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도박 (上) [최정봉의 대박몽]

로또 이야기 8

교황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추앙받는 존재다. 반면 도박은 가장 통속적인 행위로 꼽힌다. 신성과 세속, 이 양극이 접속하는 지점에 이 글의 초점이 있다. 교황을 둘러싼 도박, 묵직한 주제인 만큼 3회로 나눠 다룬다.르네상스의 바이러스, 도박
1878년 3월 2일자 뉴욕타임스 기사의 일부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미신과 복권에 심취해 있다. 웬만한 사회적 사건은 모두 숫자 투기로 연결시킨다. 그중 교황의 죽음이나 새 교황의 선출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지난 2월 비오 9세(Pius IX)의 죽음을 맞아 애도 대신 도박 열기에 빠져 있다. 비오 9세의 생애와 연관된 인물들을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하며 복권에 거액을 쏟아붇고 있다.’

기자가 간과한 두 가지가 있다. 우선 기자가 미신이라고 지적한 내용은 실상 수비학(numerology) 전통에 해당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고유 숫자를 가진다는 것이 그 골자다. 예를 들어 나폴리 사람들은 죽음은 13, 섹스는 42, 소젖 모차렐라는 68, 버펄로 모차렐라의 고유 숫자는 12라고 규정한다. 이런 수리적 집착은 교황 선거에도 반영돼 선거일, 추기경 참석 인원 등을 맞히는 형태의 복권과 도박이 인기를 누렸다.

둘째, 새 교황 선출과 관련된 각종 도박은 19세기 후반의 현상만이 아니었다. 관련된 최초 기록은 1503년 9월이지만 역사가 바우가르트너는 이보다 훨씬 먼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 사례로 베네치아공화국이 1419년 선포한 교황 선종에 대한 투기 금지 법률을 언급한다.

당시 교황청에 대출해 준 금융업자들은 교황의 제삼자 생명보험을 들었다. 연로한 교황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황의 생명보험이지만 일반인 구매도 가능해지면서 갑자기 수요가 급증했다. 수요 급증에 따라 높은 가격에 보험 권리증이 매매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투기 대상으로 변질됐다.

보험 외에도 교황의 선종 연도 또는 날짜에 맞춰 상금을 내건 도박들도 등장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1435년)와 이탈리아 볼로냐(1467년)는 교황과 추기경을 대상으로 한 도박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금지령에 복권이 적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변종 도박들이 복권 형태로 활성화됐다.

투전 문화가 조롱한 것은 교회와 교황만이 아니었다. 전편 ‘로또 이야기 2’에서 언급했듯이 제노아공화국의 시민들은 행정위원 선출에 복권을 ‘무단 투척’함으로써 정치의 근엄성에 타격을 줬다. 이즈음 베니스에서도 총독 선거 결과에 대한 복권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 결과 시민들의 관심이 정치 대신 금전적 손익에만 쏠려 버렸다. 정치와 선거는 위축되고 복권 게임만 성행했다.

이렇듯 ‘천출’ 도박은 고상하고 신성하고 힘있는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섞였고 정면으로 결합했다. 결합을 통해 그것들의 순혈성을 손상했고 본질을 흐려 버렸다. 도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낳은 바스타드(bastard)였다.

바티칸에서 17명의 새 추기경을 임명하는 프란시스 교황. 사진=알자지라
첩보전과 돈의 흐름
존 헌트 네바다대 교수에 따르면 추기경(cardinals) 관련 복권은 16세기 로마시의 스테디셀러였다. 교황이 매년 연말 신임 추기경을 발표하기 때문에 교황 선출 베팅에 비해 안정성과 빠른 회전성이라는 장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중기 투기를 흥미진진한 ‘폴리테인먼트(정치적 엔터테인먼트)’로 전환시킨 동력은 넘쳐나는 정보들이었다. 출처 불명의 낭설과 기괴한 추측들도 난무했지만 뉴스레터가 등장하면서 신뢰감 있는 분석의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헌트 교수는 당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출간된 뉴스레터가 교황의 동선, 대인 접촉 기록, 각종 공식 발언과 함께 추기경 후보에 대한 인성·추문·재산 관계·세평도 꼼꼼히 수집해 제공했다며 “정보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황청 성직자들에게서 채집한 내밀한 정보에서부터 행정 관청 하인들의 수근거림 그리고 저자거리의 ‘뒷담화’까지 망라했다”고 강조했다.

또 중대 변수 발생시에는 아비소(avviso)라는 호외지도 배포했기 때문에 정보 수집 주체였던 센살리(Sensali)와 뉴스레터 편집자들의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센살리는 교황청 내 성직자, 경비대원, 각국 외교관들과 접촉해 최신 정보를 보유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과 펜에 따라 대규모 손바뀜과 포지션 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뉴스레터 등장 이전 센살리는 악명 높은 도박 브로커에 불과했다. 일례로 그들은 할당된 구역 내에서 임신한 여성들을 찾아냈고 그녀들의 출산 날짜와 신생아 성별로 베팅을 주선했다. 물론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 바꿔치기로 성별을 조작하는가 하면 신생아가 사망했다거나 자웅 동체(혹은 양성구유)라고 속이는 황당한 사례들도 있었다.

