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다 갔는데…” 여전히 지지부진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합병

미국·EU 승인 지연으로 제 3자 매각설까지 불거져…빌딩 매각으로 실탄 마련한 대한항공

[비즈니스 포커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대한항공 항공기. 사진=연합뉴스


‘“남은 국가인 미국·유럽·일본 중 한 곳이라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합병 항공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유럽연합(EU ) 경쟁 당국은 8월 3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8월 초 ‘합병 대한항공’의 운명은 어떤 방향이든 결론이 나게 된다(한경비즈니스 6월 29일자 비즈니스 포커스).”

두 달 전만 해도 대한항공의 운명은 8월 초에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8월 초를 지나 중순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상황은 전혀 진척된 것이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은 아직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는 당초 8월 3일 합병 승인을 내기로 했지만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심사 종료 기한을 10월로 미뤘다. 그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제삼자 매각설’까지 불거져
매각 절차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있는 와중에 ‘제삼자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KDB산업은행이 합병이 무산될 것을 대비해 아시아나항공 안정화를 위해 컨설팅 용역을 발주해 제삼자에게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KDB산업은행은 즉각 보도 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제삼자 매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KDB산업은행은 “삼일회계법인이 현재 수행 중인 용역은 아시아나항공이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항공 시장 변화에 대비해 자금 수지 점검 등을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해당 용역은 제삼자 매각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해외 경쟁 당국과 협의 중인 시정 방안은 확정되지 않은 사안으로, 혼란을 가중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은 과거에도 합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한진칼 지분 매각 방안을 포함해 플랜 B(대안)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KDB산업은행은 2020년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방안으로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칼의 3자 배정 유상 증자 등에 참여해 8000억원을 투입하고 한진칼이 해당 자금으로 대한항공을 통해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77%를 사들이는 방법이다.

하지만 합병이 지체되면서 대한항공에서 받을 수 있는 자금 길은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막혔다. 이에 따라 KDB산업은행은 주채권단으로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용역을 맡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 사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환경은 더더욱 나빠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2분기 영업이익은 10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5% 감소했다. 매출액은 1조56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18억원을 기록해 1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측은 항공기 가동률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연료 유류비, 정비비, 공항 관련 비용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늘어난 여행 수요를 바탕으로 저비용 항공사(LCC) 등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합병이 지연되는 아시아나항공은 손실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의 LCC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도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1조원을 투입한 대한항공으로서도 합병이 걸리는 시간이 소요될수록 초조할 수밖에 없다.
‘알짜배기’ 화물 사업부까지 내놓나
합병에 대한 대한항공의 의사는 ‘일단’ 확고하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6월 5일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 총회를 계기로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무엇을 포기하든 아시아나와의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라며 단호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와중에 서울 중구 서소문동의 ‘칼 빌딩’이 10년 만에 대한항공의 자산이 되면서 그 의도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대한항공은 모기업인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서 칼 빌딩과 대지 중 일부를 9월 4일 약 2642억원에 매입한다고 공시했다. 지상 16층, 지하 4층 규모인 해당 건물은 지상 14층을 제외한 전체가 대한항공에 소유권이 넘어간다. 14층은 앞으로도 한진칼이 소유권을 갖고 본사 업무 공간으로 쓸 예정이다.

칼 빌딩의 매각은 한진칼의 자금 확보와 관련이 있다. 대한항공 측은 “업무 공간 효율성 강화와 추후 가치 상승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라며 “한진칼은 유동 자금 확보 차원에서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이 조 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것이란 설도 나오고 있다. 만약 합병이 무산돼 KDB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지분을 처분하면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진칼이 2600억원의 매각 대금과 유상 증자 자금을 활용해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10.58%의 지분을 사는 것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 이후에도 자금 확보는 필요하다. 2021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 전략(PMI)에서 통합 비용을 6000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전산 시스템 통합부터 직원 재교육,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소진 등이 이 비용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한진칼이 미리 자금을 마련해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어쨌거나 대한항공으로서는 통합에 성공하든, 좌절되든 유동 자금이 필요한 것이다.

대한항공의 마지막 승부수가 화물 사업이라는 설도 흘러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은 대한항공이 합병 승인을 위해 화물 사업 일부 양보를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티웨이항공 측에 B747과 B777 화물기 대여, 화물 사업 진출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는 EU가 아시아나항공을 대체할 항공 화물 사업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당사 화물기를 특정 항공사에 제공하는 등의 구체적인 시정 조치안은 확정된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티웨이 역시 이와 관련해 이야기가 오간 것은 맞지만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화물 사업은 팬데믹으로 여객 수요가 위축됐던 시기, 대한항공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의 매각설까지 불거진 것은 미주와 유럽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 화물 합산 점유율이 약 80% 수준으로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이 양보하려는 화물 사업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조 회장이 “우리는 여기(합병)에 100%를 걸었다”고 발언한 만큼 미국과 EU 등이 우려하는 시장 독점을 해소할 만큼의 사업을 포기할 것이란 가능성도 있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화물 사업 부분 매각설에 대해 “주요 사업을 포기할 만큼 기업 결합을 향한 대한항공의 의지를 보여준 사례로 보인다”며 “항공 화물 운임의 하향 안정화 추세도 대한항공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2020년부터 2022년 팬데믹 기간 대한항공 화물 사업부의 매출 비율은 57~77%를 차지했다. 화물 운임이 하향 안정화에 돌입한다면 2013~2019년 매출 비율은 21~15%로 낮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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