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어도 내어준 것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고종에게 한 고언입니다. 유진(이병헌 분)은 극중 이민자로 나옵니다. 미국으로 귀화해 미군 신분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독립운동을 돕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작가의 상상으로 만든 허구의 인물이었지만 드라마 방영 후 유진의 모델이라고 할수 있을 만한 실존 인물이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입니다. 그는 1904년 하와이로 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인 이민의 시초가 된 7000여 명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미국은 당시 하와이에서 중국과 일본 노동자의 세가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인을 불러들였습니다. 기근·역병·일본의 수탈 등으로 지옥 같았던 조국을 떠나 찾아간 하와이. 하지만 그곳에서도 조선인들은 노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와이는 한국과 경제적 인연을 맺은 첫 미국 땅이 됐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노동자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이 아니라 미국 본토행을 택했습니다. 미국 서부 특히 로스앤젤레스(LA)에 많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썼습니다. 임시 정부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된 것이지요.
LA가 한국 사회에 큰 의미를 갖는 둘째 도시가 된 계기는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었습니다. 이민 제한을 풀어 미국에 부족한 전문직과 숙련 기술직을 받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미국의 황금 자본주의 시절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한국인들은 1년에 약 3만 명씩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1990년대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국의 지원 아래 급성장한 한국. 미국과 약간의 마찰이 발생합니다. 대우그룹이 동구권에서 미국 기업에 도전하고 한국 정부는 미국의 금융 시장 개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해외 부채가 급증하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국제통화기금(IMF)을 동원합니다. 일본에는 한국을 지원하지 못하게 못을 치고 말이지요. 한국 금융 시장의 문을 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IMF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우그룹을 공중 분해시켰습니다. 정부 관료들과 금융인·기업인들은 한동안 달러를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방된 한국 시장에 대한 월가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제국의 전략은 포위와 입양이라고 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포위해 공격하고 우호 세력은 양자로 입양시키듯 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도 이 전략이 동원됐습니다. 뉴욕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변화를 예고합니다. 미국의 금융 중심 자본주의는 힘을 잃어 갔습니다. 중국은 치고 나왔습니다. G2란 말이 나오자 미국은 예민해졌습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융 자본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국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외교 지형과 기술 생태계의 재편이었습니다. 요약하면 ‘포위 전략으로 도전하는 중국을 외교적 기술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국에 첨단 생산 기지를 끌어오는 입양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일본·호주·인도·베트남·아세안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전략을 활용합니다. 한국·일본·대만을 묶는 반도체 동맹은 기술 포위 전략입니다.
입양 전략도 병행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는 그 상징입니다. 해외 기업들을 입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을 주는 법안과 행정 명령을 통해서 말이지요.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미국이 운행하는 경제 열차에 올라타는 패스포트가 됐습니다. 이 모든 전략의 근거지는 워싱턴D.C.입니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정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워싱턴D.C.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절대적입니다. 이들이 워싱턴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도시들을 다뤘습니다. 미국의 도시들과 한국 경제의 관계를 한 번쯤 돌아볼 때가 된 듯합니다. 한국이 성장하는 동안 미국은 항상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서 재편 과정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 연장선상에서 오랜만에 나온 국가 전략 보고서도 함께 다뤘습니다. 미래를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2023년 국제 정세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 정치의 시계는 수십 년,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니 참 괴이한 일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어도 내어준 것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고종에게 한 고언입니다. 유진(이병헌 분)은 극중 이민자로 나옵니다. 미국으로 귀화해 미군 신분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독립운동을 돕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작가의 상상으로 만든 허구의 인물이었지만 드라마 방영 후 유진의 모델이라고 할수 있을 만한 실존 인물이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입니다. 그는 1904년 하와이로 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인 이민의 시초가 된 7000여 명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미국은 당시 하와이에서 중국과 일본 노동자의 세가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인을 불러들였습니다. 기근·역병·일본의 수탈 등으로 지옥 같았던 조국을 떠나 찾아간 하와이. 하지만 그곳에서도 조선인들은 노예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하와이는 한국과 경제적 인연을 맺은 첫 미국 땅이 됐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노동자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이 아니라 미국 본토행을 택했습니다. 미국 서부 특히 로스앤젤레스(LA)에 많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썼습니다. 임시 정부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된 것이지요.
LA가 한국 사회에 큰 의미를 갖는 둘째 도시가 된 계기는 196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었습니다. 이민 제한을 풀어 미국에 부족한 전문직과 숙련 기술직을 받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미국의 황금 자본주의 시절이었습니다. 문이 열리자 한국인들은 1년에 약 3만 명씩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나선 이들입니다.
1990년대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국의 지원 아래 급성장한 한국. 미국과 약간의 마찰이 발생합니다. 대우그룹이 동구권에서 미국 기업에 도전하고 한국 정부는 미국의 금융 시장 개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해외 부채가 급증하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국제통화기금(IMF)을 동원합니다. 일본에는 한국을 지원하지 못하게 못을 치고 말이지요. 한국 금융 시장의 문을 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IMF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대우그룹을 공중 분해시켰습니다. 정부 관료들과 금융인·기업인들은 한동안 달러를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방된 한국 시장에 대한 월가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제국의 전략은 포위와 입양이라고 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포위해 공격하고 우호 세력은 양자로 입양시키듯 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도 이 전략이 동원됐습니다. 뉴욕의 시간이 온 것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변화를 예고합니다. 미국의 금융 중심 자본주의는 힘을 잃어 갔습니다. 중국은 치고 나왔습니다. G2란 말이 나오자 미국은 예민해졌습니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는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융 자본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제국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국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외교 지형과 기술 생태계의 재편이었습니다. 요약하면 ‘포위 전략으로 도전하는 중국을 외교적 기술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국에 첨단 생산 기지를 끌어오는 입양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일본·호주·인도·베트남·아세안 국가를 끌어들여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전략을 활용합니다. 한국·일본·대만을 묶는 반도체 동맹은 기술 포위 전략입니다.
입양 전략도 병행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는 그 상징입니다. 해외 기업들을 입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을 주는 법안과 행정 명령을 통해서 말이지요.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미국이 운행하는 경제 열차에 올라타는 패스포트가 됐습니다. 이 모든 전략의 근거지는 워싱턴D.C.입니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시대는 막을 내리고 정치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워싱턴D.C.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절대적입니다. 이들이 워싱턴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도시들을 다뤘습니다. 미국의 도시들과 한국 경제의 관계를 한 번쯤 돌아볼 때가 된 듯합니다. 한국이 성장하는 동안 미국은 항상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서 재편 과정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그 연장선상에서 오랜만에 나온 국가 전략 보고서도 함께 다뤘습니다. 미래를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2023년 국제 정세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 정치의 시계는 수십 년,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니 참 괴이한 일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