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컨셉, 패션 플랫폼 가운데 유일하게 프리즈 서울 참가
신세계백화점, 업계 첫 공식파트너로 현장서 VIP 라운지 운영
LG전자, BMW, 오설록, 노티드 등 국내 굴지 기업들 파트너사로 참여
국내 굴지의 기업들도 다양한 이유로 프리즈 서울을 후원하고 나섰다. 특히, 예술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신세계백화점과 W컨셉이 각 업계 최초로 프리즈 서울에 뛰어들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아트슈머(예술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를 겨냥한 전략이다. 프리즈 서울 총출동한 신세계…라운지 가보니"이런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뜬금없이 쇼핑몰 부스가 있다고?"
프리즈 서울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3층에서 개최된 프리즈 서울에는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 등 글로벌 최정상급 갤러리를 포함해 총 120여곳이 참여했다.
유명 작품들을 내세운 국내외 갤러리의 전시관이 즐비한 가운데 유독 튀는 부스가 있었다. 신세계그룹의 패션 플랫폼 계열사 'W컨셉'이다. 약 100㎡(30평) 공간에 패션과 아트 연계한 '컬렉션' 라운지를 설치했다.
심지어 기업이 만든 행사 부스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라운지 곳곳에 임지빈 작가, 성지연 작가, 조슈아 비데스 작가 등 국내외 아티스트 3인의 작품이 설치돼 있어 인근 갤러리들과 크게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자세히 보면 다른 갤러리와 다른 점이 있다. 실제 W컨셉에서 파는 제품들이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W컨셉 대표 브랜드인 '프론트로우', 'frrw' 등의 가을·겨울(FW) 신상품도 들어가 있지만 언뜻 보면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과 어우러지고, 공간의 컨셉에 녹아들 수 있도록 W컨셉 측에서 이 제품들을 일일이 큐레이션(분류·편집)한 영향이다.
특히, W컨셉의 라운지는 'SNS 업로드용'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임지빈 작가의 초대형 베어 벌룬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대기 줄까지 생겼으며, 성지연 작가 작품이 들어간 공간의 짙은 주황색 배경도 '사진에 잘 나온다'는 입소문을 타며 '사진 스팟(사진 잘 나오는 공간)'으로 관심을 받았다.
임지빈 작가는 6일 개막에 맞춰 현장에 나와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날 임 작가는 "이번 작품은 패션 회사의 성격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며 "조각 전공이라 원래는 단단한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옷과 어울릴 수 있도록 패브릭 소재에 패셔너블한 실버 색상을 사용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W컨셉이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것은 아트슈머를 잡기 위한 시도다. 아트슈머는 '문화 경험'이 동반된 소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로, 구매력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동시에 아트슈머는 SNS에서도 영향력이 있고, 패션·뷰티에 대한 관심도 많기 때문에 이들을 확보하는 것은 회사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W컨셉의 결정은 경쟁이 심화하는 패션 플랫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W컨셉 관계자는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아트슈머를 겨냥한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갤러리 전시, 대한민국 패션위크 등 다양한 행사가 예정된 만큼 각종 문화예술행사에 입고 갈 수 있는 패션 브랜드를 소개하고, W컨셉의 인지도도 높이려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W컨셉만큼 관심을 받는 부스가 또 있었다. 베이지 톤의 단아한 인테리어로 장식돼 언뜻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앞으로는 비싼 명품 가방을 든 방문객들이 부스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입장을 '허락'받은 이들은 몇 없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시관의 주인은 '신세계백화점'이었다.
백화점 업계 최초로 프리즈 서울 2023 공식 파트너로 참여한 신세계백화점은 약 100㎡(30평)의 면적에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세계 라운지’를 만들었다. 다만, 다른 전시관과 달리 워크인(예약 없이 방문하는 방식) 고객은 입장할 수 없다. 사전 초청된 신세계백화점의 우수 고객에 한해서만 이용이 가능한 탓이다.
