, 섣부른 기대일까. ‘LK-99’의 검증에 학계는 물론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스> ‘LK-99’ 못다 한 이야기 ①20년의 역사는.연구진은 LK-99의 탄생이 20여 년 동안 1000회 이상의 실험을 반복한 결과라고 밝혔다. 20년간 1주일에 최소 1회는 실험에 매진한 것이다. 20년 전 이들은 고 최동식 교수의 연구 이론을 바탕으로 초전도체 연구에 매달렸다.
둘째 논문의 끝자락에는 ‘고 최동식 교수를 기립니다(We acknowledge late prof. chair tong-seek)’란 문장이 기재돼 있다.
LK-99이란 이름에서 유추할수 있듯이 이들의 연구는 당시 이석배(L) 교수와 대학원생 김지훈(K) 씨를 중심으로 1999년 시작됐다. 이들은 1990년대 고려대 화학과 최동식(1943~2017년) 명예교수가 주장한 이론을 바탕으로 20여 년에 걸쳐 연구를 진행했다. 최 교수는 ‘초전도 혁명의 이론적 체계(1994년)’라는 저서를 남기고 1990년대 초전도체에 관한 기존 BCS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체 연구의 바탕을 마련한 인물로 한국 초전도 이론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최 교수의 작고 이후 그의 후배들이 그의 연구 이론을 바탕으로 20여 년에 걸쳐 초전도체 물질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2008년 고려대 연구진이 모여 퀀텀에너지연구소를 창업했다. 2000번의 실험 끝에 나온 결과물이 지금 논문 속의 LK-99이다. ②왜 아카이브에 등재했나.아카이브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빠르게 공개하기 위한 곳으로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어 정확성·전문성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처음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출했지만 랑가 다이어스 로체스터대 교수 사태 때문에 네이처가 논문 게재를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학술지에 먼저 올려 한국 전문가의 검증을 받고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③다이어스 교수 사태는.미국 로체스터대의 랑가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은 202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상온 섭씨 영상 15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이는 100년 만에 ‘상온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고 밝힌 연구 논문이었다. 그해 사이언스지의 10대 과학 성과에 선정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022년 해당 논문은 국제 학술지에서 게재 철회 결정을 받았다. 실험 자료를 임의로 수정한 의혹이 발견됐다는 것. 당시 영국의 네이처지는 “다이어스 교수가 2020년 발표한 상온 초전도 논문의 게재를 철회한다”고 2022년 9월 26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다이어스 교수 연구진이 논문의 표 두 개에 나온 실험 데이터에서 비정상 신호를 빼면서 표준적이지 않고 자신들이 임의로 규정한 절차를 사용했다는 게 철회의 이유였다.
이석배 대표는 다이어스 교수 사태가 네이처지에 논문을 올리지 못한 주요 배경이라고 주장했다.④관련주는.8월 2일 증시는 ‘초전도체’의 날이었다. 특히 초전도체 테마가 형성되면서 수급이 초전도체 관련주로 옮겨 가자 2차전지·반도체 업종의 낙폭을 키웠다. 시장에서는 배터리와 반도체의 양강 속에 초전도체라는 더 큰 산업이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 코스피는 1.9% 코스닥지수는 3.18% 내렸지만 ‘초전도체 테마’로 분류된 종목들은 시장 분위기와 정반대로 일제히 급등세를 보였다. 서남·서원·파워로직스·신성델타테크 등은 상한가를 기록했고 비츠로테크(24.33%), 대창(18.41%), 인지디스플레(15.60%), 국일신동(12.48%), 고려제강, 덕성 등도 크게 올랐다.
초전도 전류 제한기 실증 시험장까지 갖춘 LS일렉트릭도 테마주에 분류된다. 이 기업은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초전도체를 활용해 전력 계통에 발생하는 고장 전류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초전도 전류 제한기 실증 시험장 구축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위한 실증 시험을 시작했다. LS 관련주들도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일제히 빠진 이날 급등했다. LS전선아시아는 상한가(29.9%)를 기록했고 LS네트웍스(19%)와 LS일렉트릭(9.2%), LS전선(5.4%), LS(4.3%) 등 전 계열사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
다만 일부 종목은 시장에서 상온 초전도체 테마주로 묶이고 있지만 상당수는 초전도체와의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테마주에 묶인 대정화금은 이날 오전 가격 제한 폭에 근접한 28.22%까지 오르자 회사 측이 홈페이지를 통해 “초전도체와 관련해 퀀텀에너지연구소와 구리 등을 포함한 거래 내역이 없다”고 밝힐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아직 학계의 검증이 필요한 만큼 ‘묻지 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다.⑤황우석 사태는.사람의 난자에서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으로 2005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당시)의 논문 조작 파문을 말한다.
당시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 전까지 황우석 열풍이 불 정도로 국민적 신뢰가 있었다. 하지만 ‘PD수첩’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 국민적인 비난을 받게 되고 황우석 교수는 팬카페 아이러브 황우석 등을 중심으로 지지와 동정을 얻게 된다. 이후 네티즌은 ‘PD수첩’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해 이후 방송에서 ‘PD수첩’은 광고 없이 방송을 내보내는 사태가 일어난다. 또한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 운동 붐이 일어 수많은 사람들이 난자 기증에 서명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일각에선 LK-99 또한 제2의 황우석 사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황우석 사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박도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