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아날로그의 땅이다.”
정보기술(IT)의 불모지 ‘미들마일’ 시장을 정복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모빌리티 기술력을 확보한 티맵과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해 이 시장에 진입했고 올해는 물류 1위 기업인 CJ대한통운이 합류했다.
미들마일은 말 그대로 중간 물류다. 물류 시장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라스트마일·미들마일·퍼스트마일이다. 라스트마일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일반 소비자가 택배사나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 배달 업체로부터 물건을 직접 전달받는 영역이다. 퍼스트마일은 수출입 단계다. 항공이나 항만 등 첫째 터미널부터 다음 창고까지가 퍼스트마일이다. 이 중간 단계가 아날로그의 땅, 미들마일이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돈이 되는데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미들마일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31조원이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33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본다. 7조원으로 추산되는 라스트마일 시장의 5배에 가깝다.
이커머스 시장의 쿠팡, 배달 시장의 배달의민족 같은 시장 지배자도 없다. 미들마일 시장에 기술의 힘이 닿은 지 1년 남짓 됐기 때문이다. 기술 혁신이 당연하고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필수인 사회에서 여전히 종이와 전화, 관행으로 이뤄지던 시장이었다.
전화로 배차하고 종이 영수증 떼어주던 시장
기존 미들마일의 주연은 셋이었다. 화주·차주·주선사다. 남양주에서 유리 공장을 하는 화주가 부산 해운대에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 유리를 100개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때 화주는 유리 규격과 무게·날짜 등을 고려해 화물 트럭을 불러야 한다.
기존에는 화주와 차주 사이를 주선사가 중개했다. 화주가 주선사에 전화하고 영수증이나 인수증 등은 모두 종이로 처리됐다. 주선사는 해당 지역이나 기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던 영세 사업자가 대부분이었다. 카카오택시나 타다가 등장하기 이전 콜택시 업체들의 역할이다.
기존에도 플랫폼 사업자가 있었지만 화주의 전화를 받고 게시글 형태로 주문을 올려 차주를 연결해 주는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차주의 높은 평균 연령, 화물의 비규격화, 아날로그 형식의 서류 작업 등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 때문에 화물 운송 시장의 디지털 전환은 농업 분야보다 뒤처진 수준이었다. 글로벌 컨설팅사 딜로이트에 따르면 화물 운송 시장의 디지털화는 12.3%로 농업보다 낮았다.
기존 화물 운송 시장은 택시와 달리 운임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운임의 변동성이 잦고 변동 폭이 컸다. 전국 단위, 전체 톤급의 운임 이력 관리도 어려웠다. 업력과 경험에 따라 견적을 산출했기 때문에 화주의 운송 관리도 어려웠고 신뢰성이 낮았다.
화주와 차주가 서로 건당 계약하고 화물을 운반해야 하는데 수요와 공급이 늘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선사와 운송사가 이 중간 단계를 연결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이 수기와 전화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졌다. 화물 트럭이 언제 도착하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추적하려면 차주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방법이 유일했다.
CJ대한통운도 2015년 이 시장에 진작 뛰어들었지만 당시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지금처럼 화주와 차주를 직접 연결하는 형태가 아니라 주선사들의 관리 시스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라스트마일보다 성장 가능성 높다
최근 기업들이 내놓는 미들마일 플랫폼은 화주와 차주를 직접 연결하는 형태다. 주선 플랫폼에 기술을 입혀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고 편의성을 끌어올렸다. 기존에 종이나 전화로 하던 업무를 모두 디지털로 전환했다. 운임료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하고 차주가 어디쯤 오는지 택시 애플리케이션처럼 추적할 수 있다. 모빌리티 기업들은 기존 IT 역량을 쏟아부었고 물류 기업은 물류 역량에 IT를 입히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 시장에 가장 먼저 뛰어든 대형 사업자는 티맵모빌리티다. 티맵모빌리티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장악하고 있는 택시나 대리 운전 대신 B2B 시장을 겨냥하며 시장에 진출했다. 티맵모빌리티는 2021년 총 800억원을 투입해 미들마일 중개 스타트업 와이엘피(YLP) 지분 100%를 인수했고 두 기업의 역량을 합쳐 올해 2월 ‘티맵화물’ 서비스를 출시했다.
YLP가 수년간 쌓은 운송 데이터와 티맵이 보유한 플랫폼 노하우와 운송 경로 최적화 기술을 접목하는 방법으로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티맵모빌리티의 매출 2046억원 가운데 절반 정도가 YLP 등 미들마일 사업에서 나왔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미들마일 시장 중개 솔루션 업체 ‘위드원스’의 지분 100%를 획득했고 같은 해 10월 화물업계 중개 플랫폼 화물마당의 지분 49%를 매입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역시 아날로그 형식에 치중했던 기존 플랫폼을 디지털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경험에 의존하던 가격, AI로 표준운임 책정
CJ대한통운은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대신 사내 독립 기업(CIC) 형태로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을 내놓았다.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센터인 포티투닷 최고전략책임자(CSO) 최형욱 상무를 영입해 조직을 꾸렸다. CJ대한통운이 보유한 물류 역량과 물류 데이터에 AI 등 IT를 입히기 위해 총 인력 45명 중 27명을 개발자로 꾸렸다.
