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따라 우리도 간다”...완성차 기업들, ‘중고차 시장’ 향해 시동

KG모빌리티도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
GM코리아·르노 등도 시장 진출 움직임
불투명했던 중고차 시장 투명하게 바뀔 것으로 기대

[비즈니스 포커스]

판매를 기다리는 중고차들. 사진=연합뉴스


“10월 중 중고차 시장 진출을 알리는 공식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가 한경비즈니스와의 통화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의 말처럼 현대차·기아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중고차 판매에 돌입한다. 사실상 모든 준비는 마쳤다. 신차 출고 등을 위해 활용했던 양산출고센터는 중고차센터로 탈바꿈한 상황이고 용인 기흥구에 있는 중고차 매매 단지 ‘오토허브’에도 터를 잡고 중고차판매센터를 구축했다. 중고차 사업을 위한 인력 채용도 진행했다.

현대차는 양산 센터를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거점으로 활용하고 수도권 판매는 용인에서 담당한다. 중고차 판매 거점을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국 주요 지역에 중고차센터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에 태풍이 불 듯하다.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연이어 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중고차 판매 개시로 소비자들은 불투명했던 중고차 시장이 투명하게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중고차 시장 진출은 현대차·기아뿐만이 아니다. 쌍용차에서 사명을 바꾸고 새 출발을 알린 KG모빌리티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저울질하는 상황이다.

이 밖에 GM코리아·르노코리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한국에서 차량을 생산하는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셈이다.부르는 게 값인 중고차
“정해진 가격은 없다. 부르는 게 곧 값이다.”

한국 중고차 시장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정가가 없어 자동차 딜러가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판매 가격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쉽사리 믿고 중고차를 구매하지 못했다.

어디 가격뿐이랴. 성능을 속여 파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고질병’으로 꼽힌다. 일부 비양심적인 중고차 딜러들이 침수차 등을 정상 차량인 것처럼 위조해 판매하다가 구매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중고차 시장이 대표적인 ‘레몬마켓(저급품이 유통되는 시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거래에 불신이 깔려 있는 게 중고차 시장의 현실이다.

피해는 소비자들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자를 숨긴 채 판매되는 중고차 때문에 완성차업계들 역시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딜러가 문제가 있는 중고차를 고객에게 인도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후 고객이 차량을 몰다가 고장이 자주 나면 해당 중고차를 만든 브랜드도 이미지가 실추된다. 고장이 자주 나는 브랜드라는 오명이 덧씌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오랜 기간 제기돼 왔던 중고차 시장의 여러 문제점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포문은 현대차와 기아가 연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자동차 관리 사업(매매업) 신규 등록을 하고 양산과 시흥 등 두 곳에 중고차 판매센터 구축을 완료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판매만 하면 된다. 현대차·기아는 5년 10만km 이내 자사 브랜드 중고차 중 200여 개 항목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자사 인증’ 마크를 붙여 판매할 계획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각 센터는 최첨단 스마트 장비를 갖추고 있다. 정밀한 차량 진단과 정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정밀 진단 후 정비와 내·외관 개선(판금, 도장, 휠·타이어, 차량 광택 등)을 전담하는 상품화 조직을 운영해 중고차의 상품성을 신차 수준으로 높일 방침이다.
GM·르노도 시장 진출 움직임 감지현대차·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경쟁사들도 분주해졌다. 한국 완성차 업체 가운데 이미 KG모빌리티가 현대차·기아와 같은 방식으로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중고차 시장 진출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GM과 르노코리아도 곧 시장 진출을 선언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다섯 개 완성차 업체 가운데 세 곳이 시장 진출을 선언한 만큼 나머지 업체들도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들을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김주홍 전무는 “한국의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라며 “실제로 한국GM과 르노코리아도 중고차를 판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완성차업계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다. 포털 사이트 댓글이나 자동차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피해를 경험했던 이들이 “중고차 판매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들을 쏟아내며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판매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라는 모습이다.

심지어 현대차에 대해 비판만 일삼아 온 이른바 ‘현까’들마저 이번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환영하는 글들을 올린 것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중고차업계가 그만큼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며 “완성차업계들이 대거 시장에 집입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 불신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로 기존의 영세한 중고차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불가피해진 만큼 이들과의 상생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참고로 현대차와 기아는 이런 부분을 고려한 점유율 방침을 내놓았다. 현대차는 시장점유율을 2024년 4월까지 2.9% 이내로 유지하고 2025년 4월까지 4.1%를 넘지 않기로 약속했다.

기아도 2024년 4월까지 2.1%, 2025년 4월까지 2.9%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인증 중고차 대상 이외의 물량은 기존 매매업계에 전량 공급한다.
돋보기
<왜 완성차 기업은 중고차를 못 팔았나>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을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부터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지정됐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의 진출에 빗장을 건 것이다. 중고차 시장은 영세한 사업자들이 많은 만큼 이들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예컨대 SK그룹 역시 이로 인해 사업 확대에 제약이 커지자 중고차 거래 플랫폼 SK엔카(현 엔카)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이랬던 중고차 판매업은 2019년 2월 보호 기간이 만료된 후 2022년 지정 해지됐다. 최근 완성차업계들이 잇달아 시장 진출을 노리게 된 배경이다.

중고차 시장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서 해제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시장 규모다. 중고차 시장은 매년 급속도로 팽창해 현재 30조원 규모를 형성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팔린 중고차만 약 380만 대다. 신차(약 170만 대)의 2배를 넘어선 상황이다. 빠르게 시장이 커진 만큼 관련 업체들 역시 규모는 작지만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이런 측면에서 더 이상 산업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둘째는 중고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는 만큼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 역시 매년 급증하고 있어 문제였다. 이 시장을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 역시 이런 목소리들을 고려해 지난해 마침내 대기업들의 진출을 가능하도록 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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