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 ‘도시 여성의 지적 삶의 표현’ 내걸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입력 2023-09-13 12:27:59
수정 2023-09-13 12:28:17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막스마라①
최근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라는 조용한 럭셔리, 즉 가치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럭셔리가 인기다.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도 같은 맥락이다. 올드 머니는 집안 대대로 상속으로 물려받은 재산을 뜻한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으로 부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상류층의 럭셔리한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을 ‘올드머니룩’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시절 패션 리더들은 과감한 노출 패션,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장식된 옷과 가방으로 과시형 소비 형태를 보였다면 팬데믹 이후 패션 리더들은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다. 그들은 로고를 최소화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무채색에 가까운 모노톤의 색상을 사용해 럭셔리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캐시미어·캐멀·알파카 소재의 막스마라 코트는 올드머니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제품 중 하나다.
막스마라는 1951년 아킬레 마라모티가 ‘도시 여성의 지적인 삶의 표현’이라는 슬로건으로 창업했다. 아킬레 마라모티는 이탈리아에서 대대로 옷을 만드는 가정에서 1927년 1월 태어났다. 그의 증조모는 1850년 레지오 에밀리아 시내 중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패턴 제작을 가르치는 양재학원을 운영했으며 ‘재단의 기술’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고급 소재·편안한 재단, 이탈리아 감성 표현
의류 제작 과정을 보면서 자란 그는 로마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파르마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스위스에 있는 레인코트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인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24세가 되던 1951년 공식적으로 ‘마라모티 콘포지오니(Maramotti Confezioni)’라는 의류 회사를 설립했다. 여성복의 콘셉트는 심플(simple)하면서도 베이직(basic)한 여성복으로 고급 소재와 편안한 재단(tailoring)에 포커스를 둬 이탈리아 감성을 잘 표현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 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자가 풍부해지고 1951년 미국에서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됐고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반면 유럽에서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황폐해졌고 럭셔리와 화려함에 대해 사람들은 목말라 했다. 이 갈망을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들이 채워 주고 있었다. 젊은 마라모티는 대대로 이어 온 가문의 유산인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최신 산업 기술을 적용한 의상을 생산하고 싶어 했다.
막스마라 브랜드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을 보여 주겠다는 의미에서 막스(Max)와 창립자의 성인 마라모티에서 마라(Mara)를 합성해 막스마라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둘째는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막스(Max) 백작과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1955년 ‘마라모티 콘포지오니’ 회사 이름을 ‘막스마라 인더스트리아 이탈리아 콘페지오니’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막스마라 브랜드 사업이 시작됐다. 마라모티는 품질에 최우선을 뒀다. 최고의 제조사들과 협업했고 오직 최고의 소재만 사용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챙기면서 끊임없이 개선점을 찾아내고 연구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컬렉션 발표뿐만 아니라 이사회실, 플래그십 매장, 다양한 주요 패션 도시들, 산 마우리치오 공장에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산 마우리치오 공장, 최고의 재단 명성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체 공장을 소유하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는 상황에서 레지오 에밀리아 본사에서 차로 몇 분 거리에 자리한 산 마우리치오 공장은 그야말로 막스마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바로 이곳의 숙련된 기술자들과 몇 세대에 걸쳐 갈고닦은 기술이 결합돼 브랜드의 아이콘인 코트가 제작됐다. 막스마라가 최고의 재단(tailoring)으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산 마우리치오 공장 덕분이다. 바로 이곳에서 매년 10만 벌 이상의 의상이 제작되고 있고 그중 7만 벌이 코트다.
산 마우리치오 공장은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생산 공장을 고려해 설계됐다. 울, 울과 캐시미어 합사, 캐멀 헤어(낙타털), 알파카(라마와 비슷한 털이 긴 남미의 산악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털) 등 좋은 원단에서부터 코트 한 벌의 공정이 시작된다. 원단을 펼쳐 가장 미세한 흠집 여부까지 확인한 후 기계로 정밀하게 원단의 길이를 측정해 원단이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한다. 절단 테이블에서 바느질실에 도달하기까지 막스마라 코트 한 벌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는 데는 대략 4~5시간이 소요된다.
스티치(땀 뜨기) 기술을 보유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더블 페이스(double face)’ 의상에서부터 연장된 형태의 ‘새들 스티치(박음질)’와 막스마라의 시그니처 디테일인 ‘푼티노 스티치(막스마라 코트의 깃과 소매 솔기, 앞여밈에 장식하는 홈질 형태의 스티치)’까지 기계를 사용해 천천히 완성한다. 이 중 제조 공정의 20% 정도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모든 마감 작업 역시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이렇듯 수고스럽지만 타협할 수 없는 산업적 장인 정신과 기술은 막스마라의 성공 비결이다.
막스마라 패션연구소에서는 수십 년간 의상의 혁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BAI(Biblioteca e Archivio di Impresa)’라는 이름의 패션연구소는 막스마라그룹에서 생산한 제품들과 협업, 영감, 광고 캠페인, 언론 기사 스크랩, 빈티지 의상과 연구용 의상 등 회사가 7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축척해 온 모든 것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컬렉션을 통해 막스마라가 어떻게 단순한 브랜드 그 이상을 꿈꾸며 가족의 비전을 세계가 열광하는 제품으로 현실화했는지 한눈에 알아보고 현대 패션의 탄생과 성장을 다룬 방대한 자료들도 관리하고 있다.