올해 7월에는 정식으로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 ‘더 운반’을 출시했다. 더 운반은 CJ대한통운이 쌓아 놓은 데이터 등을 활용한 AI 알고리즘으로 표준화된 운임을 제안한다. 기존 물류 데이터를 학습해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은 화물 종류, 운행 구간, 거리, 차량 톤급 등 운송 정보와 1000만 개가 넘는 CJ대한통운의 데이터, 기상 상황, 유가, 계절 요인 등을 고려해 표준 운임을 산정한다.
더 운반을 총괄하는 최형욱 상무는 “미들마일 시장은 기존 시장 참여자들의 연령대가 높고 기술 성숙도가 올라오지 않아 외면받아 왔던 영역”이라며 “데이터와 AI 등 기술이 충분히 성숙한 상황에서 화물 위치를 추적하고 예상 도착 시간을 제공받을 수 있어 화주들의 업무 편의성을 높였고 화주와 차주를 직접 매칭해 운송 수수료를 절감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인 운임을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뚜렷한 시장 지배자가 없는 상황에서 통신 기업들도 미들마일 시장에 진출했다. KT는 AI 화물 중개·운송 플랫폼 브로캐리를 지난해 출시했고 올해는 디지털 물류 전문 그룹사인 롤랩과 손잡고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브로캐리는 화물 중개·운송 플랫폼 최초로 AI 추천 요금, 익일 결제, 책임 운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출시 1년 만에 차주 회원 1만 명을 돌파하고 160개 이상 중대형 화주를 확보하는 등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LG유플러스도 신사업으로 미들마일 시장을 노리고 있다. LG유플러스는 5월 24일 ‘화물잇고’ 상표를 출원하며 이를 운송업으로 분류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가 물류 시장 진출을 위해 화물 운송 중개 플랫폼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1등 사업자가 없는 미들마일 시장의 승기를 잡기 위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이 시장의 춘추 전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30조원이나 되는 시장이다 보니 모빌리티 기업들은 수익성을 위해, 물류 기업들은 시장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인터뷰] CJ 대한통운 '더 운반' 최형욱 최고운영책임자 상무
"미들마일 시장, 카카오T 없을 때의 택시시장과 같아"
CJ대한통운은 지난 7월 화물운송중개 플랫폼 ‘더 운반’을 출시하며 미들마일 시장에 뛰어들었다. 더 운반은 화주와 차주를 일대일로 직접 매칭해 폐쇄적인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아날로그 관행으로 이뤄지던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최형욱 CJ대한통운 디지털물류플랫폼 상무는 더 운반에 대해 “AI 알고리즘으로 표준화된 운임을 제안하고 시장의 정보비대칭성을 개선했다”며 "기술이 도입되지 않았던 미들마일 시장은 카카오T 등장 이전의 택시시장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전문 회사 '포티투닷'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역임하다가 지난해 1월 CJ대한통운에 합류했다.
-미들마일 시장에 물류 대기업이나 IT 기업이 진입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기술의 성숙도가 낮았다. 2016년 몇몇 대기업이 미들마일 사업을 했었는데, 지금처럼 매칭이나 중개 플랫폼이 아니었다. 주선사나 운송사들을 위한 관리시스템에 가까웠다. 그 사업들이 성공하지 못하다보니 시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 떠난 기업도 있다. 시장 주체인 차주들의 나이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서비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있었다. AI나 데이터 등 기술 성숙도도 지금만큼 발전하지 않았었다.”
-그동안 관행으로 이뤄지던 미들마일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투명성이다. 운임이 표준화돼있지 않고 경험에 의존해 가격이 책정되던 곳이다. 수요와 공급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부산을 내려갈 때 50만원대인 운임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35만원대로 떨어지기도 한다. 운송료 산출 방식이나 배차 과정이 관행과 경험에 의존해 이뤄졌다.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따. 주선사와 운송사는 자본금이 낮은 영세업자가 많았다. 보통 화주가 주선사에게 수수료를 내는 게 짧으면 30일, 길면 60일이다. 그럼 차주는 운반 후 45일~60일 후에 운반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주선사나 운송사가 망하면 차주가 돈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미들마일 시장 전반적으로 서비스가 떨어지고 신뢰가 없었다.”
-화주는 그동안 주선사에 맡겼던 일을 직접 플랫폼에 입력해야 되는데, 더 불편해 진 것 아닌가
화주 입장에서도 투명성이 높아지고 운임 절감 효과가 있다. 더 운반을 사용한 화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임이 평균 5%, 많게는 10% 이상 절감된 것으로 나왔다. 정산이나 인수증 역시 시스템 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차가 어디까지 왔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실시간으로 트래킹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이 고도화 될수록 화주의 업무효율성도 높아진다.
-다른 IT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CJ대한통운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CJ대한통운의 물류역량에 IT 기술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IT를 기반으로 물류 역량을 쌓는 것 보다는 물류 역량을 베이스로 IT 기술을 더하는 게 더 수월하다. CJ대한통운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물류 데이터를 활용해 자체 AI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했고 기상 상황, 화물 종류, 유가, 운행구간, 거리, 차량 톤급, 계절 요인 등을 고려해 표준 운임을 산정하고 있다. 미들마일도 결국 물류 산업인 만큼 이 시장에서 1등 사업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