정보 생산의 또 다른 실력자는 ‘북메이커(bookmaker)’다. 복권업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더 많은 베팅 항목을 만든다. 예를 들어 임명될 추기경의 숫자와 명단 그리고 발표 날짜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복수 베팅도 허용했다. 이런 항목 세분화와 복잡성 때문에 주문과 거래의 정확한 기록이 난제로 떠올랐다.

도박업에 진출한 금융업자들은 이 난제를 전용 창구 개설과 기록 전담 주체인 북메이커 고용으로 응수했다. 창구에서 주문을 접수하는 북메이커는 가지각색의 선택과 금액을 명기해 체돌레(cedole)라는 쿠폰으로 발행했다.

북메이커들은 돈의 흐름을 직접 지켜보고 투기자들의 정서 상태까지 파악하는 고급 정보의 소지자다. 그리고 체돌레 쿠폰 기록은 집합적 투심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제하고 유도하는 기능을 지녔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카지노 슬롯머신에서 잭팟을 터트리고 파안대소. 자료=트위터
로마 투기의 꽃, 교황 선출
르네상스 시기 로마의 최고 관심사는 교황과 도박이었다. 자연히 가장 인기 있는 도박은 교황에 관련된 것이었다. 교황은 매우 가변성이 큰 직위다. 교황의 건강과 복잡한 대외 정치 변수는 불안정성을 증폭시켰고 이런 불안정과 불확정성이야말로 도박의 시작이고 끝이다.

교황과 관련된 수많은 투기들 중 ‘교황 선출 베팅(scommesse a fare il papa)’이 으뜸이었다. 흥미롭게도 ‘교황 선출 베팅’이라는 이탈리아 표현은 ‘교황이 되기 위한 베팅’으로도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이 의미의 이중성은 실제 상황의 이중성과 상응한다. 그 표현이 뜻하는 두 가지 내용이 실제 교황 선출을 둘러싸고 두 종류의 도박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도박사들이 ‘누가 차기 교황이 될지’를 두고 벌이는 금전판이고 다른 하나는 교황이 되려고 하는 추기경들 뒤에 있는 스페인·프랑스·신성로마제국·영국의 국왕들,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제후들이 벌이는 ‘누구를 차기 교황으로 만들지’의 국익과 패권판이다. 전자는 관람객이고 후자는 프로듀서의 관점이다. 전자가 추측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액션의 영역이 된다.

이 때문에 로마 도박사들의 ‘판’은 현직 교황의 건강 이상설이 나돌면서 본격 가동되지만 제후들의 도박은 새 교황 즉위와 동시에 재가동된다. 전자의 경우 한 가지 더 갑갑함이 있다. 16세기 교황 선거는 평균 4.3년에 한 번(100년간 총 23인의 교황이 있었으므로), 꽤 긴 간격을 두고 치러졌다는 점이다. 성마른 투기꾼들이 그 긴 공백을 참을 수 있었겠는가.

바우가르트너에 따르면 차기 선거 임박 전에는 현직 교황의 여행지나 주요 행사를 대상으로 한 군소 베팅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예컨대 식스토 5세가 가톨릭 순례지 로레토의 마리아 성전을 방문할 것인지, 그레고리오 13세가 그의 고향 볼로냐를 방문할 것인지, 방문 날짜는 언제며 며칠간 머무를지 등 숫자와 연동된 모든 세부 항목들이 독립된 베팅 형식으로 발행됐다고 한다.

사실 교황의 공적인 행위 그 어떤 것도 ‘세력’들의 의지와 무관할 수 없다. 일례로 스페인 국왕 필립 2세는 건강이 악화된 그레고리오 13세의 볼로냐 방문을 적극 만류했다. 그의 서거가 염려됐던 것이고 차기 승계 구도를 두고 프랑스 왕궁과 조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황은 계획을 접었다.

시장과 투기꾼들은 교황의 미동도 주의깊게 관찰하고 농담도 꼼꼼히 해석했다. 그래야 연말 추기경 임명에 대한 예측도, 종국에는 차기 교황 선거에 대한 전망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로마 저자거리의 투전판은 유능한 첩보 기관이자 강력한 언론 기구였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교황과 도박 (中)편에서는 교황 선출에 개입된 외부 세력을 다룹니다. 세부적으로는 ‘콘클라베’의 기원, 교황청과 은행업자들과의 대립, 교황의 도박 척결 운동 등을 담을 예정입니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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