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빨대’ 화성시가 온다

[비즈니스 포커스] ‘인구 빨대’ 화성시가 온다


새로운 ‘인구 빨대’ 도시가 탄생했다. 올 연말께 100만 인구 돌파를 앞두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화성시의 이미지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었다. 지금 화성시는 ‘성장’의 도시다. 삼성전자가 자리한 동탄신도시를 등에 업고 인근 지역의 인구를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 인구 증가율은 경기도 내 1위, 출생아 수는 전국 2위다. 화성시는 어떻게 100만 도시란 타이틀을 얻게 됐을까.

☞빨대효과 : 고속도로나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컵의 음료를 빨대로 빨아들이듯이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나 경제력을 흡수하는 이른바, 대도시 집중현상을 가리킨다. 군에서 특례시로경기도 화성시 인구가 올 연말쯤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 인구는 지난 7월 말 기준 98만7710명이다. 내국인 인구는 93만2000여 명이고 5만5000여 명은 외국인이다. 화성시는 동탄신도시 등 인구 유입 추이를 고려하면 올 연말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7월 이 도시의 인구는 94만5370명이었다.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특례시 지정 기준은 12월 말 기준 인구가 2년 연속 100만 명을 유지해야 한다. 화성시는 올해를 원년으로 2025년 특례시 출범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지난해 출범한 수원·용인·고양·창원에 이어 다섯째 특례시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화성시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특례시 출범에 맞춰 ‘미래 100년의 화성 시대’를 열겠다며 ‘100만 화성, 100년 화성 시대’의 미래 비전을 선포했다.

화성시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군’이었다. 2001년 군에서 시로 승격한 당시 인구 21만 명, 예산 규모 2500억원의 소도시였다. 하지만 시 승격 23년 만에 인구 100만 명, 재정 규모 4조원에 육박하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지역 내 총생산 전국 1위, 연간 수출 규모 경기도 내 1위 도시다.

화성시는 인근 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며 팽창하고 있다. 호갱노노가 순인구 이동을 분석한 결과 최근 1년 사이 1만9334가구가 화성시에 순전입했다. 인구 유출이 가장 컸던 곳은 근접한 수원시다. 3457가구가 화성시로 전입했다. 이어 안산시(2605가구), 용인시(2192가구), 오산시(937가구), 군포시(574가구), 안양시(556가구), 성남시(554가구) 등에서도 들어왔다. 비교적 거리가 먼 부천시(423가구)와 고양시(403가구)에서도 꽤나 많은 전입이 발생했다. 기간을 확대하면 인구 전입은 더 많아진다.

인근 지역의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경기도 내 입지도 달라졌다. ‘경기도 시군 순서 규정(훈령)’에서 31개 시군 중 화성시가 성남시를 넘어 수원시·용인시·고양시에 이어 4위로 올라섰다. 화성시는 2년 전 부천시를 제치고 5위로 올라선 뒤 올해 다시 한 단계 상승했다. 2년마다 전년도 12월 말 인구(외국인 포함) 기준으로 정하는 시군 순서는 법적으로 지자체의 서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종 공문서에서의 순번이나 지자체 간 의전 등에 활용돼 지자체의 상대적인 규모와 위상을 상징한다. 신도시의 역할변화의 중심은 동탄신도시다. 화성시 동측에 자리한 택지지구인 동탄신도시 1·2는 7월 기준 40만 인구의 거대 도시다. 화성시 내 인구수 1위이자 전체 인구의 40%가 넘는다. 현재까지는 동탄동이지만 향후 일반 구 승격 가능성이 있다. 일반 구로 승격한다면 분당구·덕양구·기흥구에 이은 전국에서 인구가 넷째로 많은 일반 구가 될 예정이다.

2001년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외곽에 중핵 역할을 하는 거점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명목으로 탄생한 동탄신도시는 단순 베드타운이 아닌 자족 도시로서의 콘셉트로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분당과 일산신도시에 이어 수도권에서는 셋째로 규모가 큰 알짜 주거 단지였지만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 성공을 보장하지 못했다. 화성신도시란 명칭 대신 화성을 지우고 동탄신도시가 된 연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바람을 타고 흉흉했던 이미지가 개선됐다. 외지인들이 잇달아 이주해 주민 구성이 바뀌고 치안 여건도 개선됐다.

자족 도시 콘셉트의 동탄신도시에는 대규모 업무지구와 산업 클러스터가 들어섰다.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관련 중소업체가 대거 입주하면서 이곳의 운명을 바꿨다. 동탄 거주자의 반이 삼성전자 직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 화성·기흥캠퍼스 이외에도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두산중공업 등 평균 연봉이 높은 대기업 사업장과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입주한 동탄테크노밸리, 10여 개의 일반 산업 단지까지 주변에 포진해 있어 소득 수준도 높다. 수원시·용인시·오산시의 인구가 화성으로 빠진 이유다.

