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다로 출근합니다, 웨이브웍스 양양 [MZ 공간 트렌드]
입력 2023-09-01 14:12:30
수정 2023-09-01 14:12:30
워케이션센터, 워라밸을 위한 완벽한 공간
원하는 곳에서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worcation)이 화제다. 업무(work)와 휴식(vacation)의 공존이라니 이 무슨 ‘따뜻한 프라푸치노’ 같은 표현인가 싶을지 모른다. 쉬는 날이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 ‘방해 금지 모드’를 켜는 K-직장인에게 워케이션은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의구심과 달리 워케이션은 이미 트렌드로 자리했다. 최근 미국의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원격 근무가 가능한 미국인의 53%, 절반 이상이 향후 12개월 내에 워케이션을 갈 것이라고 응답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연간 4주 동안 아무 데서나 일하기’ 정책을 시행 중이고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연간 최장 4주는 본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할 수 있는 원격 근무를 도입했다.
한국에서도 노동자가 근무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토스·SK텔레콤 등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에서도 워케이션을 복지 제도의 일종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든 일할 수 있고 절차보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인식의 변화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일터=휴가지가 되다지방 취재를 핑계로 일일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체험에 나섰다. ‘디지털 유목민’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노트북·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신(新)부족이다. 목적지는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강원도 양양. 죽도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워케이션센터 ‘웨이브웍스 양양’이 오늘의 일터다. 편한 티셔츠와 슬리퍼 차림에 노트북·텀블러만 달랑 든 채 센터에 발을 들였다.
‘아, 그냥 연차 쓸 걸….’ 통창으로 쏟아지는 푸른 바다와 여름을 만끽하는 서퍼들을 보고 있자니 작은 후회가 밀려온다. 자리에 앉아 간단한 업무 보고를 마친 뒤 공간 탐색에 나섰다. 웨이브웍스 양양은 8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한 워케이션센터다. 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 공간에 50여 개의 좌석과 회의실, 프린터 등 업무 시설을 갖췄다. 간단한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카페와 양양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굿즈를 판매하는 공간도 있다. 노동 환경뿐만 아니라 서핑·체험·숙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 관광 업체와 함께 개발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간이 바뀌니 몸가짐과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사무실에선 차마 하지 못했던 양반다리를 틀어 보고 의미 없는 중얼거림과 감탄사도 눈치 보지 않고 내뱉는다. 꽉 막힌 오피스에서 벗어나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창의성이 샘솟는 듯하다. 오늘 주어진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바다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업무 능률성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휴식을 대하는 태도도 새롭게 정립된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온전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쉼’으로 다가온다. 일과 휴식, 집중과 여유는 공존 가능한 개념이었다.
양양·속초·제주…퇴근 즉시 휴가 시작워케이션이 열풍이 불자 전국 지자체도 적극 유치에 나섰다. 체류 인구 확대는 곧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워케이션 거점 센터를 구축하는가 하면 한 달 살기, 어촌 체험, 한옥 스테이 등 다양한 지역 체류형 사업을 선보이고 있다.
양양군이 지난 6월 1일 출시한 ‘고고양양’은 양양 관광을 위한 통합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워케이션 센터를 중심으로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와 기업 회원 등 신유형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웨이브웍스 양양 역시 고고양양 앱을 이용해 예약할 수 있다. 속초시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인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 속초워케이션’, 2박 3일 속초 살기 ‘속초 오실’ 등을 운영한다. 기업 워케이션 최고 선호 지역으로 꼽히는 제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주관하는 ‘2023년 메타버스 노마드 지원사업’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지역에 일정 기간 체류하며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