자료 : 막스마라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막스마라①
최근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라는 조용한 럭셔리, 즉 가치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럭셔리가 인기다.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도 같은 맥락이다. 올드 머니는 집안 대대로 상속으로 물려받은 재산을 뜻한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으로 부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상류층의 럭셔리한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을 ‘올드머니룩’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시절 패션 리더들은 과감한 노출 패션,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장식된 옷과 가방으로 과시형 소비 형태를 보였다면 팬데믹 이후 패션 리더들은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다. 그들은 로고를 최소화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무채색에 가까운 모노톤의 색상을 사용해 럭셔리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캐시미어·캐멀·알파카 소재의 막스마라 코트는 올드머니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제품 중 하나다.
막스마라는 1951년 아킬레 마라모티가 ‘도시 여성의 지적인 삶의 표현’이라는 슬로건으로 창업했다. 아킬레 마라모티는 이탈리아에서 대대로 옷을 만드는 가정에서 1927년 1월 태어났다. 그의 증조모는 1850년 레지오 에밀리아 시내 중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패턴 제작을 가르치는 양재학원을 운영했으며 ‘재단의 기술’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고급 소재·편안한 재단, 이탈리아 감성 표현
의류 제작 과정을 보면서 자란 그는 로마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파르마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스위스에 있는 레인코트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인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24세가 되던 1951년 공식적으로 ‘마라모티 콘포지오니(Maramotti Confezioni)’라는 의류 회사를 설립했다. 여성복의 콘셉트는 심플(simple)하면서도 베이직(basic)한 여성복으로 고급 소재와 편안한 재단(tailoring)에 포커스를 둬 이탈리아 감성을 잘 표현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 후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자가 풍부해지고 1951년 미국에서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됐고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반면 유럽에서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황폐해졌고 럭셔리와 화려함에 대해 사람들은 목말라 했다. 이 갈망을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들이 채워 주고 있었다. 젊은 마라모티는 대대로 이어 온 가문의 유산인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최신 산업 기술을 적용한 의상을 생산하고 싶어 했다.
막스마라 브랜드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을 보여 주겠다는 의미에서 막스(Max)와 창립자의 성인 마라모티에서 마라(Mara)를 합성해 막스마라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둘째는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막스(Max) 백작과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1955년 ‘마라모티 콘포지오니’ 회사 이름을 ‘막스마라 인더스트리아 이탈리아 콘페지오니’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막스마라 브랜드 사업이 시작됐다. 마라모티는 품질에 최우선을 뒀다. 최고의 제조사들과 협업했고 오직 최고의 소재만 사용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챙기면서 끊임없이 개선점을 찾아내고 연구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컬렉션 발표뿐만 아니라 이사회실, 플래그십 매장, 다양한 주요 패션 도시들, 산 마우리치오 공장에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산 마우리치오 공장, 최고의 재단 명성
럭셔리 브랜드들이 자체 공장을 소유하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는 상황에서 레지오 에밀리아 본사에서 차로 몇 분 거리에 자리한 산 마우리치오 공장은 그야말로 막스마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바로 이곳의 숙련된 기술자들과 몇 세대에 걸쳐 갈고닦은 기술이 결합돼 브랜드의 아이콘인 코트가 제작됐다. 막스마라가 최고의 재단(tailoring)으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산 마우리치오 공장 덕분이다. 바로 이곳에서 매년 10만 벌 이상의 의상이 제작되고 있고 그중 7만 벌이 코트다.
산 마우리치오 공장은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생산 공장을 고려해 설계됐다. 울, 울과 캐시미어 합사, 캐멀 헤어(낙타털), 알파카(라마와 비슷한 털이 긴 남미의 산악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털) 등 좋은 원단에서부터 코트 한 벌의 공정이 시작된다. 원단을 펼쳐 가장 미세한 흠집 여부까지 확인한 후 기계로 정밀하게 원단의 길이를 측정해 원단이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한다. 절단 테이블에서 바느질실에 도달하기까지 막스마라 코트 한 벌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는 데는 대략 4~5시간이 소요된다.
스티치(땀 뜨기) 기술을 보유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더블 페이스(double face)’ 의상에서부터 연장된 형태의 ‘새들 스티치(박음질)’와 막스마라의 시그니처 디테일인 ‘푼티노 스티치(막스마라 코트의 깃과 소매 솔기, 앞여밈에 장식하는 홈질 형태의 스티치)’까지 기계를 사용해 천천히 완성한다. 이 중 제조 공정의 20% 정도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되며 모든 마감 작업 역시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이렇듯 수고스럽지만 타협할 수 없는 산업적 장인 정신과 기술은 막스마라의 성공 비결이다.
막스마라 패션연구소에서는 수십 년간 의상의 혁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다. ‘BAI(Biblioteca e Archivio di Impresa)’라는 이름의 패션연구소는 막스마라그룹에서 생산한 제품들과 협업, 영감, 광고 캠페인, 언론 기사 스크랩, 빈티지 의상과 연구용 의상 등 회사가 7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축척해 온 모든 것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컬렉션을 통해 막스마라가 어떻게 단순한 브랜드 그 이상을 꿈꾸며 가족의 비전을 세계가 열광하는 제품으로 현실화했는지 한눈에 알아보고 현대 패션의 탄생과 성장을 다룬 방대한 자료들도 관리하고 있다.
자료 : 막스마라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