인구도 젊다. 특히 동탄신도시의 30∼40대 인구 비율은 73%로 전국 평균(59.3%)보다 훨씬 높다. 이들의 자녀층에 해당하는 10세 이하 인구 비율(20%)은 전국 평균의 2배에 이른다.

동쪽에 동탄신도시가 있다면 서쪽에는 송산신도시가 있다. ‘송산그린시티’로 불리는 이곳은 신세계가 한국 최대 규모의 국제 테마파크를 조성하기로 한 곳이다. 5619만8347㎡(1700만 평)의 해양 관광 도시로 테마파크뿐만아니라 숙박, 쇼핑, 컨벤션센터, 웰니스 스파, 각종 레저 시설까지 포함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동측(생태·주거), 서측(관광·주거), 남측(첨단 산업)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이미 송산그린시티 동측지구인 새솔동은 개발을 일부 완료했다. 안산시의 인구 상당수가 이곳 새솔동으로 빨려들었다. 지난 3년간(2020~2023년) 5556가구가 안산시에서 화성시로 전입했는데 새솔동으로의 전입이 가장 많았다. 새솔동에서 다리만 건너면 안산 소재 시화공업단지가 있다 보니 테마파크 호재를 노린 이들의 전입이 많았다. 현재 새솔동 내 인구수만 2만5754명이다.

국제 테마파크 착공이 진행되면 인근 지역의 빨대 효과는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테마파크는 화성시 남양읍 신외리 송산그린시티 내 동측에 423만㎡ 규모로 조성되고 4조5000여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착공은 2024년 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1단계 개장, 2031년 그랜드 오픈이 목표였지만 1단계 개장과 그랜드 오픈도 2029년, 2034년으로 3년씩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화성시는 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약 1만50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연간 19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서측지구의 제조 단지도 탄탄하다. 전곡해양일반산업단지·향남제약일반산업단지·바이오밸리일반산업단지·마도지방산업단지·송산테크노파크일반산업단지 등 많은 산업 단지가 몰려 있다. 탄탄한 인프라
화성시의 가장 큰 경쟁력은 면적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구다. 개발 가능 면적만 844㎢로 서울시의 1.4배다. 경기도에서는 2위로, 서울시와 가까운 인근 지역 중 이처럼 개발되지 않은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행정구역은 4읍·9면·16동으로 여전히 읍과 면이 과반에 가깝다. 인근에 바다도 끼고 있다. 관광·제조업·주거가 함께 있는 도시다.

도농 복합 도시지만 젊은층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평균 연령 38.7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도시다. 전국의 평균 연령은 44.5세다. 출생아 수는 2022년 기준 전국 2위다. 인구가 많다 보니 재정도 탄탄하다. 재정 자립도는 경기도 내 1위다.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화성시의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2020년 기준 화성시의 지역총생산(GRDP)은 81조8802억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위다. 경기도 내 제조업체도 가장 많다. 2021년 기준 2만7607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기업이 많다 보니 고용률도 높다. 2022년 하반기 전체 고용률은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중 1위다. 무려 67.95%다.

성장 가능성도 높다. 한국 최대 규모의 화성 국제 테마파크 건설은 물론 서해안 관광 벨트 활성화 등이 예정돼 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화성시는 장래가 밝은 청년 도시로, 일할 기회가 넘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도시”라고 말했다.

정부가 2021년 발표한 3차 수도권 신규 공공 택지에는 화성시의 이름이 곳곳에 있다. 신도시 규모로 의왕·군포·안산(586만㎡, 4만1000가구)과 함께 화성진안(452만㎡, 2만9000가구)이 선정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들 지역을 수도권 서남부의 거점이 되는 자족 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동탄신도시 서북측에 연접한 화성진안은 북쪽에 수원영통 시가지와 가깝다. 동탄 인덕원선과 동탄트램이 지나가도록 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A노선(GTX-A) 동탄역 환승이 가능하다. 신분당선과 연계되는 대중 교통 축을 신설해 서울 도심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또한 수도권 중규모 택지로는 화성봉담3(1만7000가구)이 선정됐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서울과의 접근성이다. 베드타운으로 탄생했지만 동탄신도시나 송산그린시티 모두 서울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다.

지역 불균형도 남아 있다. 4읍·9면·16동으로 도농 복합 도시인 점은 지역 편차를 불러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을 가져 왔다. 땅이 너무 넓다 보니 동탄신도시 등 일부에만 화성시의 재원이 쏠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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