한국의 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한지'를 주로 사용했다. 신세계 라운지에 걸려있는 정창섭 작가, 정상화 작가, 이정진 작가의 작품도 모두 한지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외에도 전광영 작가, 아니쉬 카푸어 작가, 필 심스 작가 등의 작품이 걸려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작품 설명은 없다. 일반 갤러리의 경우 설치된 작품 가까이에 작품의 제목, 작가 소개 등과 함께 QR 코드를 부착해 고객이 더 많은 정보를 얻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에는 라운지 벽면에 총 7점의 작품이 걸려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설명은 없었다.
이유는 있다. 고객을 위해 큐레이터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VIP 고객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작품 설명을 요청하면 큐레이터가 즉시 고객을 찾아와 상세히 설명해 준다. 고객들이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어 카메라를 켜는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결정으로, 신세계 라운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이 강조한 '격이 다른 라이프 스타일 경험 제공'이라는 슬로건을 몸소 체감한 순간이었다.
심지어 가구도 모두 자체 제작이다. 한국 전통가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테이블 위엔 디자이너 폴 뽀아레의 헤리티지를 계승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뽀아레'의 대표 상품이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소개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구매는 불가능하다. "도넛 가게가 여기 왜?"…의미 더한 기업들W컨셉과 신세계백화점 외에도 국내 주요 기업들이 파트너사로 프리즈 서울에 참가했다.
우선, 헤드라인 파트너사로 참여한 LG전자의 부스가 눈에 띈다. 일반 기업 부스 대비 2배 이상의 면적을 확보해 참여 기업 전시관 가운데 가장 크다. LG전자는 한국 추상 미술의 거장인 고(故)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올레드 TV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김광섭 시인의 시(時)와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삼고, 그리운 친구들과 고향을 떠올리며 무수히 많은 점으로 우주를 그린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영상으로 표현했다. 이날 오세훈 서울시장도 김환기 작가의 작품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아울러, LG전자의 미디어 아트 외에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 김환기 작가의 원화 12점도 LG전자 부스에서 관람 가능하다. LG전자 측은 "압도적 명암비와 블랙 표현, 완벽에 가까운 시야각으로 우주 공간 속 빛나는 별 하나하나를 표현한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제격"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 부스 맞은편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식음료 브랜드인 오설록이 있었다. 무채색 톤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내세운 오설록은 전 세계 각지에서 방문한 아트 애호가들에게 한국의 차 문화를 알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번 프리즈 서울에 참가했다.
오설록 측은 "특색 있는 티푸드도 만나볼 수 있어 혼잡할 수 있는 페어 현장에서 차와 함께하는 휴식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략은 통했다. 실제 현장에는 전시 관람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린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외식 전문 기업 GFFG가 운영하는 '노티드 도넛'의 팝업스토어도 있었다. 노티드 도넛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프리즈 서울에서 부스를 운영했다. 오설록과 노티드 도넛은 해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으로 관측된다. GFFG는 노티드 도넛과 한식 브랜드 호족반을 앞세워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설록 역시 북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프리즈 서울은 전 세계 주요 미술품 수집가뿐만 아니라 미술관·기관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행사다. 이번 기회로 해외 고객들에게 눈도장을 찍겠다는 전략이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도 눈에 띈다. BMW는 프리즈의 글로벌 파트너사로, 2004년부터 전 세계 프리즈를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 미출시 모델인 ‘BMW 뉴 i5 모델’을 선보였다. 또, 에스더 마흘란구, 코헤이 나와, 에릭 N. 맥, 구지윤, 빈우혁과 같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일렉트릭 AI 캔버스’도 국내 독점 공개했다.
BMW그룹 측은 "BMW는 전 세계 문화예술 분야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며 "한국에서도 프리즈 서울의 공식 파트너로 참가해 일렉트릭 AI 캔버스를 통해 아트와 기술을 연결,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예술 경험을 선사하고 서울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더욱 거듭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