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와 잔향 그리고 ‘취향’[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지라드CS(왼쪽)와 스트리밍 이글 /자료=한국경제




와인 전성시대다. 한국 시장 규모 2조원대, 동네 편의점에만 가도 가성비 좋은 세계 와인이 널려 있다. 주말 저녁마다 시음회를 찾아다니는 젊은 맞벌이 부부도 많다. 이왕 마시는 것, 포도 품종이나 테루아·테이스팅 요령 등 기본 지식을 알고 마시면 더 맛있고 즐겁기 때문이다.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와인 이야기와 기초 이론을 조화롭게 섞어 연재한다.

와인의 가격은 밸런스와 복합미 그리고 일생 잊을 수 없는 ‘향기’로 결정된다.

지난 6월 서울 시내 한 백화점 할인 행사에 나온 미국 컬트 와인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주인공은 한 병에 560만원 하는 ‘스크리밍 이글’이다.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게 100점 만점을 6회나 받은 와인이다. 공급량이 워낙 적고 매년 가격이 올라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돈 버는 와인’으로 통한다.

반면 같은 지역인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생산된 ‘지라드 카베르네 소비뇽’의 할인 가격은 7만원대. 2017년 미·중 정상회담 만찬 테이블에 오른 이 와인의 특징은 짙은 초콜릿과 달콤한 과실 향이다. 밸런스는 물론 복합미도 좋아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두 와인 모두 기본 포도 품종으로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사용했다. 그런데도 가격이 이처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와인 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가장 많이 쏟아지는 질문은 ‘가격’이다. 과연 와인 맛도 100배의 가격 차이만큼 좋을까.

와인 맛은 크게 당도·산도·타닌에 의해 결정된다. 이 세 가지 맛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즉 밸런스 좋은 와인 가격이 비싸다. 실제 초보자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하면 대부분은 가격이 비싼 와인을 선택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다들 ‘느낌이 좋고 편안하다’고 답한다. 일반적인 통계가 그렇다.

특히 인간의 뇌 속 깊이 각인된 와인 향은 가격 결정과 구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와인 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원료인 포도의 고유 향기인 아로마, 또 하나는 발효·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케 향이 바로 그것이다. 와인 품질은 바로 이런 향기에 좌우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와인이 있다. 우연히 밸런스와 향기에 대한 좋은 경험을 가졌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형성된 비싼 가격을 기꺼이 지불해야 ‘감명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다.

고가의 와인을 양조하는 와이너리에서는 수십년, 수백년의 역사를 거쳐 자신들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와 함께 수요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고가 전략을 펼친다. 이 때문에 와인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 아니고는 와인에 담긴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100배 비싼 와인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위에서 예로 든 ‘지라드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7만원 안팎이면 밸런스와 향기를 즐기고 와인이 주는 ‘행복’을 찾기에 충분하다. 가격보다 와인 메이커가 표현하려는 풍미와 향에 더 집중하길 권유한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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